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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연민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분일 뿐. 만일 흙덩어리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 땅은 그만큼 작아지고 모래톱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다.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키나니,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된 존재이기 때문인 것,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는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서 울린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존던의 시다. 성공회 신부였던 존던이 살았던 17세기 당시의 영국은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가 사는 런던의 어느 마을에서는 사람이 죽을 때마다 교회당의 종을 울리게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존던이 전염병에 걸리게 되었고 그는 병상에서 그 종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종소리는 자신을 위한 것이라 깨달았다. 그리고 모든 이의 심금을 울리는 이 시를 쓰게 되었다. 그는 자신밖에 모르는 당시의 오만한 귀족들에게 “종소리는 바로 너를 위해 울린다”고 일갈했다 한다.

팬데믹으로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상황도 존던이 살았던 그 시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나” 하면서 어리석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동안 삶은 끝난다. 우리의 상호연결성은 삶의 의미의 일부이다. 자신이 모든 일을 통제하고 헤쳐나갈 수 있다는 헛된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년 전 어느 더운 어느 여름날, 맨해튼으로 나갔을 때의 일이다. 수많은 사람이 서로 부딪치며 걸어가는 복잡한 미드타운에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소매로 문질러가며 길거리에 앉아 빈 깡통을 흔들며 구걸하는 늙은 거지가 있었다. 그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거의 하나도 없었다. 가끔 동전을 내 던지는 쨍그랑 소리만 들릴 뿐, 그러다 갑자기 어느 젊은 남자가 20달러짜리 지폐를 들고 그 거지 앞에 가서 “Sir, You might need this” 한다. 그 고상하고 예의 바른말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거지는 벌떡 일어나 몇번이나 고개를 깊숙이 숙이라며 그 청년이 사라질 때까지 “God bliss you!”를 외쳐댔다. 갑자기 내 눈앞이 환해졌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연민과 사랑은 단순히 선행을 베푸는 행위가 아니라 상대방 속에서 신의 불꽃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토마스 머튼의 말이 큰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온 지구를 강타한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놀랍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어두운 나날을 빛내주고 있다. 옷 장사를 했던 사람들은 마스크를 만들고 식당업을 했던 어느 유명한 요리사는 자신의 자원과 재능으로 식량이 떨어진 사람들을 먹이고 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열심히 봉사하는 의료 봉사자들이 있다. 살다 보면 고통과 슬픔은 늘 내 가까이에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언어가 있어도 옆 사람과 통하지 못하고 자기 혼자만의 언어로 살아가며 움직일 때마다 생각도 행동도 꽁꽁 얼어붙어 마비된 채로 지내는 지난 한 해 동안 나에게 위로가 되어준 것이 있다면 온 인류가 함께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서로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다. 사랑과 연민이 없으면 인류는 절대 제대로 살 수 없다는 사화 과학자들의 말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병으로 인한 고통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이춘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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