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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트럼프를 선택한 7100만표

공식 발표는 안 나왔지만 이 정도면 승부는 끝났다. 아직도 남은 표가 있긴 하지만 상황이 뒤바뀔 정도는 아니다. 현재까지 트럼프가 얻은 표는 7150만 표가 넘는다. 역대 어떤 대통령 당선자보다 많다. 그럼에도 바이든을 이기진 못했다. 바이든은 7600만 표를 얻었다.

그럴 리가 하고 반문하는 이도 있겠지만 시민권자 한인들은 6대 4 정도로 트럼프 지지가 많았다. 이는 선거 전 중앙일보 웹사이트 설문조사에서 세 번이나 확인됐다. 그래서인지 이번 선거 결과를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한인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샤이 트럼프’, 드러내놓고 말은 안했지만 은근히 트럼프를 지지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이들은 바이든 지지자와 달리 나름대로 소신이 뚜렷했다. 설문조사 답변이나 SNS에 올라온 글, 주변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트럼프의 경제 정책을 가장 맘에 들어했다. 규제 완화, 세금 인하, 중국 압박 등이 모두 트럼프의 치적이라 믿었다.

주변 기독교인 중에서도 트럼프 지지자가 상당수였다. 코로나 사태 대처나 그간의 행적, 발언 등을 보면 크리스천 정신과는 별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도 “트럼프야말로 하나님이 보낸 일꾼”이라 목청 높이는 이들까지 보았다. 북한 김정은과 대화 물꼬 튼 것을 들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트럼프가 더 나을 것이라 말하는 한인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한인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끝내 바이든을 선택했다. 왜일까? 알다시피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트럼프대 반트럼프 구도였다. 인물이나 정책 대결이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로 본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반트럼프 쪽에선 미국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자유와 관용을 트럼프가 방종과 이기심으로 바꿔 놓았다고 생각했다. 국제적 조롱거리로 추락한 미국의 자존심도 되찾고 싶어 했다. 그런 표심들이 모두 바이든 앞으로 몰렸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순간부터 당신은 나의 대통령이자, 모든 미국인들의 대통령입니다.” 2008년 대선 때 오바마에게 패한 매케인의 승복 연설이었다. 하지만 100년 넘게 이어진 이런 전통도 이번엔 볼 수 없을 것 같다. 여전히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패배 인정을 거부하고 있는 트럼프의 몽니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물론 세계가 이미 바이든 당선을 기정사실화했다. ‘대통령 바이든 시대’를 조망하는 보도 역시 봇물이다. 그 중 인상적인 것 하나는 50년 가까이 의회 생활을 한 바이든이 “상대의 나쁜 점을 찾아 공격하기 보다는 좋은 점을 찾아 함께 가고자 했다”는 기사였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용공으로 몰아가는 공화당 보수 매파 제시 헬름스 의원과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바이든은 뇌성마비를 앓는 9살 아이를 입양했다는 헬름스의 좋은 점을 찾아내 관계를 풀어나갔다”는 대목은 바이든이 어떤 사람인지 단적으로 말해 주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드러났듯이 지금 미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거의 1860년 남북전쟁 직전 수준이다. 도시와 비도시, 동서부 연안과 내륙의 대립은 극과 극이다. 빈부격차와 정치적 성향에 따른 증오와 반목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이든 같은 배려와 포용의 리더십이 아닐까 싶다.

대통령 한 명 바뀐다고 산적한 문제들이 당장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더 이상은 비상식적이고 반이성적인 3류 정치에 시달리지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은 든다. 이민자로서 인종과 피부색, 정치적 성향과 재산, 종교, 성별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위협받지 않는 평온한 일상이 조금씩 더 가능해지리라는 희망도 품어본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더불어 함께’라는 대의 앞에 소소한 개인의 이익은 조금이나마 양보하겠다는 자세는 가져야 할 것이다.

마침 바이든도 승리 연설 일성으로 치유와 화합을 부르짖었다. 앞으로 4년, 달라질 미국을 기대하며, 갓 블레스 아메리카(God Bless America)!


이종호 편집국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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