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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누고 비우기

“ 비움이 채우는 일보다
훨씬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인내와 결단이 따른다”

비운 후의 그 홀가분한 기분은 채울 때의 기쁨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작년 이맘때 이사를 하며 짐을 없애느라 고생을 했다. 무조건 다 버리면 좋으련만 그게 쉽지 않다. 이것은 귀한 물건이고, 저것은 기념되는 것이라 버리지 못해 다시 간직하기로 했다. 또 언젠가 필요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쌓이고 또 쌓인 짐이다. 작은 곳에 맞추느라 삼분의 일은 나누어 주고도 버리다시피 했다.

1년 만에 이번엔 교회로 사용하는 장소를 비웠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다시 셧다운이 되어 교인들과는 라이브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니 교회 건물 사용료에 보험료, 전기와 물값 등을 계속 내는 게 오히려 낭비였다. 교회 건물이 필요 없어 기물과 살림살이를 두 달 동안 치우고, 버리고 이웃과 나누었다. 책은 다시 우리 집으로 왔다. 처분하기 힘든 큰 짐은 테이블과 장의자와 피아노, 캐비닛, 책장이었다. 아들이 미국의 지역 생활 정보 사이트에 공짜로 주겠다며 여러 차례 광고를 냈다.

어떤 사람은 금방 가져갈 듯 약속을 한 후 차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크기여서 못 가져간다고 다시 문자가 오기도 했다. 기대가 사라지고 또 근심이 찾아들었다. 비워줄 날짜는 점점 다가오는데 불안해지고 그 짐의 크기만큼 걱정은 부풀어 머리를 짓눌렀다. 몇 차례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또 다른 연락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장의자와 피아노를 가져가겠다는 전화가 왔다. 샌디에이고에서 유홀 차를 빌려 세 시간을 운전해 왔기에 오후 3시가 넘어 도착했다. 티후아나에서 선교를 돕는 젊은 외국인이 장비를 갖고 와서 장의자와 피아노를 뜯어 실어 가는데 밤 9시까지 작업을 했다. 남편은 음료수와 김밥을 대접해가며 작업을 도왔다. 장의자를 하나하나 뜯어서 차에 싣는 데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는 줄 몰랐다. 오래된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도 뜯어서 가져갔다. 그는 거저 얻어 필요한 선교지에 보내게 되니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쓸고 닦으며 소중하게 다루어 정이 들었는데 다시 필요한 교회로 가져가 사용될 것이니 마음이 뿌듯했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는 일이기에 기쁨이 배로 채워졌다. 나누는 행복에 보태어 기한 안에 비워야 하는 부담감까지 덜어준 그들이 고마워 차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비우는 일에 대해 새삼 느끼는 바가 많다. 코로나로 직장을 잃거나, 사업체를 접거나, 집을 잃고 비워줘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더 많을까. 내가 겪은 일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서 밤잠을 못 자고 고민을 하겠지. 난 먼저 비우기를 겪었기에 그 일이 결코 실망스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오히려 버거운 짐을 덜어 홀가분해지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될 것이다.

요즈음 냉장고 속을 비우는 일조차 행복을 느낀다. 하나씩 비우니 그 사이로 잊은 음식이 보이고 먹을 것과 버릴 것이 보인다. 비우니 공간이 생기고 또 채울 수 있어 비울 때 더 큰 충만감이 찾아옴을 비로소 알게 된다.

물건뿐 아니다. 내 몸에 필요 이상으로 쌓인 지방을 줄이는데 1년은 더 걸린 것 같다. 열심히 운동하며 땀을 내 조금씩 몸무게가 줄어 가벼워지니 비우기 덕분이다. 나는 워낙 욕심이 없는 느긋한 성격이기도 하지만, 은퇴하고 집에서 지내며 만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안하다. 아등바등 살 이유가 없다. 이젠 매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비우지 않으면 건강에 적신호를 느끼는데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

어차피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떠난다는 것을 안다면 미리미리 비우기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자. 비우는 일은 채우는 일보다 훨씬 가볍고 행복하다는 것을 알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인내와 결단이 따를 뿐이다. 일단 뭐든지 비우고 나면 가벼운 날개를 다는 것이다.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가벼운 비우기와 사랑과 신뢰를 나누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코로나로 일상이 바뀌어 버린 요즘, 비우기와 나누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다.


신혜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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