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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의사 딸과 장사꾼 딸

친구의 친정아버지는 의사다. 물론 남편도 의사요. 자식들도 의사다. 그녀는 의사는 아니지만, 많이 배웠다. 아는 것이 많지만 지혜로워 아는 척하며 나대지 않는다. 조곤조곤 조용히 재미있게 말도 잘한다. 게다가 상냥하고 친절하다. 전공이 미술인 나보다 더 문학과 예술에 조예가 깊고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긴다.

장사꾼 딸인 나는 전공은 미술이지만 뜬구름 잡는 듯한 아트 이야기를 즐기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보다는 장사꾼 딸답게 돈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아버지는 사업 구상을 하며 아침에 남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는 구상의 해결점을 가지고 가벼운 걸음으로 내려오셔서는 말씀하시곤 하셨다.

“내가 몸 건강만을 위해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산책은 문제 해결점을 찾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이끈다.”

나는 매일 산책하면서 상상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헤집듯 오가며 실작업에 써먹을 실마리를 찾아서 헤맨다. 그러나 아버지처럼 돈을 어떻게 돌려 투자할까? 몰두할 때가 많다.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작품 구상을 우선으로 해야 할 텐데도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금전에 대한 구상이 나에게는 더 재미있으니 나 자신도 어쩌지 못하겠다.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아트보다는 투자에 관한 대화가 더 흥미롭게 실체로 와 닿는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속물근성이 꿈틀대는 모양이다.

“일단 손에 들어간 돈은 나가지 않는 손금을 타고났네.”

미국 오기 전 언니와 엄마에게 떠밀려 생전 처음 만나본 점쟁이가 내 점괘를 말했던 것처럼 디파짓 하는 것은 즐기지만 꺼내쓰는 것은 무척이나 망설인다. 기억력이 없어서 지적인 대화는 막히지만 언제 어디서 얼마 주고 샀는지에 대한 숫자는 정확하게 기억하며 돈 소리에는 귀를 쫑긋한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나는 개처럼 벌어 정승인 의사 부인 친구처럼 문화생활을 즐길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투자 이야기를 즐기는 나에 대해 종종 회의를 느끼며 씁쓸해하면서도 개처럼 더 벌 궁리를 한다. 열심히 벌어 근사하게 쓰려고 아버지는 나의 예술 교육에 투자했다. 그러나 아버지를 닮고 아버지의 삶을 보고 자란 나 역시 예술보다는 돈에 더 관심이 많다.

“미안해. 돈 얘기만 해서.”

“무슨 소릴. 좋은 이야긴데. 한국 여자들 투자 이야기하는 것 좋아해. 투자 잘해서 잘살면 좋은 거지 뭘.”

지난번 친구와의 전화 내용이다. 사실 난 친구가 돈에 집착하지 않고 예술을 사랑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는 모습이 좋아 친해졌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자꾸 옆길로 빠진다. 좋은 친구 잃을까 걱정이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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