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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무명인으로 살기

“거창한 명분은 아니더라도
이 어렵고 힘든 시기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서
내가 할 일은 없는지 찾아본다”

얼마 전 베스트셀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작가이자 SNS 의 스타이기도 한 혜민 스님이 갑자기 활동중단 선언과 함께 두문불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남산타워가 보이는 전망이 좋은 서울 도심의 2층 저택을 공개하는 바람에 고가주택 소유의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소유를 실천해야 할 스님이 호화 주택을 소유하고 자랑까지 했으니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혜민 스님은 “이번 일을 계기로 제 삶을 크게 반성하고 중다운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다”며 참회의 뜻을 밝혔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던 혜민 스님의 몰락이 한순간에 밀어닥친데 대해 그저 아연할 따름이다. 한동안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아오던 가수 조모씨가 화가로 변신하더니 대작(代作) 시비에 휘말려 졸지에 만인의 시선에서 사라진 일은 다 아는 바이다.

유명하다는 것, 인기 있다는 것, 그걸 달성하는 것도 힘들지만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겠다. 유명해지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후에 그 명성을 이어 가기 위한 간난(艱難)도 그에 못지않다.

얼마 전 ‘가황’이라 불리는 나훈아가 나라에서 주는 훈장을 거부한 이유를 말한 적이 있다. “가수라는 직업의 무게도 엄청나게 무거운데 훈장의 무게까지 어떻게 견디겠나. 우리 같은 직업을 가진 이들은 영혼이 자유로워야 한다. 친구들 하고 실없는 소리도 좀 하고 때로는 술 한잔 마시고 술주정도 하고 살아야 하는데 훈장을 받으면 그 값을 해야 하니까 그러지 못한다”면서 명성에 지어지는 부담을 실토하기도 했다.



‘왕관을 탐내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이 있듯이 유명인은 그에 따르는 갖가지 시련도 각오해야 한다. 게다가 유명해지기 위해선 모종의 스펙도 쌓아야 하고 작전을 벌여야 하기도 한다. 앞서 말한 혜민 스님의 경우 2010년 출간된 그의 첫번째 책의 제목은 ‘젊은 날의 깨달음’이었다. 그런데 출판사 직원의 간곡한 요청으로 ‘하버드에서의 출가, 그후 10년’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본인의 뜻은 아니었지만 책을 출판할 때 책표지에 하버드 대학 출신이란 것을 내세워 세인의 관심을 끄는 작전도 썼다는 얘기다.

요즘 한국에선 트로트가 대세다. TV를 보면 너도나도 트로트 경연 프로를 방영하고 있다. 트로트 가수 지망생들의 불꽃 튀는 경쟁 장면을 보면 유명해지고 싶은 열망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난다. 이미 그런 프로를 통해 하루 아침에 유명해진 트로트 가수들이 누리는 인기와 부가 그런 경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성급한 부모들은 초등학생 또래 아이까지 이 경쟁에 내몰고 있다.

이 세상에 유명해지고 만인의 사랑을 받고 성공하고 싶은 욕망을 품지 않은 사람은 없다. 나도 대학시절엔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유명한 영문학자가 되리라는 꿈도 꾸었다. 그런데 내 야망이 그리 크지 않았는지 아니면 능력이 없었는지 지금까지 무명인으로 살고 있다.

19세기 영미 문학의 위대한 시인이었던 에밀리 디킨슨은 생전엔 무명 시인이었다. 살아 있을 때 발표한 시는 10편도 안됐고 시집도 내지 않은 채 철저히 은둔 생활을 했다. 그런데 그녀가 죽고 난 뒤 여동생에 의해 발굴된 시가 1800여편에 이른다. 사후 4년만에 나온 시집으로 그녀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의 시에는 제목이 없다. 그래서 보통 시의 첫 행을 제목으로 사용하는 예가 많다. 그 가운데 ‘무명인’ 또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nobody)’을 주제로 한 시가 있다. 이 시에서 그녀는 ‘유명인(somebody)’이 된다는 것은 개구리가 긴긴 6월 내내 자신을 찬양하는 늪을 향해 개골개골 자기 이름을 외쳐 대는 것처럼 끔찍한 일이라고 읊조린다. 반 고흐도 그의 생전에 그림 한 점 못 팔았지만 사후에 유명화가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보면 생전에 유명한 것 보다 사후에 유명한 것이 훨씬 값진 것이 아닌가 한다.

유명인이 돼야 성공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 듯 무명인 곧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 해서 실패하고 불행한 것은 아니다. 변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무명인으로 살다 보니 얼마나 편한 지 모르겠다. 내가 무명인이라 해서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불편한 것도 없었다. 누구의 간섭도 안 받고 또 특별히 차별도 안 받고 내 자리를 지키면서 자유롭게 살아왔다.

그런데 요새 팬데믹으로 집콕 생활을 하면서 무료하게 지내다 보니 내가 무명인을 넘어 무능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는 데다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쓸모 없는 인간이란 생각에 우울하다. 무슨 대책을 세워야지 이대로 지내다 가는 코로나 블루에 걸리겠다.

무명 뒤에 숨어서 안주하지 말자. 가족이든 사회든 나라 든 무명인이 만든다. 전쟁의 승리는 수많은 무명용사들의 희생의 대가이다. 나라의 잘되고 못됨은 무명의 유권자들 손에 달렸다. 그렇게 거창한 명분이 아니더라도 이 어려운 시기에 가족 안에서 이웃 간에 혹은 친지들 사이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서 내가 할 일은 없는지 찾아볼 일이다.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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