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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In] 시위 현장서 무너진 ‘글로리아’

'글로리아'다.

로라 브래니건이 1982년 불러 히트시킨 노래다. 80년대를 대표하는 클럽 댄스곡이다. 경쾌한 박자에 저절로 몸을 흔들게 된다.

노래는 누군가 셀폰으로 찍은 동영상 속에서 크게 틀어져 있다. 현장은 하얀색 대형천막 내부다. 흡사 야외파티장 분위기로 떠들썩하다. 영상을 찍던 남자가 한 여성을 비추며 이름을 부른다. “킴벌리~.”

여성은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든다. 한동안 여성을 찍던 카메라는 천막 안 정경을 비춘다. 정장을 입은 남녀들이 앞쪽 대형 TV 3대에서 생중계된 시위를 지켜보고 있다. 그중 낯익은 사람이 보인다. 대통령이다. 그리곤 영상을 찍던 본인을 비춘다. 대통령의 아들 트럼프 주니어다. 춤을 추던 여성은 그의 여자친구 킴벌리 길포일이다.

트럼프 주니어가 입을 연다. “개봉박두다. 지켜봐 달라. 생중계하겠다. 대단할 것.”

2분짜리 동영상은 별 문제없어 보이지만 촬영 날짜와 장소를 알고 나면 충격적이다. 영상은 연방의사당이 유린당한 6일 찍었다. 장소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운집한 워싱턴 DC 엘립스공원 시위현장이다.

트럼프 주니어의 동영상을 지켜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의사당이 폭도들에게 점거당하고,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동안 트럼프 가족은 난동을 생중계로 지켜보며 축하파티를 열고 있었다”고 분노했다.

댓글들은 온통 날이 서있다.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고? 난동 교사죄로 기소하라”, “내란(insurrection)의 증거” “이들은 사교 집단” 등등 험한 말들이 폭주했다.

트럼프 지지자들도 댓글로 반박했다. 가짜뉴스라고 한다. 영상은 폭동 발생 전에 시위 현장에서 찍었다고 했다. 폭동을 지켜보며 즐긴 파티가 아니라는 변명이다. 폭동이 발생하리라고 누군들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대통령 편을 들었다.

이들은 또 다른 음모론도 제기했다. 이날 난동이 벌어진 이유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의사당 경찰이 시위대에게 의사당 문을 열어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극좌단체 ‘안티파’ 회원들이 트럼프 지지자로 위장해 시위를 격화시켰다고도 한다.

이들은 확인되지 않은 음모론들은 믿으면서 상식적인 사실들엔 눈을 감고 있다. 대통령의 책임이다.

먼저 이날 대통령이 시위현장에 간 것 자체가 잘못이다.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다. 지지층만을 위한 행사에 참석한 명분을 얻으려 했다면 반대하는 인종차별 시위현장에도 모습을 드러냈어야 했다. 그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는 ‘BLM’ 시위자들을 폭도라고 불렀다.

두 번째 잘못은 선동 연설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이랬다.

“우린 절대 대선 패배를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도둑질당한 대선을 누가 인정할 것인가. 우린 침묵하기 않을 것이다. 의사당으로 구국의 행진을 하자.”

대통령의 연설은 불에 기름을 부었다. ‘대통령의 허락을 받은’ 수백 명이 의사당으로 진격했다. 총기와 창으로 무장한 채 의사당 벽을 타고, 유리창을 부수고 진격했다. 이 과정에서 5명이 죽었다.

만약 연설에서 대통령이 ‘당신들의 아픔을 이해한다. 하지만 이제 나라를 위해 승복해야 할 때다. 다음을 기약하자’고 했더라면 최악의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문제의 동영상을 여러 차례 돌려봤다. 볼수록 위화감이 느껴졌다. 노래 가사와 상황들이 뭔가 맞지 않아서다. ‘글로리아’는 사람 이름이다. 모든 남자들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여자다. 남자 붙잡기에 집착하는 허영심 가득한 그녀에게 정신 차리라 충고하는 내용이다. 클라이맥스 가사는 이렇다. ‘글로리아, 네가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니?(Gloria, don’t you think you’re fallin?)’

글로리아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지 않나. 남자를 ‘국민’으로 바꿔보면 알기 쉽다. 지난 4년간 대통령이 보인 말과 행동들을 압축할 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었다. 이젠 찾은듯하다. 글로리아다.


정구현 선임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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