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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흑백 갈등을 넘어서

"사회 안전망이 든든하고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미국이 이렇게 흔들리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엎친데 덮친다더니, 코비드19에 인종갈등까지 겹쳤으니 그게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 같다. 미국에 산 지 30년이 넘어 그간 4.29 LA폭동도 겪고 리먼 브라더스 경제 위기도 겪었지만 세계 최강국 미국이, 사회 안전망이 든든하고 시민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나라가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특히 최근에 벌어진 흑백 갈등이라고 말하는 인종갈등은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병이 재발한 것으로서 어쩌면 영원히 풀 수 없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아닌가 싶다.

미국에서 흑백 갈등은 여러 모습으로 불거져 나왔지만 그 가운데 ‘백인 경찰의 흑인 범죄 용의자에 대한 공권력 남용’ 사건들이 상징으로 떠 오른다. 4.29 폭동을 촉발시킨 로드니 킹 사건이 그러했고 이번 조지 플로이드 사건, 최근의 애틀랜타 흑인 사살 사건 등이 백인 경찰과 흑인 범죄용의자란 틀을 보여준다.

뉴욕 주지사가 한 말로 기억되는데 미니애폴리스 사건이 터지자 “얼마나 더 이런 사건을 겪어야 교훈을 얻을 것이냐?”라고 했던 탄식이 실감이 난다. 한 두 번도 아니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유사한 사건이 제도적으로나 관행적으로 별로 개선되지 못한 가운데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이 사건을 보면서 두어 가지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번째는 이번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그밖의 백인 경찰과 흑인 용의자가 연루된 사건을 흑백 갈등으로 국한해서 논란을 벌이는 게 온당한가이다. 미국에서의 인종갈등은 원주 인디언과 이주 백인 간의 갈등이 시초였으나 오늘날 인디언 세는 미미해서 갈등의 주체로서는 의미가 적어졌다. 하지만 주종 관계였던 백인과 흑인은 학대와 멸시, 굴종과 분노가 바탕에 깔려 있다. 흑백갈등은 흑인들의 사회적 신분상승에 걸맞도록 관계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되는 인종갈등이 분명하다.

오늘날 미국에서의 인종갈등은 흑백간 갈등이 전부는 아니다. 아시아계의 대량 이민으로 더욱 다양해진 다민족 국가가 된 미국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백인과 아시안, 흑인과 아시안 또는 흑인과 히스패닉, 히스패닉과 아시안 등 복합적인 인종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번 미니애폴리스 사건은 단지 흑백 갈등선에 머무를 게 아니고 폭 넓게 다민족 국가 안의 인종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그런 차원 높은 접근은 내가 여기서 말하기엔 벅찬 난제다. 단지 여기서는 인종문제를 접어두고 생각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백인 경찰이 흑인 용의지를…’이라는 관점을 백인이나 흑인이라는 말을 빼고 ‘경찰이 용의자를…’이라고 바꾸자는 말이다. 백인 경찰이 아시안이나 히스패닉 범죄 용의자를 폭압했거나 사살했다고 ‘백인 경찰이…’ 라는 수식어가 붙지는 않는다. 흑인을 다루는 경찰이 백인일 경우 굳이 백인이라는 것을 붙이는 건 다분히 의도적이거나 심하면 음모적인 냄새도 난다.

솔직하게 말해서 그런 이유로 오히려 흑백갈등을 부축이거나 증폭시키지 않나 하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결과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목소리가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보편적 명제를 압도하고 있다. 이게 정상인가? 나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생명 문제를 깔고 있지만 정의를 실현하는 시스템의 오작동 문제라고 생각한다. 공권력 작동의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두번째로는 이 사건을 계기로 공권력이 무너지지 않나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일부 일선 경찰의 일탈이나 범법행위를 공공 안녕 질서의 보루인 경찰 즉 공권력의 존재 의의를 훼손할 정도로 폄훼하고 무력화해서는 안 된다. 사건의 발단지인 미니애폴리스에서는 경찰 폐지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 밖의 지역에서도 경찰 예산의 대폭 삭감과 경찰인원 감원 움직임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상당수의 경찰이 사표를 내고 떠나고 있다. 남아있는 경찰도 사기가 많이 떨어진 게 분명하다. 공권력의 최첨병인 경찰이 무너지면 사회의 안녕 질서는 어떻게 되나? 경찰 업무는 긴장과 격무로 가장 고된 일 중의 하나다. 내가 아는 지인의 딸은 대학을 나와 멋진 제복과 사회지킴이의 보람을 꿈꾸며 LA에서 경찰이 됐고 같은 동료 경찰과 결혼하여 부부 경찰로 근무했었다. 그런데 격무에 시달리고 보람도 못 느껴서인지 경찰 옷을 벗고 부부가 애틀랜타로 이주해서 세탁소를 경영하고 있다. 제도 개선을 통해 경찰을 살리고 사기를 높여 줘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재임시 매복한 흑인에 의해 살해된 5명의 경관들의 추모식에 참석해 "경찰의 업무는 다른 이들의 일과 같지 않다. 경찰 제복을 입는 순간부터 당신들은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부름에 답해 왔다”고 애도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대해 “나는 평소 경찰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력을 행사할 것인지 훈련을 받지만 이번 충격적인 비극은 분명히 선을 넘은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또 인기 라디오 진행자인 흑인 래리 엘더는 얼마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살인사건 중 절반이 흑인에 의한 것이다. 시카고의 경우 살인 범죄 70%가 흑인이 흑인을 상대로 저지른 것이다. 흑인간 살인 범죄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모두들 경관들의 흑인 살인에만 매몰돼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 속에는 사건들이 백인 경찰과 흑인이 관계됐지만 흑백을 탓하는 내용이 없다. 여기에 긍정적인 희망이 엿보인다.

미국에서의 작금의 인종갈등 해결에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자르는 알렉산더 대왕의 칼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이 그렇게 발전해 왔듯이 누구나 포용하고 용납할 수 있는 보편적 삶의 터전을 만들도록 노력하고 인내하는 길 밖에 없다.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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