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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빨간 산은 여전히 빨갛다

“마지막 만남에서도
사랑이란 말은 하지 않았다
오신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너 사는데 가서 잘 있고,
일 잘 다니는 것 보고 가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퇴근길에 라디오를 틀었다. 입추란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가로수가 푸른 빛을 잃어가고 있다. 가정 교육학 박사가 인터뷰한다. 자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고 감정의 교류에서 사랑을 읽는단다. 동감한다. 역시 박사라서 생각하는 것이 남다른 것 같다. 간간이 노란색으로 물들어가는 나뭇잎이 눈에 띈다. 문득 마지막 본 아빠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1994년, 부모와 함께 다른 주에 살던 나는 새 직장을 구해 로스앤젤레스로 왔다. Los Angeles. 한국 사람이 많이 산다고 하지만 정작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자리를 잡을 때까지 잠시 사촌 언니네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당시 아빠의 누이인 고모도 언니네와 함께 살았다. 고모와 언니네 가족들이 잘 대해 주어서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몇 달이 지나자 꼭 여기에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익숙지 않은 업무, 생소한 직장 동료들, 낯선 도시를 뒤로하고 다시 낯익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의 고민을 아셨을까. 직장 생활을 하던 두 분이 쉬는 날을 빌미로 갑자기 오셨다. 미국에 이민 온 후 로스앤젤레스에는 처음 오신 것이다. GPS도 내비게이션도 없던 그 시절. 친구에게 묻고 사촌 오빠에게 물어서 겨우 왔다. 새벽에 지금 떠난다는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저녁 무렵에야 도착하셨다. 천천히 와도 6시간이면 오는 거리를 하루의 반을 운전해서 온 것이다. 복잡한 로스앤젤레스 프리웨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고 점심도 거르고 오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저녁을 먹고 부모님과 내 방에 앉았다. 어떻게 지내냐, 일은 잘하고 있냐는 간단한 안부 인사가 끝나자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멋쩍게 요즘 빨간 산에 가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레드 록 캐년(Red Rock Canyon), 빨간 산. 나무 하나 없이 빨간 흙만 있는 빨간 산. 미국에 먼저 오셔서 자리를 잡으신 아빠는 쉬는 날이면 엄마와 어린 나와 동생을 데리고 다니셨다. 딱히 갈 곳이 없는 날은 으레 빨간 산으로 향했다.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레드 록 캐년 내셔널 보호관리지구다. 처음에는 통행료를 내고 들어갔지만, 나중에는 가까운 곳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서 들어갔다. 저녁노을에 비친 빨간 바위는 정말 아름다웠다. 가서는 엄마가 싸온 김밥을 먹었다. 빨간 산은 우리 집에서는 안 보였다. 일하러 오갈 때만 보였다. “가면 뭘 해. 가 봤자 빨간 산. 뭐 달라지게 있나. 아직도 빨갛기만 하지. 나무 하나 없고.” 이런 생뚱맞은 대화를 하며 멀거니 창밖을 바라봤다. 노란 나트륨 가로등 밑으로 가로수가 가을바람에 색이 변하고 있었다.

이튿날 오후, 사무실 복도에서 기다리던 부모님은 나의 책상을 봐야 한다며 기어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셨다. 얼굴이 빨개지며 말리는 나를 제치고 아빠는 일일이 직장 동료들과 악수를 했다. 이런 일은 이후에도 없었다. 당황한 동료들이 상황을 눈치채고 씩 웃으며 악수를 하고 지나갔다. 특히, 콧수염 난 유대계의 마티가 환히 웃으며 악수를 하고는 본인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농을 했다. 이 말을 진짜로 믿었는지 아빠는 크게 웃었다. 조용한 사무실이 소란해지자, 당시 나의 매니저였던 일본계 3세인 케이스가 무슨 일인가 하고 오피스에서 나왔다. 케이스를 보고 놀란 내가 보스라고 하자 아빠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나를 당부한다고 했다. 대충 알아들은 7피트에 가까운 거구의 케이스가 웃으며 살짝 무릎을 구부리며 5피트가 겨우 넘는 아빠의 어깨를 두드리며 안았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자 아빠는 그제야 안도하며 윙크를 했다. 한쪽 구석에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던 나는 어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다음 날 새벽, 저녁에 출근하기 위해 두 분은 근 300마일이나 되는 거리를 다시 운전하고 가야 했다. 가로수는 이제 완연한 가을 색으로 물들었다. 아빠는 해가 이른 새벽에 떠나니 염려하지 말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고모와 언니에게 고맙다며 나를 잘 부탁한다고도 했다. 운전대를 잡고 손을 흔들며 갔다. 그 후 두 달이 채 못 되어 돌아가셨다.

당신이 가실 줄 알고 오셨나. 다정다감하셨던 분. 엄마는 마지막으로 너 사는데 가서 잘 있고, 일 잘 다니는 것 보고 갔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마지막 만남에서도 사랑이란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신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이들을 낳고 기르며 살면서 가끔 아버지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박사가 사랑은 궁둥이를 때리고 말로 타일러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과연 아이들은 나의 어떤 모습에서 사랑을 읽으려나. 가을인데 빨간 산은 여전히 빨갛겠지.


이리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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