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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말라 해리스, 유부남 브라운과 오랜 불륜으로 정치력 성장

원용석의 아하! 미국 정치 ∥ 〈11〉민주당 부통령 후보

'정치 연인' 가주 하원의장 도움 결정적
검사장 때 사제 성추행 은폐 최대 오점

카말라 해리스(왼쪽)와 윌리 브라운은 캘리포니아 정가에서 소문난 ‘파워 커플’이었다. [휴스턴 크로니클 캡처]

카말라 해리스(왼쪽)와 윌리 브라운은 캘리포니아 정가에서 소문난 ‘파워 커플’이었다. [휴스턴 크로니클 캡처]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낙점된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은 주요 정당의 부통령 후보로서는 최초의 흑인여성 후보라는 기록을 세웠다.

한인 사회를 비롯한 소수계 커뮤니티는 그가 미국의 새 역사를 쓸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있다. 그런데 해리스도 정치인생에서 숨기고 싶어하는 어두운 단면이 있다. 주류언론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해리스의 정치 이력을 알아본다.

캘리포니아 정가에서 ‘카말라 해리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동시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전 가주 하원의장 윌리 브라운(86)이다.

브라운은 가주 하원의장을 15년 역임하고 샌프란시스코의 첫 흑인 시장을 지내는 등 2000년 초까지 30여년 간 캘리포니아 정가를 주름잡던 정치인이다. 브라운이 없었다면 오늘날 민주당 부통령 후보 카말라 해리스(55)도 없었다. 그 정도로 브라운은 해리스에게 절대적인 존재다. 이들의 관계는 가주 정가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스토리다.



탐사보도 기자 피터 슈와이저도 최근 출간한 저서 ‘부패 프로파일(Profiles in Corruption)’에서 해리스와 브라운의 관계를 다뤘다. 해리스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기 전에 나온 책이다. 이 책은 해리스가 어떻게 가주 정가에서 초고속 계단을 밟았는지를 에누리없이 보여주고 있다.

▶1994년의 운명적인 만남

해리스는 1994년에 브라운을 처음 만났다. 당시 브라운은 캘리포니아 정가의 ‘넘버2’로 통하는 가주 하원의장이었다. 슈와이저는 “브라운은 가주 정가에서 가장 부패한 정치인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부패혐의로 각종 조사를 7차례 받았고 FBI 조사만 두 차례 받았다. 일례로 1986년에는 특별이익집단으로부터 12만4000 달러에 달하는 금전과 선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조사 받기도 했다. 기소된 적은 없다.

브라운은 1958년에 결혼한 유부남이었다. 그가 해리스와 데이트하기 시작했을 때는 60세였다. 해리스는 불과 29살이었다. 나이 차만 31년. 해리스는 자신의 아버지 보다 2살 많은 유부남과 사귀었던 것이다.

브라운이 1995년에 샌프란시스코 시장에 당선됐을 때 그의 옆을 지킨 것도 해리스였다. 당시 브라운이 부인과 이혼하고 해리스와 재혼할 것이라는 루머가 파다했으나 이혼은 없었다.

이후 둘은 헤어졌지만 브라운은 계속해서 해리스의 정치인생을 돌봐주는 멘토 역할을 했다. 2002년에 캘리포니아 의료보조위원, 실업보험항소위원으로 해리스를 임명했다. 2개 위원직 모두 파트타임이었으나 해리스는 연 9만9000 달러와 11만4000 달러의 고액연봉을 받았다. 브라운은 이때 해리스에게 신형 BMW도 사줬다. 하지만 브라운이 해리스에게 안겨준 최고의 선물은 그의 정치 네트워크였다. 자신의 지지자와 후원자, 그리고 스폰서들을 해리스와 연결해줬다.

▶가주 최초 소수계 검사장

샌프란시스코 검사장 테렌스 할리난은 그의 범죄수사팀에 해리스를 고용했다. 그런데 해리스가 2003년에 자신의 상사와 맞붙겠다며 검사장 선거에 출마했다.

해리스가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윌리 브라운의 정치 네트워크였다. 예상대로 해리스 캠프에 후원금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석유재벌 폴 게티의 자손들을 비롯해 유명 로맨스 소설가 대니얼 스틸, 코미디언 크리스 락 등 유명인사들의 후원이 줄을 이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해리스의 전 남친 윌리 브라운 시장의 후원자가 대거 해리스 캠프를 후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리스는 당시 도전자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후원금을 쓸어담았다. 목표액인 21만1000 달러를 3배 가량 뛰어넘는 62만1000 달러를 모금했다. 해리스는 56%의 득표율로 가주 최초의 소수계 검사장이 됐다.

▶최악의 오점…가톨릭 아동 성범죄 스캔들 덮기

대선 경선에 출마한 해리스는 성범죄를 단속하는 여전사 이미지를 내세웠다. 그러나 그는 오늘날까지도 가톨릭 아동 성범죄 스캔들을 덮은 주범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가톨릭 교회의 크나큰 오점이자 교황청을 아동 성범죄 은폐 집단이라고 낙인 찍히게 한 가톨릭 아동 성범죄 사건이다. 미 전역에서 1950년부터 보고된 피해자가 약 1만7000명에 달하고, 이에 따라 7000여명의 신부가 고발됐다. 미국 가톨릭교회는 2018년까지 약 30억 달러를 보상금으로 지불해야 하는 의무를 받았다. 이 보상금으로 인해 미국 내 20개 교구가 파산했다.

샌프란시스코 검사장이었던 테런스 핼리난도 관련 신부들을 모조리 기소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상황이 돌변했다. 샌프란시스코 교구 관계자들은 2003년 당시 해리스 검사장 후보 캠페인에 후원금을 주기 시작했다. 해리스가 가톨릭 신자도 아니고 가톨릭 교회와 전혀 관계가 없음에도 후원금은 계속 들어왔다.

가해 신부들의 변호사 조셉 루소니엘로는 최대한도액인 1250달러를 지급했고, 그의 로펌도 2250달러를 후원했다. 이외 역시 신부 측 변호를 맡았던 다른 로펌 빙험 맥컷천도 2825달러를 후원했고, 아기다스, 캐스먼 & 히들리 로펌도 해리스 캠프에 4550 달러를 후원했다. 샌프란시스코 가톨릭 교구 관계자와 친인척들도 별도로 해리스 캠프에 도합 5만950달러를 후원했다. 슈와이저는 저서에서 “검사장 커리어 초반만해도 성범죄 전문 검사로 활약했던 해리스가 반대로 아동 성범죄를 덮어주는 반대 역할로 전락했다”고 질타했다.

해리스는 신부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린 사제들을 성폭행했는지에 대한 문서 공개를 모두 막았다. 반면 스티브 쿨리 당시 LA카운티 검사장은 관련 보고서를 공개하는 정반대의 결정을 내렸다. 그 결과 LA카운티에서 211건의 신부 성폭행 사례가 고발됐다. 사례가 공개되자 다른 피해자들도 용기를 얻고 나선 것이다.

반면 공개를 막은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고발 건수가 36건에 그쳤다. 무엇보다 해리스가 샌프란시스코 검사장으로 활동한 2004년~2011년, 그리고 캘리포니아 검찰총장으로 활동한 2011년~2017년까지 단 한 명의 신부도 아동 성범죄 혐의로 기소되지 않았다. 해리스 커리어의 최대 오점이었다.

특히 미 전역 50개 도시에서 성폭행 신부를 기소했으나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대도시에서 기소 사례가 나오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슈와이저는 “해리스는 후원금 지급 여부에 따라 기소대상을 정한 셈”이라고 질타했다.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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