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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앤 테크놀로지] 현대미술과 브론즈

데비 한, ‘미의 조건 VII(Terms of Beauty VII)’, 2010, 브론즈, 9점, 각 61x28x30.5 cm. 데비 한 스튜디오 제공, 사진 Sung-hun Ju.

데비 한, ‘미의 조건 VII(Terms of Beauty VII)’, 2010, 브론즈, 9점, 각 61x28x30.5 cm. 데비 한 스튜디오 제공, 사진 Sung-hun Ju.

청동은 인류가 발견한 가장 오래된 미술 재료 중 하나이다. 구리와 주석 등의 합금인 청동, 곧 브론즈는 선사시대인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해 철기 시대를 거쳐 21세기인 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사용됐다. 고대에는 브론즈 자체가 귀금속처럼 귀한 재료였기에 전쟁에서 이긴 정복자들은 전리품으로 제일 먼저 청동 조각을 확보해 녹인 후 다른 기념물을 만들었다. 오늘날 정보 혁명이라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도 브론즈는 여전히 비싸고 중요한 재료이다. 간단한 두상 정도의 청동 조각은 훈련을 거친 조각가가 스스로 제작할 수 있지만 이런 경우는 갈수록 드물어지고 있다. 거대한 규모의 동상이나 복잡한 조각 등은 이제 전문 제작소에서 만들어진다. 청동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는 유독 가스가 배출되므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기도 한다.

힘들게 제작된 브론즈 작품은 영구불변하는 영원성을 갖는다. 그래서 재스퍼 존스가 1960년에 만든 청동 작품 ‘두 개의 맥주캔’은 흔히 보는 단순한 음료수가 아니라 값비싼 장식품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빌렘 드 쿠닝이 아트 딜러 레오 카스텔리의 뛰어난 판매 실력을 비꼬아 “카스텔리라면 맥주캔 두 개도 작품으로 팔아 치울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말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존스는 정말 자신이 속한 갤러리 대표 카스텔리에게 청동으로 에일 맥주캔을 만들어 그림을 그리고 채색까지 해 주었다. 그러자 카스텔리는 이 작품을 실제로 순식간에 어느 수집가에게 팔아 치웠다. 마르셀 뒤샹 같은 작가의 레디메이드 미술 방식을 존중한 존스의 패러디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리처드 세라 같은 설치미술 작가는 의도적으로 브론즈를 피하고 거칠고 녹슨 표면의 강철 작품을 주로 만들었다. 하지만 같은 미니멀리즘 계열에 속하는 도널드 저드는 거울같은 광택이 나는 브론즈 설치 작품도 많이 제작하였다. 네 개의 원통형 기둥이 2m 정도의 직사각형 패널에 연결된 1973년 작 ‘무제’는 강철, 알루미늄, 구리, 브론즈 등으로 되어 있다.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 소장된 이 작품은 원래 3개가 주문 제작되었는데, 뉴욕 롱아일랜드시티의 번스타인 형제의 제작소에서 완성되어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에서 판매되었다. 이 작품에는 ‘JO 72-21’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Jose Otero’라는 사람이 ‘72’년 제작했으며 카스텔리 갤러리가 그해에 주문한 저드의 ‘21번째’ 작품이라는 뜻이다.

브론즈 작품은 시간의 흐름이나 영원성을 강조하고자 마치 고고 미술 발굴장에서 막 캐낸 듯 녹슨 것처럼 보이는 거친 표면을 일부러 남겨두기도 한다. 로스앤젤레스 출신 현대미술 작가 데비 한은 고대 조각품 ‘비너스’를 본 따 다양한 인종적 특징을 가진 하이브리드(hybrid) 인물상을 이런 식으로 만들었다. 땅속에서 수만 년의 세월을 견딘 것처럼 보이는 거친 표면의 두상은 각각 다른 인종, 다른 이목구비의 여인들이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레지던시를 하면서 한국 문화를 재발견한 작가는 당시 한국의 대중문화가 서구 중심적 가치관에 영향을 받아 인공적으로 생김새를 ‘교정’하는 풍토를 눈여겨보았다. 이것에 비판적 시각을 담아 다양한 미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묻는 작품이 이 ‘미의 조건’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는 주로 반질거리는 광택을 가진 검거나 짙은 갈색, 혹은 황동 색깔의 브론즈 조각이나 장식품을 보게 된다. 하지만 현대 작가들은 창의적인 상상력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사실적인 조각상이나 기마 상 형태의 구태의연한 표현을 극복하고 새로운 조형적 언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 또한 종전처럼 역사적 영웅이나 참전 용사, 정치인, 왕족들이 아닌 다양한 목소리와 경험을 담아내도록 주제도 확장했다. 따라서 이전에는 브론즈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다양한 대상과 주제가 영원성을 간직하며 금속 기념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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