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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에 스러진 공주의 전설이 깃든 마을

스페인 - 알바라신(2)
11~16세기 유물 가득 박물관부터
아기 예수 성화 전시 대성당까지

알바라신 대성당 첨탑(왼쪽)과 성벽 아래로 펼쳐져 있는 알바라신 시내 전경. 붉은 기와로 덮인 건물들이 고풍스러운 유럽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알바라신 대성당 첨탑(왼쪽)과 성벽 아래로 펼쳐져 있는 알바라신 시내 전경. 붉은 기와로 덮인 건물들이 고풍스러운 유럽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11세기, 16세기 유물들을 비롯해 알바라신 최고의 대장장이 아돌포하레타의 작품 등이 전시돼 있는알바라신 박물관 입구.

11세기, 16세기 유물들을 비롯해 알바라신 최고의 대장장이 아돌포하레타의 작품 등이 전시돼 있는알바라신 박물관 입구.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아라곤 왕국의 도냐 블랑카 공주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도냐 블랑카 타워. 주위에는 공동묘지가 조성돼 있다.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아라곤 왕국의 도냐 블랑카 공주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도냐 블랑카 타워. 주위에는 공동묘지가 조성돼 있다.

코로나 재확산 우려에 가주정부가 안전 규제 강화에 나섰다. 연말연시 재택하며 글과 사진으로나마 세계 여행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여행가 곽노은씨의 스페인 여행기 중 알바라신두 번째 이야기를 소개한다.

옛날 아라곤 왕국에 ‘도냐 블랑카’라는 예쁜 공주와 행실 나쁜 배다른 언니가 있었다. 공주는 마음씨 곱고 아름다워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왕이 전투에 나가 사망하게 된다. 그러자 새 왕은 공주가 자신을 노릴 것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추방하고 말았다. 새 왕은 배다른 언니의 남편이다. 몇 명의 충성스런 부하와 함께 카스티야 지방으로 추방당하는 공주. 공주 일행이 길을 가다 멈춘 곳이 바로 ‘알바라신’이다. 알바라신 주민들은 그녀의 매력에 빠져 공주가 계속 머물기를 원한다. 하지만 왕과 언니의 보복이 두려운 공주는 그럴 수 없었다.

주민들은 마지막으로 떠나는 공주를 보려 하지만 공주가 보이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열흘 후에도, 두 달이 지나도 공주는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누군가 공주를 죽여 지하 묘지에 파묻은 것이었다. 주민들은 그곳에 도냐 블랑카 탑을 세웠다. 타워 주위로 공동묘지도 만들었다. 그 이후부터 보름달이 뜨면 강에서 공주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블랑카 타워 바로 앞에는 알바라신 박물관이 있다. 원래 병원이었고 내전 후에는 교도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후에 알바라신 박물관으로 개조해 1990년 개장했다. 박물관은 외지고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박물관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의외의 보물을 발견할 수도 있고, 지방 박물관의 유적도 독자들에게 알릴 기회도 주어지기 때문이다.

박물관 안에는 역시 소소한 보물들이 많았다. 거대한 박물관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의미 있는 유적들이다. 박물관 재단에서 운영하는 투어도 있다. 하지만 가이드 투어는 영어도 없고 스페인어로만 운영된다. 외국인들은 어쩔 수 없이 개인 투어에 나서야 한다. 전시관에는 그릇, 물병, 큰 항아리 등 11세기에 만든 유물, 16세기에 만든 물 주전자 그리고 알바라신의 특권을 적은 특별법 책 등 역사적인 유적들이 전시돼 있다.

그 외에도 전시장에는 알바라신 최고의 대장장이 장인이었던 아돌포하레타(Adolfo Jarreta)의 작품이 많다. 그의 작품 중에는 생명 나무의 아담과 이브, 횃불을 들고 있는 천사, 두 마리의 투우 소 등 수 십여점이 전시돼 있다. 스페인에서 소는 야생과 행운 그리고 수호신을 상징한다. 알바라신 주택 대문에 달려 있는 문고리도 거의 하레타가 제작한 것이다.

아랍인들이 세운 알바라신 성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여기에 오르면 마을 전체는 물론 적이 쳐들어오는 것까지 모두 관망할 수 있다. 성벽을 따라 지은 11개의 타워와 남쪽에는 정사각형의 타워가 있다. 성벽은 빨간 석고 시멘트가 칠해져 있는데 이것은 아랍인들이 사용한 것은 아니다. 가톨릭 군대가 이곳을 점령한 후 나중에 칠한 것이다.

성터는 1세기의 유적 터와 12세기에 지은 궁전 유적 터가 있다. 왕이 기거하던 주거지는 중앙 안뜰 높은 곳에 있다. 안뜰 아래에는 물을 저장한 큰 물통(Aljibe)과 이슬람식 사우나(Hamman) 그리고 방과 방을 연결하는 아치형 회랑도 있었다. 상상만 해도 당시 이곳이 얼마나 화려했는지를짐작게 한다. 성터에서 발굴한 11세기에 만든 도자기 등 유물은 모두 알바라신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알바라신 대성당은 12세기 이슬람 사원이 있던 곳에 지었다. 그러다가 16세기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건축됐다. 내부에는 본당과 합창단, 여러 개의 작은 예배당이 있으며 바로 앞에는 교구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는 전 세계에서 수집된 희귀한 예술품들이 많다. 15세기에 제작된 갈보리의 십자가, 16세기 브뤼셀 등 플랑드르에서 만든 7장의 태피스트리, 16세기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 컵, 16세기에 그린 오순절 성화, 17세기에 그린 최후의 만찬과 아베마리아, 19세기 알바라신 주교가 입던 제의와 모자, 장갑과 신발, 19세기에 그린 헤로니모의 산 펠릭스 초상화, 그 외에도 수 백년 전에 제작한 악기, 성모와 아기 예수 등 조각들이 전시돼 있는 조각 전시관, 십자가상의 그리스도, 성모와 아기 예수 등 많은 성화가 전시돼 있다.

블랑카 공주가 나타나던 곳은 ‘과달라비아르강’가다. 세월이 흘러 20세기가 됐다. 전설 이야기를 들은 청년(시장 아들)이 공주를 찾아 나섰다. 숲속에서 강을 살피는 순간 청년은 한 젊은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청년은 여인에게 다가가고깜짝 놀란 여인은 옷을 주워 숲속으로 숨었다. 청년이 누구인가 묻자 여인은 ‘도냐 블랑카의 그림자’라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쏜살같이 숲속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청년은 아버지에게 자신이 본 것을 알리고 아버지는 야간 경비원을 세웠다. 경비원은 며칠 만에 소녀를 체포해 아버지에게 데려간다. 그러자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슬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젊은 여인의 가족은 모두 유대인이었다. 마을에 유대인 추방령이 떨어지자 모든 유대인은알바라신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여인은 마을에 머물며 과수원에서 훔친 과일을 먹고 버려진 집에서 살았다. 그리고 보름달 뜨는 저녁에 목욕도 하고 물도 가져오기 위해 강으로 간 것이다. 소녀의 슬픈 이야기와 아름다움에 반한 청년은 소녀를 아내로 맞이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알바라신에 전해 오는 이야기다.


곽노은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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