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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이름을 ‘잃어버리는’ 나이

한국에서 은행을 갔는데 여직원이 나에게 ‘어머니’라고 불러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미국에 살면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이름을 부르는 것에 익숙해져서 어머니라는 호칭이 너무도 낯설었다. 50이 넘었으니 한국식으로는 당연한 호칭이겠지만 우리 아이들 보다 한참 더 나이 든 여자가 나에게 어머니라니.

오랫동안 이메일만 주고 받던 친구랑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 친구는 내가 자기 이름을 부르자 몹시 어색한 듯 이름을 부르지 말고 그냥 ‘여보세요’로 대화를 시작하라고 했다. 직장과 집만 왔다갔다 하는 생활을 30년 이상 하다 보니 누가 자기 이름 부르는 것이 어색했던 것이다.

엄마랑 통화하며 이런 얘기를 했더니 엄마도 친구들과 호칭 문제를 얘기한 적이 있다고 한다. 기준은 항상 상대방의 나이다. 자식 뻘 되는 사람이 ‘할머니’라고 부르면 기분이 아주 안 좋다고 하신다. 그러니까 40~50대가 70~80대에게 ‘할머니’라고 부르면 예의가 아닌 것이다. 그럼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물어보니, ‘여사님, 선생님, 또는 이모님’ 정도로 부르라고 하신다. 70~80대 남자 분에게는 ‘선생님, 사장님’이 좋단다. ‘어르신’이라는 호칭도 기분 나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실수 하지 않으려면 상대방의 나이를 아는 것이 몹시 중요하다. 우리 문화는 첫만남에서 서로의 나이를 따지고 서열을 정해서 호칭을 정리하는 것이 순서다.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에게 ‘xx 씨’라고 부르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무례한 일이다.

이름보다 나이와 직함이 더 소중하게 느껴질 정도다. 직장에서도 직함으로 상대방을 부르다 보니 퇴직 후에도 본인의 이름 보다 그 직함으로 불린다. 어떤 사람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기 남편에게까지 직함을 붙여 부른다. 목사 부인은 자기 남편을 ‘우리 목사님’, 장군 부인은 ‘우리 장군님’이라고 하기도 한다.

내가 꼭 어디서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야 관계가 성립되는가? 이름을 부르자. 그러면 마술 같이 보이지 않는 벽이 허물어진다. 세상의 모든 껍데기가 필요 없는 본질로서 서로를 대하게 된다. 대등한 인격체로서 편하게 다가가 친구가 될 수 있다. 내 이름을 소외시키고 불리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나의 조건에 따라 내가 불리면 모든 조건이 사라진 후 나는 얼마나 허무한 존재인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어색한 사회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무슨 존재일까?

나는 이웃 집 70대인 자넷과 친구인데 그의 둘째 딸 일레인과도 손주인 코디와도 친구다. 자넷이 일레인네 가족을 처음 소개했을 때 일이다. 다섯살배기 둘째 아들이 악수를 청하며 어른스럽게 물었다. “내 이름은 코디야. 니 이름은 뭐지?” 자넷의 손주로서가 아닌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로 서로 만나게 되는 순간이었다. 코디는 할머니집을 방문할 때면 우리집을 꼭 들러서 안부를 물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이제는 보지 않는 그림책 등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줬다.

코디 아빠는 작년에 암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다고 했는데, 오늘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꼬맹이 친구 코디가 제일 먼저 생각났다. 그를 처음 만났던 날 나의 이름을 묻던 그의 맑은 눈망울을 떠올리며 그의 가족의 안위를 위해 한참을 기도했다.


김지현 / 수학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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