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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포옹

“자연은 마스크도 없이
장갑도 끼지 않은 채
나를 끌어 안았다.
세상이 아우성쳐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한다”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기다렸던 여행이었다. 직장에 휴가 신청도 여유있게 해 놓고 세도나의 봄을 그리며 마음 설레었다. 몇 해 전 LA를 떠난 후 바다가 그리워 해마다 봄이 되면 캘리포니아 바닷가를 찾았다. 하지만 올해는 딸아이의 간절한 소망으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지난해 가을, 처음으로 세도나에 다녀온 후 그곳의 절경에 반한 딸은 봄에 꼭 다시 오기를 바랐기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마침 나도 세도나의 봄은 만난 적이 없어 마음이 돌았다.

떠나기로 한 지 불과 이틀 전에 여행을 취소하자는 딸의 전화를 받았다. 코로나바이러스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그저 좀 그러다 말겠지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태세였다. 매일 아침 신문을 열 때마다 코로나의 글자에 크기를 더해가고 굵기에 힘이 주어졌다. 딸은 상태가 심상치 않아 비행기 여행을 취소하는 것이 좋겠다며 내 눈치를 살폈다. 엄마로서 오겠다고 해도 말려야 하는 처지에 그러라고 할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예약한 숙소를 취소하기는 이미 늦었다.

결국 혼자서 세도나로 출발하던 날은 사막의 봄답지 않게 시커먼 구름이 온통 하늘을 뒤덮었다. 방금 비를 뿌릴 듯한 하늘이 침체된 내 마음에 무게를 더했다. 도착하면 그럭저럭 날이 저물 테니 간단히 저녁을 해결할 장을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자주 다니는 집 근처 마켓에 들렀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마켓 앞에는 주차할 자리도 없고 사람들은 커다란 카트를 끌고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젠가 보았던 자연재해로 지구가 멸망하는 공상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온몸이 오싹했다. 나는 마치 이방인처럼 그들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고 차를 돌려 무작정 세도나로 떠났다.



세도나에서 홀로 지낸 일주일 동안 코로나의 도전은 하루하루 나를 상상의 밖으로 내몰았다. 예약했던 주립공원 자연 투어 패키지가 취소되더니 다음 날엔 내가 즐겨 가던 유기농 마켓의 오픈 키친과 카페가 문을 닫았다. 세도나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음식을 즐기던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테이블 위에 의자들이 포개진 채 놓여 있었다. 마치 ‘지구’라는 커다란 무대가 공연을 마치고 현란했던 등불을 하나씩 하나씩 끄며 막을 내리는 듯했다.

어느 날부터인지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더니 서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필요한 물건들이 넘치듯 쌓여있던 커다란 마켓의 선반들이 하나씩 하나씩 앙상한 뼈를 드러냈다. 친구로부터 투산은 이미 동이 나버린 화장지가 혹시 세도나에 굴러다니면 보이는 대로 사 오라는 특별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이 무거웠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직장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거물 코로나는 이미 내 직장까지 손을 뻗쳐 놓았다. 모든 정기수술이 취소되고 응급수술만 비상근무 대기로 시행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수술실에서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는 나는 온콜 근무를 하지 않기 때문에 정기수술이 재개될 때까지 휴무하라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시한 없는 백수 신세가 되고 말았다.

두 달이 넘는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시간이 많아진 덕분에 아침마다 집 근처 산행을 시작했다. 자연은 마스크도 쓰지 않고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조건 없이 나를 끌어안았다. 금방이라도 세상이 뒤집힐 듯 아우성치는데 자연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서두르지도 쉬지도 않고 새싹을 내고 몽우리를 올리더니 마침내 꽃을 피웠다.

두 달이 두 해처럼 느껴지던 어느 날, 마침내 출근했다. 현관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체온을 재고 심문하듯 한꺼번에 여러 가지 질문을 쏘아댔다. 탈의실을 거쳐 수술실 라운지의 문을 여는 순간 함께 일하던 동료들의 얼굴이 꿈같이 다가왔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다가서다가 갑자기 움찔해져서 “포옹해도 되나요?” 하고 물었다. 허락을 받으려는 내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리는 서로 힘껏 부둥켜안았다. 코로나의 거센 도전과 그로 인해 겪고 있는 불편과 아픔까지도 모두 함께 끌어안았다. 근무를 시작하기 전 리포트실 게시판에 나를 포함해 근무를 재개한 동료들의 이름이 굵고 크게 쓰여 있었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면서 환영의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멈춤은 동시에 시작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꺼졌던 무대를 밝히는 작은 불빛이 되고 시작을 알리는 힘찬 울림의 소리가 아닐까. 우리의 박수와 환호는 아름답고 찬란했던 ‘지구’의 무대가 다시 활짝 열릴 때까지 더욱더 힘차게 계속될 것이다.


한이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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