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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남편을 남자친구로

“인간 힘으로 극복 못 하는
상황에선 두려움이 생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편과 나는 서로 염려하는
마음으로 생각이 같아졌다”

인생사 마음먹기 나름이다. 한 살 터울의 사내아이들이 유난히 싸우면서 성장하는 이웃을 봤다. 얼핏 보면 친형제가 아니라 원수끼리 만났나 싶게 심하게 다투다가 동네 꼬마 어깨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즉각 둘이 하나가 된다.

문제는 코로나19 때문에 생겼다. 아무리 자신 만만하게 사는 사람이라도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선 두려움이 생기게 마련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편과 나는 서로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생각이 같아졌다. 행여 어떤 불이익이라도 받게 된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편과 나는 서로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생각이 같아졌다.

그동안 쌓였던 불평불만일랑 잠시 잊어버리고, 심각해지는 비상시국에 어떻게 하면 온전하게 견디고 살아남을 것인가를 얘기한다. 남편의 일터가 병원인 만큼 내 식구 하나 챙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날마다 이런 저런 환자들이 드나드는 곳이니 남편에겐 돌봐줘야 하는 사람의 숫자가 엄청나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을 직접 대면하는 부서는 아니지만 많이 노출된 곳임엔 틀림없다. 무엇을 겁내서 피하게 하기 보다는 날마다의 생활에 기쁨을 주고, 적절한 대화로 위로하며 면역력을 높이는 시간들로 부부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일면식도 없는 남들에게도 그리하며 살아야 하거늘, 밥 짓고 죽도 쑤며 산 세월이 48년차이니 무얼 망설이겠나. 마음 한 구석이 짠하고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사람을 돌보랴 싶어 얼었던 마음을 풀었다. 이런저런 하찮은 이유로 일터에서 항상 불이익을 당하는 남편이다. 젊고 약아빠진 타인종 약사들보다 배 이상의 처방전을 해 치워도 누구 하나 고마워하는 사람 없다. 더 빨리, 더 많이 하라는 은근한 요구를 비치는 윗사람과 얄미운 동료들뿐이다.

제발 무리하지 말라 하고 잔소리를 해도 성격상 일이 밀려 있는 꼴을 못 보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어쩌다 발생하는 실수가 면죄되는 것도 아니다. 조심하고 천천히 확인하고 절대 실수해서는 안 된다. 소 귀에 경 읽기가 따로 있나. 자업자득이니 알아서 하라고 포기한 지 오래다.

근면성실이 걸림돌이 되어 본인에게 화가 되어 돌아오는 생활을 고치지 못하는 사람이니 동정도 잠깐, 나도 지쳐서 손 놓아 버렸다. 그냥저냥 살아지는 세상에선 내가 손 놓아도 잘 흘러가지만 코로나19처럼 강력한 방해꾼이라면 내가 곁에 있어야 산다. 난 하나님 빽이 든든하니 혼자서도 얼마든지 견딘다. 그런 걸 인정하지 못하는 남편은 자기만이 나를 보호해줘야 하고, 자기만이 내 곁에서 나를 지켜야 한다고 법석이다.

못 말리는 커플이다. 피식 웃다가도 이번엔 고마운 생각이 든다. 남편 아니면 어느 누가 내 걱정을 이리 하랴 싶어서다. 귀찮고 짜증만 나던 남편의 잔소리가 따스하게 들린다. 일주일 내내 일하고 주말이면 피곤하기도 하련만 내가 어디 가고 싶어 하는지, 뭘 먹고 싶어 하는지, 온통 나를 향해 초 집중이다.

연애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뒤 돌아 볼 것 없이 지금이 바로 그 때가 되도록 만들어 보고 싶다. 날마다 궁금해서 전화하던 그 때.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 미국 선교사에게 배우던 영어 성경 시간에 그를 끌어 들이던 그 때. 단점이라곤 눈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던 그 때. 나를 세상에서 제일 스마트한 여자라고 착각해서 결혼하려 한 남자였던 그 때. (결혼 일 주년이 되기도 전에 마누라가 보통보다 훨씬 머리가 좋지 않은 걸 알아버린 남자) 무엇보다 우린 철저하게 서로를 존중했고, 말도 조심해서 고은 말만 사용했고, 양가 식구들에게 애정 어린 관심도 기울였었다.

지금 새로운 사람 만나서 서로 맞춰가며 어느 세월에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될 수 있겠는가. 볼 것, 못 볼 것 다 보고 산 세월을 챙기자. 귀한 시간들을 추슬러 행복한 뭉텅이로 꿰매어 보자. 겪어보니 이렇게 하면 어찌 될 것이고, 저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란 답안지가 손에 있지 않은가. 맘에 안 드는 남편 버려버리고 맘에 들었던, 결혼 전 그 남자를 소환해서 살아야 하겠다. 서로 불쌍히 여기고 적당히 풀어 주기도 하면서 각자의 고집을 꺾어도 보자.


노기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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