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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현장에서] 나의 문어 선생님

작년엔 TV 앞에서 참 많은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에서 회복할 땐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으니. 종일 코로나 뉴스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누가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이란 경연 프로그램을 보라고 했다. 아, 트로트 가사에 인생이 다 들어있었다. 트로트에 울고 웃던 중 보게 된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드라마는 또 어떤가. 모든 남자를 현빈과 비교하는 고질병을 얻어, 이제 아무도 못 사귈 것만 같다. 현빈 땜에 망했다.

얼마 전, 넷플릭스를 뒤지다 ‘My Octopus Teacher’라는 다큐를 발견했다. 문어가 선생님이라? 호기심으로 시작한 크레이그 포스터의 필름이 끝났을 때, 내 눈가는 촉촉이 젖어있었다. 과학 시간에 잤고, 동식물에 전혀 관심 없는 차도녀인 나를 문어가 울릴 줄이야.

아프리카 최남단 해변에서 자란 이 영화감독은 바다와 친숙하다. 다큐들을 찍다 탈진과 우울감에 빠져 고향 집으로 돌아온다. 거기서 매일 아름다운 바닷속 세계를 경험하며 다시 카메라 잡을 힘을 얻게 된다. 그러는 중 어느 날 만난 암문어 한 마리. 매일 찾아가 바라보는 그에게, 서서히 발 하나를 뻗어 손을 만진다. 그러다 팔에 올라오더니 마침내 가슴에까지 올라타는 관계가 된다. 이후 거의 일 년 간 매일 문어와 교감하며 그는 바닷속 그녀의 삶을 관찰한다.

개나 고양이 정도의 지능으로, 굉장히 똑똑하고 재빠르게 환경에 대처하는 문어의 생존본능이 우선 놀라웠다. 피부색뿐 아니라 질감까지도 환경과 똑같이 만드는 그 유연함으로, 방어해 줄 껍데기 없는 물렁한 몸체를 보호한다. 나이 들수록 경직되어가는 성격이나 생활방식이 문제가 되는 우리가 부끄러워진다. 문어 선생님께 유연함에 대해 배운다. 한 파자마 상어의 공격을 피할 수 없게 되자, 그 등에 올라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정말 너무 자랑스러워 트로피라도 하나 쥐여주고 싶었다.



그러다 상어에게 다리를 하나 잃고, 창백한 모습으로 앓고 있는 문어를 볼 때는 가슴이 미어졌다. 상어에 대한 분노가 이글거렸다. 내가 그동안 먹었을 문어 다리들이 생각난 것도 그때였다. 앞으로 문어는 못 먹을 것 같다. 황홀하고 평화로와 보이는 바닷속에도 존재하는 약육강식, 물 위 세상 우리들의 상처와 공격도 떠올랐다. 하지만, 그 아픔을 꿋꿋이 이겨내고, 작은 다리가 다시 자라나 활동을 재개하는 문어, 완전 인간 승리, 아니 문어 승리다.

문어의 수명이 다 되어가는 것을 느끼던 어느 날, 짝짓기가 일어난다. 먹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고, 낳아놓은 수십만 개의 알에 몸의 양분과 산소를 아낌없이 공급해주는 문어. 그렇게 체중과 에너지를 잃어가다 알들이 부화할 때쯤엔 밖으로 밀려 나와, 물고기와 상어의 밥이 되는 문어를 보며, 우리 연로하신 부모님들의 주름진 얼굴과 허약해진 모습이 떠올랐다. 연로해 가고 있는 부모 된 우리 모두의 모습도 교차하였다. 눈가가 두 번째로 촉촉해졌다.

때와 시간을 아는 문어. 아프면 쉴 줄 알고, 놀 때는 물고기들과 장난하며 춤출 줄 알고, 자신의 생명을 주고 떠날 때를 아는 문어는 그래서 세상 어느 부모 못지않은 선생님이다. 이 문어는 크레이그 감독에게 우정, 사랑, 신뢰, 연대감, 지혜, 인내, 끈기, 희생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라 아들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스노클링을 한다. 문어 선생님 덕분이었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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