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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바람 부는 날 새벽 단상

잠결에 눈을 떴다. 깜깜하다. 몇 시쯤 되었을까. 아내의 숨소리가 고른 걸 보니 깊은 잠에 빠져있는가 보다. 눈을 뜨면 곁에 아내가 자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는 어떤 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요즈음 아내는 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사투, 죽기를 다하여 싸우고 있다는 얘기다. 코로나 환자가 넘쳐나는 병원에서 목숨 걸고 하루하루를 버텨내야하는 전쟁터의 전사다. 방호복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환자를 돌보아야 하기 때문에 퇴근하면 파김치가 된다. 옆에서 바라보는 내가 더 조마조마하다.

남 돌보다가 당신이 먼저 쓰러지는 게 아냐. 그렇지만 어떡해요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잖아요. 코로나 이후 병원을 그만 둔 간호사가 한둘이 아니란다. 나까지 그만두면 그들은 누가 보살피겠냐는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면 안 돼? 살아오면서 고비 고비에 내가 했던 그 말을, 지금 아내가 하고 있다.

바람소리가 무섭다. 태풍이 불어오는 모양이다. 빗발이 창문을 때린다. 높은 곳은 눈이 내릴 것이다. 홈리스들은 이 밤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다리 밑에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 행복이라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젊은 시절, 동가식서가숙 하던 때가 있었다. 그 저녁 풍경을 생각하며 시 한 편을 썼다. ‘바람 부는 날’이라는 제목이다. “또/ 그 꿈을 꾸었다// 저무는 시내버스 정류장/ 점방에 불이 들어온다/ 벌써 여러 대의 버스를 떠나보냈다/ 정릉가요, 청량리 중랑천, 경희대앞…/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구로동 광천이 자취방으로 갈까/ 이문동 득춘네 집으로 갈까/ 책가방이 무겁다/ 호주머니에 버스표 한 장 딸랑/ 바람이 낙엽을 휘몰아간다/ 까맣게 물들인 군복바지 끝자락이 펄럭인다/ 빛바랜 군화를 끌고 이리저리 서성거리다/ 바쁘게 사라져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꿈속에서도/ 춥다.”

그랬다. 추웠다. 그런데 그때 나는 봄날이었다. 눈밭에 홍매가 피어나고 가지 끝마다 싹이 움트는 봄. 언 강에 물고기가 튀어 오르는 거칠게 없는 계절이었다. 지금은 늦가을. 그늘이 필요 없어 잎을 털어내야 할 시간.

창문이 뿌옇게 밝아온다. 이불 속을 가만히 빠져나왔다. 커튼을 연다. 아직 바람이 거세다. 야자나무가 바람에 낭창 휘어졌다가 바로 선다. 멀리 산봉우리가 흰 모자를 썼다. 햇빛이 숲을 어루만지며 골짜기를 내려와 들판을 건너온다.

오늘은 휴일. 아내는 아직 잠들어있다. 커피 향으로 전사(戰士)의 잠을 깨워야겠다. 커피를 내린다. 작고 사소한 일로 하루를 연다. 큰일은 늘 작은 일로부터 비롯된다. 새해가 시작되고 있다. 누구에게는 큰일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작은 일처럼.


정찬열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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