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운전면허 시험 다시 보던 날
“설거지 놔두고 가서 공부해.” 통관사 면허시험을 앞둔 내게 남편이 매일 저녁식사 후 하던 말이다. 시험이 코앞인데 퇴근 후에도 뭔가 준비하는 기미가 전혀 안 보였으니 답답해서 참견을 한다. 결혼 14년 차. 미국 생활에 제법 앞장서 익히고 사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을 터. 응원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첫 응시에 보기 좋게 실패하자 “이제야 알겠다. 자기가 왜 대학입시에 낙방을 했는지. 고렇게 책 한 페이지 들여다보는 일이 없으니 무슨 시험에 합격을 하겠어? 실력이 고것뿐인 걸. 능력이 안 되니 할 수 없지 뭐.” 은근히 약이 오른다. 한 번 보여 줘 볼까란 오기가 생긴다.
다음 시험 날짜 한 달 전부터 퇴근 후 집안 일을 남편이 맡겠다며 공부하란다. 딱 한 달. 할 수 있을까? 책만 펼치면 잠이 쏟아진다. 능력 운운하던 소리에 화가 났던 것도 잠깐, 왜 내가 꼭 통관사 면허증을 따야 하나? 남편이 전공을 살려 면허를 따는 게 더 빠른데.
결국 1987년 8월 18일자 워싱턴DC에서 10494번째 발급된 면허증을 받았다. 내 평생에 시험 준비를 해 본 기억이 없다. 공부가 몸에 맞지 않는다. 항상 잠으로 빠져든다. 결과에 순응한다. 뭔 불평을 하겠나. 누구와 비교도 안 하고, 이기려는 야망도 없고 안 되면 말고. 인생이 편하다.
느닷없이 운전면허증 갱신하는데 필기시험이 필수란다. 까짓것 미국 생활 47년에 운전한 햇수가 얼만데 겁 없이 덤볐다. 한국말 시험지를 택했다. 명색이 글쟁이가 한글로 해야지. 헉. 이게 무슨 뜻이지? 이해 안 되는 단어가 한 둘이 아니다. 실패. 그 자리에서 영어 문제지를 택해 다시 했다. 헉헉. 이건 또 뭐야? 운전 법규가 모르는 거 천지다. 아니. 여지껏 이 실력으로 운전하고 다녔단 말인가? 아찔하다. 살아 있음이 눈물 나게 감사하다.
공부할 책자 얻어 갖고 와서 일주일을 파고 들었다. 읽고 또 읽고, 보고 또 보며 이해하느라 많이 노력했다. 재발급 받게 된 운전면허증이 이리 소중할 수가 없다. 진작 초롱초롱할 때 공부 좀 하며 살 걸. 녹슬어 삐걱거리며 잘 돌아가지 않게 된 두뇌를 짠하게 본다.
새로 발급된 운전 면허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7개월 후, 90마일 100마일로 겁 없이 달리다 받은 스피드 티켓. 보험회사에 알려지기 전 트래픽스쿨 가서 8시간 꼬박 강의 듣고 시험패스 해야 보험료 껑충 뛰는 것 잡을 수 있다.
코로나19로 강의가 없다. 인터넷으로 혼자 공부해야 한다. 이건 정말 아니다. 차라리 강의실에서 강의 대충 듣고 시험 대충 보고 집으로 오던 아아 그리운 옛날이여. 내 굳어 버린 머릿속에 아무것도 입력할 수가 없다. 정말 뭔 방법 없을까?
목숨 내어 놓고 운전하며 사는 생활을 계속하려면 대충 넘길 수가 없다는 걸 알았다. 닷새 엿새 혼신을 다 해서 공부했다. 내가 해 냈다. 힘껏 안아주며 칭찬해 준다. 잘 해낸 나에게.
노기제 / 통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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