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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겨울 산

절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달을 정수리에 이고 가부좌 틀면/ 수묵화 한 점 덩그러니// 영하의 묵언수행!// 폭포는 성대를 절단하고/ 무욕의 은빛 기둥을 곧추세운다/ 온몸이 빈 몸의 만월이다

-문현미 시인의 ‘겨울 산’전문



겨울 산에 오른다. 우렁차게 흘러내리는 계곡을 거슬러 산마루를 향한다. 계곡은 겨울인데도 물이 많아 활기찬 소리를 낸다. 서릿발 날카롭게 선 땅을 밟는 발길들이 나직하고 겸손하다.

겨울 산은 여백이 수려한 수묵화이지만 좀 걷다 보면 무언가로 그득 채워져 있는 것처럼 충만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바위와 바위 사이가 보이지 않는 어떤 기운으로 팽팽해지는 것 같다. 계곡을 가로지르며 쓰러져 있는 고사목 가지에는 간밤에 언 고드름이 수정처럼 매달려 있고 바위 절벽에 붙어 자라는 석이버섯은 귀를 막고 마음의 소리에만 집중하는 구도자의 모습이다.

겨울 산은 소리로 사물을 깨우는 종이라고 생각된다. 소리를 품고 소리의 결을 가다듬고 있는 커다란 종. 말을 걸어보겠다고 바위를 툭툭 건드려 보다가 화두를 안고 정진하는 중인지도 모른다고 얼른 행동을 멈춘다. 겉으로 조용해 보이는 나무들도 뿌리에선 쉼 없이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용솟음이란 저 스스로 반란을 꿈꿀 때 일어난다. 산은 차가움 속에 뜨거움을 품고 폭발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

산 중간 중간에 조붓한 개울을 이루며 졸졸 흐르는 물을 건널 때면 뭔가를 씻어내고 싶어진다. 손도 씻고 죄도 씻어내고 싶다. 날마다 알게 또는 모르고 죄를 짓는 무의식의 도취 속에서 깨어나려는 정결 의식을 치르듯 물은 속죄를 자꾸 상기시키려 한다.

겨울은 마음의 북방이다. 북방이 가까워질수록 침엽수들이 많아지듯 칼날 진 땅 위에 서서 봄을 준비하는 암흑의 시간이리라. 자기 안에서 자신과 싸우는 과정이 없이는 어떤 소리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연도 사람도 그럴 것이다. 칼바람을 이기고 제 안의 북방과 화해하지 못하고는 소리를 얻지는 못한다. 그래서 자기만의 음색을 구현해 냈다는 건 내적 전쟁을 많이 치른 백전노장이라는 말이기도 하겠다.

가장자리가 얼어 있는 산 정상의 호수에는 하늘이 얼비쳐 구름의 춤사위가 물표면 위로 미끄러진다. 시린 손을 비비며 돌아보는 산, 높을수록 하늘과 가깝다는 생각에서일까 기도가 하고 싶다. 삶을 지탱하기 위한 바램만이 아닌 영혼의 자유로움을 염원에 담아 하늘 높이 날려 보낸다. 기도가 가서 닿을 곳이 어디인지 알게 되었다는 건 내 생의 행운이다.

겨울 산은 은유로 가득한 시처럼 읽어내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절제와 함축으로 미적 완성을 이룬 세한도처럼 여백과 고립의 극치가 오히려 생성의 기운으로 느껴진다. 산등성 위로 내리꽂히는 햇빛 줄기를 따라 내려오는 길, 미끄러워 기우뚱하는 하는 나를 누군가 잡아 준다. 길은 늘 혼돈이다. 기우뚱거리다 넘어지기 일쑤이다.

넘어질 때마다 잡아주던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막다른 곳에 처할 때마다 내밀어 주던 따뜻한 손, 돌아보면 그분이 내민 손의 온기로 나는 여기까지 왔다.

겨울 산에서는 불평 따위를 내뱉으면 안 될 것만 같다. 삶을 흔들어대는 거친 바람조차 공손하게 대하며 무릎을 낮춰 산의 숨결을 들어야 할 것만 같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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