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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歷知思志)] 명성황후

올해 25주년을 맞은 뮤지컬 ‘명성황후’는 구한말 열강에 맞서다 비극적 최후를 맞는 조선의 ‘국모’를 다뤘다. 그녀에 대해선 유명세만큼이나 잘못 알려진 상식도 많다. 민자영이라는 이름은 정비석 작가의 소설에서 등장했을 뿐, 역사적 근거는 없다. 사망 당시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고 발언했다는 것도 1994년 이수광 작가가 쓴 ‘나는 조선의 국모다’에서 처음 나왔다.

흥선대원군이 외척세력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미한 가문의 고아 소녀를 중전으로 낙점했다는 것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여흥 민씨는 원경왕후(태종)와 인현왕후(숙종) 등 유명한 왕후를 배출한 노론 명문가였다. 그녀의 증조부와 조부는 성균관 대사성과 이조참판을 지냈고 그 배경 덕분에 부친은 음서로 벼슬을 얻어 종4품까지 올랐다. 당대 세도가인 안동 김씨나 풍양 조씨만큼의 세력은 없었지만 조선에서 손에 꼽힐만한 가문이었고 권력 욕구도 강했다. 고종이 친정을 시작한 1873년 11월부터 김홍집 내각이 수립된 1894년 6월까지 고위직을 차지한 민씨 일족은 51명이다. 흥선대원군의 모친과 부인도 여흥 민씨 출신이었다. 어쩌면 다른 세도가문보다는 통제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을지 모른다.

방심의 대가는 컸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대결 구도로 얼룩진 고종 시대는 격변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혼미의 시대로 기억되고 있다.


유성운 / 한국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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