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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까마귀 우는 사연

“외출하려고 차로 가는데
까마귀가 머리 위서 울었다
몸에 소름이 확 돋았다
내 새끼 어디로 치웠느냐고
따지는 것처럼 들렸다.”

집 마당에 지붕을 훌쩍 넘은 우람한 뽕나무가 있다. 지인들이 우리 집을 찾아올 때 ‘큰 나무가 있는 코너 집’으로 기억을 한다. 경쾌한 새소리가 커튼 사이를 살짝 밀고 들어와 달콤한 아침을 열어주는데 며칠 사이 까마귀 소리가 너무 요란스럽다. 무슨 난리라도 난 듯했다. 까마귀는 흉조인데 머리 위에서 우니 혹시 나쁜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걱정을 했더니 남편은 미국에서는 길조라며 웃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뜰로 나갔다. 까마귀 두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우리가 나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심하게 울었다. 당장 독수리로 변해 내 머리를 쫄 것 같은 기세라 일단 후퇴를 했다. 풍성한 나뭇가지 어딘가에 둥지가 있는지,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을 위협하는 것일지 모르니 밤에 나와 보자고 했다. 어두워지자 플래시를 켜고 나무 위와 밑을 둘러보았다. 땅 위로 울퉁불퉁 어깨를 내밀며 얽힌 뿌리 사이에 갓난아이의 주먹만한 새끼가 엎어져 있었다. 죽었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땅에 떨어진 새끼를 깨우려고 부모 새가 목 터지게 울었나 보다. 당장 일으켜 세우지 못한 그 심정이 어땠을까. 아직 살아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혹시 다른 동물이 해코지 할까 봐 지키려 그 주위를 맴돌았을 터인데 불쌍해서 어쩌나.

남편은 이대로 두면 고양이나 개미들이 훼손시킬 수 있다며 거실에 있던 작은 나무 상자를 가져왔다. 나는 플래시를 들고 그는 상자에 차디차게 식은 아기 새를 넣은 후에 구덩이를 파서 묻었다. 어쩌다 둥지에서 떨어져 날개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죽었을까.

오밤중에 두 사람은 거사를 치렀다. 그날 밤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부모님이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교를 막 입학하고 나서였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는 마루에 그냥 쓰러졌단다. 근처의 위생병원으로 데려갔는데 뇌막염이라며 가망이 없으니 집에 데려가라는 진단을 받았다. 부모님은 포기할 수 없어 상반신은 열이 펄펄 나고, 하반신은 차갑게 식어가는 딸을 업고 길에서 목 터지게 택시를 외쳤다. 자동차들은 서지 않고 슬슬 피해 꽁무니를 감춘 채 달아났다. 얼마를 차도에서 뛰어다니다 결국 택시 한 대가 서주어서 을지로의 다른 병원으로 갔다. 그곳에서도 고개를 흔드는 의사에게 나중에 미련이라도 남지 않게 단 하루만이라도 병원에 머물게 해달라고 애원을 했단다. 결국 부모님의 정성으로 4개월의 투병생활로 지금의 건강한 내가 있다.



생전의 어머니는 그때의 심정을 “미친년 널뛰듯 차도를 누볐고, 목구멍으로 심장을 토해내듯 애걸했지”라고 하셨다. 올망졸망 칠남매 키우며 이런 고비가 얼마나 많았을까. 내가 자식을 키워보니 미열이 생겨도, 기침을 해도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았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기를 바랐던 적도 있었다. 자식의 죽음을 참척 또는 창자가 끊어지는 애달픔이라 한다. 박완서 작가도 생전에 남편을 잃은 슬픔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분신 같던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먼저 보냈다. 차라리 신은 없는 게 낫다고 할 정도로 생명을 주관하는 하나님에 대한 저주와 분노를 퍼부었다. 부모는 자식을 잃으면 자신이 큰 죄를 지어 그 벌이 자식에게 옮겨간 것이라는 죄책감을 평생 짊어진 채 살기도 한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은 동물도 우리와 같다. 작가 소로는 그의 책 ‘월든’에서 까마귀는 신의 피조물로 인간과 다를 것이 없다고 했다. 새는 번식기가 되면 알을 낳기 좋은 안전한 곳을 찾는다. 진흙이나 나무껍질, 배설물 등을 이용해 시간과 힘을 다해 자리를 고르고, 둥지를 짓는다. 알에서 새끼가 나오면 교대로 먹이를 나르고 가슴의 깃털을 물에 적셔와 새끼들이 빨아먹게 한다. 어릴 적 시골에 사는 외삼촌 집에서 어미 닭이 병아리들을 데리고 다니며 날개 밑으로 품어주고 마치 업어주듯이 등에 올리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밤새워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마치 전쟁이라도 난 듯 요란스러운 소리에 깼다. 까마귀가 어찌나 험악하게 우는지 동네가 흔들렸다. 밤새 새끼가 없어진 것을 알았나. 부산스럽게 이리저리 날며 발바닥에 불나듯 나뭇가지에도 전깃줄에도 앉지 않는다. 저러다 기운 빠져 땅으로 낙하하는 건 아닐지 걱정됐다. 외출한 일이 있어 차로 가는데 까마귀가 우리의 머리 위에서 울었다. 몸에 소름이 확 돋았다. 내 새끼 어디로 치웠느냐고 따지는 것처럼 들렸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전선에 까마귀 두 마리가 앉아 있다가 우리가 차에서 내리니 또 찢어지듯 소리치며 머리 위를 맴돌았다. 일부러 음악을 크게 틀어 그 소리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줄어들지 않았다. 밖에 나가기 겁이 났다.

반포지효라는 말도 있듯이 까마귀는 효성이 지극하고 인지능력과 기억력과 지능이 높다는 여러 실례가 있다. 까마귀가 긴 병에 든 물을 마시기 위해 작은 돌을 병 속에 물어다 넣어 부피를 높인 후 물을 마셨다는 연구 결과를 읽은 기억이 났다. 다른 새들보다 까마귀는 부모의 3분의 2 크기까지 커도 먹이를 받아먹으며 나는 법, 우는 법을 배운다는데 그 즐거움을 빼앗겼기에 더 애달프게 우는지도 모른다. 우리를 새끼 죽인 원수로 아는지 문밖에 나서면 격하게 울고 집을 맴돈다.

새끼를 사랑하는 마음은 사람이나 까마귀나 마찬가지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사랑하던 사람을 잃고 나면 비로소 깨닫게 된다. 괜스레 까마귀 부부에게 미안하다. 우리는 사체를 보호하려고 곱게 묻어주었는데 고맙다고 해야지 마치 죄인 취급을 받으니 억울하기까지 했다. 영물이라는데 오해를 하고 해코지를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말이 통한다면 안타까운 마음을 다 내보이고 싶다. 그리움이란 힘들고 애달픈 감정이란 걸 알기에.

우리가 들고 날 때마다 일주일을 짖어대던 그들도 지쳤는지 아니면 포기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마당에 물을 주며 까마귀 새끼가 묻힌 곳을 지나며 하늘로 한 번 차고 오르지도 못한 새를 안타까워했던 나도 어느새 잊었다.

어제 운동을 한다며 마당을 걷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 무릎과 손바닥에 피가 났다. 엉거주춤 일어나며 보니 나무 밑, 그 자리다. 까마귀 때문이야. 장례도 치러 주었는데 나에게 왜 이러느냐고 투덜댔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내 부주의를 까마귀에게 돌렸다. 가끔 까마귀가 전깃줄에 앉아있는 걸 보면 자식을 찾아온 그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애처롭다.


이현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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