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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의 고향 집

“어릴 때 열하정에는
동백꽃이 많이 피었다
우리는 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 걸었다”

배우 문숙씨가 미국에서 온 아들에게 한국의 멋을 보여 주려 내 고향 마을을 탐방하는 프로였다. 우리 동네는 군에서 지정한 전통 마을이다. 조선 말엽에 감찰 참봉이라는 벼슬을 해서 집이 널찍 널찍하고 대청마루가 높이 있고 토방도 높아 운치 있는 집들이 여러 채 있다. 그런 집들 뒤로는 대나무 밭이 우거져 숲을 이루어 바람이 불면 대나무 스치는 소리가 스산하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그런 집들은 봄이 되면 후원에서 수많은 꽃들이 피고 그 꽃들을 바라보며 어른들은 사랑에서 시를 읊조리곤 했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 심부름을 많이 다녔다. 우리 동네는 광주 이씨 집성촌이다. 모두가 일가다. 심부름을 가면 일가 아주머니가 작은 상에 장조림이며 맛깔스러운 반찬들을 차려 꼭 밥을 먹고 가라고 권하셨다. 조금 불편하고 어려웠어도 정성껏 차린 상이라 먹고 오곤 했다.

바로 그중의 한 집이 오늘 TV에 나왔다. 지금은 그분들은 다 돌아가시고 나와 초등학교 동창 부부가 살고 있으며 이장을 하며 전통 마을을 지키고 있다고 들었다. 문숙씨가 찾아간 집이 바로 내 친구 이장이 사는 집이며 내가 장조림에 밥을 먹은 집이다. 그 집에 살았던 분은 우리 아버지보다 나이는 많지만 항렬은 우리와 같다.

아들은 우리 지역 국회의원을 오래했고 손자는 지금도 서울에서 국회의원을 오래 한 걸로 알고 있다. 그 댁 아주머니의 친절한 태도가 자손들을 잘 되게 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 동네 주소가 전남 보성군 득량면 강골 마을이다. 강골 마을을 찾는 모든 사람은 이장 집을 찾아 숙박도 하고 견학도 한다고 한다. 문숙씨도 아들과 함께 그 집 사랑채에 묵었다. 이장 부인은 텃밭에서 싱싱한 배추를 뽑아 문숙씨 아들과 함께 배추나물을 무쳤다. 체험을 시킨 것이다. 영어가 안 되어도 잘 통했다. 오랜만에 만난 모자가 한국의 전통 반찬에 밥을 먹으며 행복해했다.

하룻밤을 행랑채에서 자고 그 다음 날은 동네를 구경했다. 나는 우리집이 보이는지 눈을 떼지 않고 숨을 죽였다. 마침내 우리집 앞 열하정에 도착했다. 우리가 자랄 때는 강당이라 했다. 문숙씨가 아들에게 열하정에 대해 설명을 했다. 너도 그때 태어났다면 이런 곳에서 한문을 읽고 배웠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본인은 그런 문화를 참 좋아한다고 하였다.

그때 카메라에 우리집이 흐릿하게 보였다. 나는 좀 더 가까이 비추기를 바랐지만 그것이 고작이았다. 내가 자랄 때와는 너무나 다른 느낌이지만 안채라도 있고 넓은 뒷밭이 있고 부모님 산소가 있으니 무얼 더 바라리.

나는 한국에 나갈 때마다 고향에 들러 뒷산에 묻혀 계신 부모님 산소를 찾는다. 그리고 지금은 남이 살고 있는 우리집을 둘러본다. 사랑채와 곡간이 헐려버린 집은 나에겐 아무 느낌을 주는 게 없다. 전통 마을이라고 보수를 했는데 하나도 그때의 느낌을 살리지 못했다. 더구나 모르는 남이 살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애써 옛 모습을 찾아보려 집앞 열하정을 가본다. 열하정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 열하정에는 동백꽃이 많이 피었다. 동백나무 아래에는 동백꽃이 수북히 떨어져 있다. 우리는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다녔다.

봄이 오면 밥티꽃, 영산홍, 목련 등이 피는데 우리는 밥티꽃이 밥풀 모양이어서 그걸 따 먹곤 하였다. 영산홍은 진달래꽃처럼 피지만 제법 키가 있는 나무였다. 그리고 동그랗고 넓은 연못이 있어 하얀 연꽃이 피곤했는데 우리 어머니가 좋아 하셨다.

그런데 역시 열하정도 군에서 나와 관리를 한다는 데 옛날의 정취는 볼 수 없었다. 옛날의 정스러운 꽃나무들은 보이지 않고 연못 주위에 큰 돌들을 놓아 앉아 놀 수 있게만 해놓았다. 단정하게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옛 것을 보완해서 보존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오랜만에 열하정을 보고 있으니 열하정을 지키고 살았던 쉰 목소리를 한 복수 할아버지도 생각나고 열하정 밑길 징골 개울도 눈에 선하다. 나 어릴 때 친구 선희, 정애, 용효를 만나러 수없이 오르내리던 길이다. 코로나가 없어지고 자유로운 일상의 세상이 오면 나는 고국에 나가 고향에 들러 부모님 산소에 가서 절하고 산소 주위에 수 없이 피어있는 보랏빛 제비꽃과도 그동안 못 다한 얘기를 나눌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와 아무 연고가 없는 가족이 살고 있는 우리집 마당에서 열하정을 건너다 보며 우리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동백꽃도 실컷 볼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수줍게 웃으시며 연꽃을 바라보시며 우리집 정원이라고 말씀하셨던 열하정에도 다시 내려가 혹시 지금은 밥티꽃이 있는지 찾아 봐야지. 그리고 가까이 있는 벌교에 가서 내 고향 특산품 꼬막 정식도 먹고 와야겠다. 아 그리운 내 고향 집, 고향 마을!


이영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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