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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친구를 찾습니다

“그 친구 지금 어디에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미국으로 갔을까
만난다면 얼굴을
알아볼 수는 있을까”

친구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3학년 땐 같은 반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 물어봐야겠다.

14살 내 눈에 비친 친구는 생각이 반듯하고 나보다 작은 키에 통통했다. 눈동자가 유난히 초롱초롱하고 도톰한 입술에 동그란 얼굴이 예뻤다. 참, 목소리도 예뻤지.

그 시절 우리 집은 서대문에 있었는데 효자동 학교에서부터 함께 걸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얘기가 끝이 안 나서 친구 따라 신촌 굴다리까지 걸어가서 친구 집에 들르면 친구는 설탕 그릇과 차 수저 두 개를 내오며 ‘우리 퍼먹자’하기도 했다. 설탕가루를 퍼먹는다는 말에 난 놀랐었다.

친구는 공부를 나보다 잘했는데 고등학교 입시에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다니던 중학교에서 그대로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하는데 대부분 합격할 때였다. 친구와 함께 합격자 발표를 보러 학교에 갔는데 벽보에 내 이름만 있고 친구 이름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는데 마침 지나가던 중2 때 담임 선생님이 너희 어떻게 됐니 묻는 바람에 더욱 난처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친구와 난 길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친구는 다시 한번 다른 학교에 2차 입학시험을 보았고 웬일인지 또 낙방했고 친구 아버지의 권유로 멀리 태릉에 있는 이름도 생소한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거기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대학도 그곳으로 갔다. 그때는 태릉이 꽤 멀어서 친구와 편지 교환을 했는데 내가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그보다 바이올린이 낫지 않느냐는 답장을 보내왔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 다른 친구들과 미팅이다 뭐다 바삐 지내던 어느 날, 큰 맘 먹고 친구를 만나러 태릉까지 간 적이 있다. 그날 나는 내가 디자인한 주황색 원피스를 입고 갔다. 친구는 내가 온다고 해서 준비했다며 우유를 내놓고 학교 농장에서 키운 거라며 홍당무를 뽑아와서 같이 깎아 먹자고 했다. 중학교 때 친구 집에서 퍼먹던 설탕가루 생각이 났다. 친구는 중2 때와 생각이 변함 없었다. 그러나 몸은 많이 말랐다. 나중에 다시 한번 태릉을 찾아갔을 때 친구는 내 옷과 똑같이 디자인한 주황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 후 얼마 동안 소식이 없다가 느닷없이 결혼했다며 집으로 놀러오라해서 집을 찾아가 그 애가 해준 매운탕을 먹었다. 그 당시 난 졸업 후 막 사회에 발을 디딘 때였는데 친구는 빨리도 시집을 가버렸다. 제법 주부 티를 내면서 매운탕은 생선을 나중에 물이 끓은 다음에 넣어야 맛있단 말까지 했다.

시댁이 새문안교회 뒤쪽 부촌에 있었는데 거기서 잠깐 살다가 얼마 전 분가했다며 이제 곧 대학 선배인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을 갈 거라고 했다. ‘기집애, 오랜만에 갑자기 연락하더니만 떠난다고? 어쩜 결혼식에 날 부르지도 않다니, 저랑 나랑 겨우 그런 사이였던 말인가.’ 섭섭했다. 떠나기 전에 꼭 연락할 줄 알았는데 그 후 소식이 아주 끊겨버렸다.

그 친구 지금 어디 있을까. 난 지금도 문득 문득 그 친구를 생각한다. 그때 말대로 미국에 갔을까. 혹시 시애틀에 있을지도 몰라. 만난다면 얼굴을 알아볼 수는 있을까. 가랑잎이 굴러도 까르르 웃는다는 나이에 만난 친구. 가랑잎이 굴러도 우린 웃지 않고 심각했었다. 둘이서 효자동에서 광화문 뒷골목을 거쳐 광화문 큰 길에 있는 금광제화점 쇼윈도 구두를 구경하고 서로 손을 잡고 흔들며 다녔다. 서대문 로터리를 지나 아현동으로 가면 상가가 없어 심심해지다 신촌을 지나 굴다리 너머엔 뻥튀기 아저씨도 보였다. 뻥이요 하는 소리와 함께 귀를 막고 막 뛰어가던 친구와 나.

어떤 땐 친구와 학교 배지를 떼고 몰래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때 함께 무슨 영화를 보았더라? 그런데 친구와 난 취향이 좀 달라서 좋아하는 영화배우도 달라 맘이 안 맞아 삐죽거리기도 했다. 왠지 난 주름이 풍성히 잡힌 긴 치마를 입은 맨발의 집시 여인이 좋았고, 걘 좀 고상했지 아마. 그 친구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을까.

지금도 나는 아카시아 잎을 보면 중2 때 담임 선생님이 생각난다. 국어 시간에 선생님은 시를 가르치시며 시가 별 건가, 너희들이 산에 오르다 아카시아 잎을 훑어서 날리며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하면 그게 시라고 하셨다.

우리 동네에 아카시아 나무가 있다. 그 나무를 볼 때마다 나는 선생님을 생각하고 김소월의 시 ‘초혼’을 생각하고 그때 너희 어떻게 됐니 물으시던 선생님과 당혹스러웠던 친구가 생각난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젠 정말 그 친구를 한번 봤으면 좋겠다. 친구가 이 글을 읽고 나를 찾으면 좋겠다.


신순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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