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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사진 한 장의 추억

며칠 전 고향 사는 시누이가 옛집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안채와 사랑채, 대청 미닫이 유리문과 기와 얹은 돌담, 소슬 대문 등 변한 게 없다. 우물 옆 앵두나무도 그대로다. 경주시 황남동 250번지. 잊을 수 없는 시집 본가 주소다. 천마총과 담을 사이에 두었고 첨성대, 안압지, 석빙고가 가까운 곳이다. 관광지 부근이라 ‘황리당’이라는 이름의 찻집이 되었단다.

지금은 남의 집이 되었지만 사진을 보니 콧등이 찡하다. 스물셋 새색시 때가 생각난다. 벌써 50여 년 전 일이 되었다. 남편과 연애를 했는데 군 입대 한 달 전 결혼을 했다. 신랑 입대 후 3년 동안 시집에서 살아야했다.

남편 없는 시댁에서 새아씨로 시부모님 모시고 긴장 속에 살았다. 그런 어느 날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빗장을 벗기고 문을 살짝 열어보니 웬 갓 쓰고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인사들 드리고, 안방에다 “어머니 손님 오셨는데요” 큰소리로 말했다. 시아버님의 넷째 형님이라고 했다. 큰 절을 올리고 다과를 대접했다. 떠나실 때 대문까지 나가 인사를 드렸지만 얼굴을 기억 할 수 없었다. 새댁이 고개를 똑바로 들고 어른을 쳐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인근 구길리는 시댁 문중 집성촌이다. 장날이면 문중 사람들 중 몇은 경주 시내를 나왔다가 꼭 우리 집에 들렀다. 대문 빗장을 열면 또 갓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이가 서있다. 누가 누군지 분간이 되지 않아 ‘어디서 오셨습니까’를 반복했다. 모습이 모두 비슷비슷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아버지가 팔형제 막내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불똥은 시어머니한테 떨어졌다. 서울서 공주를 데려왔느냐, 문중에 정식으로 인사도 안 시키다니, 몇 번째 방문을 해도 ‘어디서 오셨습니까’라고 묻다니. 며느리 교육 잘 시키라고 시부모님이 혼쭐이 났다고 했다.

시집에 살기 시작한 5개월 후, 시내 중학교 교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이제는 ‘길에서 어른을 만나도 인사를 안 하더라’는 것으로 흉이 잡혔다. 길에는 갓 쓰고 두루마기 입은 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 중 문중 어른을 알아낼 재간이 없었다. 흉을 안 잡히려고 애를 썼지만 힘든 일이었다.

나도 이제 당시의 그 분들 나이가 되었다. 시집살이 하던 본가 사진을 보며 “어디서 오셨습니까”를 반복했던 시절을 떠 올린다. 설사 기억을 못했다 하더라도 빗장을 열고 “큰 아버님 어서 오세요” 인사를 했다면 기분이 좋았을 텐데, 같은 분을 두세 번 보고도 ‘어디서 오셨습니까’ 했으니 본인들은 또 얼마나 황당하셨겠는가. 이제와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지만 참 송구한 일이었다.

사진 한 장이 옛 추억을 되살려주었다. 우리를 따라 시부모님까지 미국 이민을 온 후 집을 매각하면서 많이 섭섭했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 동안 개발 분위기에 휩쓸려 사라지지 않고 옛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다니 반갑다. 한국 방문 시 찾아가 풋풋했던 시절을 더듬어 보아야겠다.


권조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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