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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코로나로 얻은 패자부활전

“테라스 작업을 하려고
땅만 파 놓고는 못했다
식구들의 원성은 높았고
공사는 여의치 않았다
그렇게 7년이 지나갔다”

8년 전 집을 사면서 뒷마당의 잔디를 6개월만에 다 죽이고 말았다. 잔디가 죽은 그 자리에 나무로 테라스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땅을 파헤쳤다. 땅을 파헤쳐 놓은 지 7년, 2019년 크리스마스까지도 테라스의 뼈대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식구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터 파기만 해 놓고 손 놓고만 있었겠나, 나도 나름 테라스 공사를 진척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주말에 틈틈이 나무도 사고 유튜브도 보고 연구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11월부터 3월까지는 직장 마치고 오면 어둑어둑해서 작업하기 힘들었다. 서머타임이 시작되는 3월 중순부터 다시 각오를 다지고 시작해 보려 했지만 바쁜 일상과 주말은 내게 많은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17살인 나의 딸 샤론이는 그간의 불만을 토로했다. 아빠가 헤집어 놓은 뒷마당에는 아예 나가기가 싫었고 친구조차 집에 부르지 못했다고 했다. 21살의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에게 1년만 더 시간을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냉랭했다. 샤론이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아빠의 시간은 이미 끝났다’였다.



2020년 들어서면서 샤론이는 대학 준비로, 아들은 아르바이트와 학업으로 바빴다. 누구도 뒷마당에 대해 언급을 삼가고 있었다. 역전의 기회는 3월 중순에 찾아왔다. 3월 19일, LA시장 에릭 가세티는 자정을 기해 LA시 전역에 외출 금지명령을 내렸고 4월 19일까지 계속된다고 발표했다.

2년여 전에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한 나는 집에서 일했기 때문에 외출은 개인적인 일이 대부분이었다. 이젠 그 개인적인 모임이나 활동이 중단된 상황이 시작되었다. 뒷마당에 테라스를 만들겠다는 나의 결심과 꿈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서머타임으로 길어진 해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에 뒷마당 테라스 작업하는 시간과 내 밥벌이 일하는 시간을 바꾸었다. 아침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는 테라스 일, 저녁 먹고 자정까지 밥벌이 일을 했다. 참고로 내 밥벌이 일은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는 일이다.

테라스 작업의 주재료인 나무를 사러 로웨스를 거의 매일 드나들었다. 코로나19으로 인해 로웨스는 때 아닌 활황을 맞고 있었다. 처음엔 마스크를 쓰고 매장 안을 들어가는 일이 무척이나 어색했지만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어가는 요즘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특히 콘크리트 믹스는 먼지가 많이 나는 아이템인데 오히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필요한 재료가 하나 둘씩 준비되어 갔고 본격적인 건설 작업에 돌입했다.

한낮의 뙤약볕에 일하기 위해 나는 목에는 수건을 두르고, 팔에는 토시를 끼고, 등산할 때 쓰는 모자를 썼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이내 등에 고이기 일쑤고, 바람이 없는 날은 눈으로 땀이 흘러 들어왔다.

유튜브에 DIY(Do It Yourself) 나무 테라스 만들기를 여러 번 보았지만, 내가 그대로 따라 하기에는 역부족인 것들이 많았다. 그늘에 앉아 이리저리 궁리하면서 나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보기 시작했다. 결국 여러 유튜버가 올려놓은 영상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참고해 나만의 방식으로 퓨전 나무 테라스 뼈대를 완성했다. 일단 뼈대가 완성되었지만 누가 봐도 뭘 하려는 건지 납득하기 힘들게 보였다. 우리 뒷마당이 내려다보이는 옆집 아파트 2층에 사는 글로리아 아주머니는 어느 날 내게 말했다.

“너 열심히 뭘 하고 있더라.” “그런데 너도 네가 뭘 하는지 잘 모르지?”

솔직히 첫 말은 잘 알아들었는데, 두 번째 말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집 안에서 이 말을 엿들은 아들이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고 안쓰러웠던지 나중에 내게 살짝 얘기해 주었다. 옆집 아주머니가 아빠 놀린 거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오기가 발동했다. 내 무언가 놀란 걸 보여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전동 스크루 드라이브 2개와 전동 커트 하나를 도둑맞았다. 언제나 처럼 작업 도구를 그냥 팽개친 채 두었는데, 다음 날 아침 스크루 작업을 하려는데 도구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가져갔냐고 물었지만 아니란다. 그제야 도둑맞은 걸 알았다. 밤새 내가 작업하던 공간으로 누군가가 침입했다는 사실이 참기 힘들었다.

그래도 어쩌랴. 소 잃고도 외양간은 고쳐야지. 새 전동 드라이브를 샀다. 돈을 최대한 아끼려 했는데, 그걸 가져간 사람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나의 테라스 작업은 계속되어야만 했다.

뼈대 위에 첫 번째 나무판을 고정한 날, 마치 옛날에 집 지을 때 상량식을 하는 기분이었다. 나무 바닥 판은 일단 한번 시작되면 같은 작업이 반복되지만 금세 나무 테라스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해 질 무렵 바닥 판이 다 덮였을 때, 나는 내 꿈이 이루어지는 걸 실감했다.

다음 날 아침 옆집 글로리아 아줌마가 작업을 마무리하러 나온 나를 내려다보고 말했다. “예쁘다. 진짜 잘했네. 나중에 테라스에 의자 놓으면 내 의자도 하나 더 놓아주는 것 잊지 마.” 나는 기꺼이 그러겠다고 답했다.

가족들도 나의 첫 테라스 작업에 만족해했다. 이젠 뒷마당에 자주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코로나19로 집에 자가 격리하면서 모두가 힘든 시기에, 나는 패자부활전에서 살아남았다.


여준영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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