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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잊을 수 없는 사람

"언젠가부터
존이 보이지 않는다
연로한 상태였으니
어쩌면 지금은
이 세상 소풍 끝내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름이 한창이다. 올해는 6.25 한국 전쟁 70주년이 되는 해다. 전후 베이비부머 세대로 태어나 그 참상을 직접 겪어 본 건 아니지만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불행한 사태였던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외국에 살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만 이민생활을 하면서 국적까지 바꿨어도 이 맘때가 되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을 위해 묵념을 올리며 옷깃을 여미게 된다.

6월이면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문득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벌써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존이라는 할아버지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존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이틀에 한번 꼴로 우리 가게에 들르는 손님이었다.

내가 사업체를 인수하기 전부터 단골인 듯 우리 종업원들 하고도 친분이 있어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이름도 알게 되었다. 미국 생활하며 곤혹스러운 것이,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나면 다음에 만날 때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줘야 하는데, 미국 사람들 이름이 좀처럼 외우기 힘들어 나중에 제대로 부르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존은 외우기가 너무 쉬워 그 후 만날 때마다 존을 부르며 친하게 되었다. 존은 내 영어 이름을 부르며 뒤에 꼭 ‘마이 프렌드’를 붙였다.



어느 날 오후, 다시 존이 왔다. 이번엔 못 보던 빨간색 모자를 쓰고. 그 모자에 ‘Korean War Veteran(한국전 참전용사)’이라고 자수로 새겨져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존, 한국전 참전 용사였어?”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물으니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난 존을 향해 거수경례를 올렸다. 내 진심에서 우러나온 존경과 감사의 표시로.

나는 존에게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텐데 왜 진작 얘기하지 않았냐. 나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지만 우리 조국을 위해 이역만리 먼 곳까지 가서 참전한데 대해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얘기를 했다. 존은 내 거수경례가 각이 잡혀 제대로 배운 것 같다며 농담을 했다. 비록 존보다 30년은 뒤였지만 나도 정규 군복무를 마친 사람이며 아직 군번도 외우고 있다고 대답했다.

존은 한국전이 시작되고 얼마 안 된 1950년 가을 파병되어 10개월 동안을 각종 전투에 참가했던 베테랑이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지명이 있다며 ‘개평(Gapyeong)’을 아느냐고 물었다. 머리를 갸웃하며 스펠링을 생각해 보니 ‘가평’을 말하는 것 같아 안다고, 가 본적도 있다고 하니 너무 반가워한다. 그러면서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당시의 참상이 생각나는지 얼굴에는 형용하기 어려운 여러 표정들이 스치는 것 같다.

존을 볼 때마다 나는 차렷 자세로 거수경례를 힘차게 올렸고 존도 웃으며 거수경례로 화답해 주었다. 어느 날 문득 존에게 줄 선물이 없을까 생각하던 중 책장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두꺼운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한국의 산하(山河)’ 라는 사진 화보집이었다. 한국 살 때 사진 화보집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지인으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그 책을 존에게 주기로 했다. 그러면서 약간의 망설임도 없지 않았다. 비록 60년도 더 긴 시간이 지나갔지만 어쩌면 다시는 떠 올리고 싶지 않은 아픈 추억일 수도 있고 내가 모르는 트라우마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한국의 산과 강 같은 사진을 보며 일부러 들춰내는 건 아닌 가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시 가게를 찾아 온 존에게 보여 줄 것이 있다며 책을 꺼내 왔다. 사진첩을 보는 표정을 읽고 그냥 보여 주기만 할지 아예 줄지를 결정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장 한 장 사진을 넘기며 보는 존의 표정이 꽤 상기된 것 같다. 어떤 사진은 한참을 들여다보며 눈시울까지 붉어지는 것이었다.

눈 덮이고 얼음이 언 사진을 볼 때는 그 때의 추위가 생각난다는 듯 몸을 움츠리며 덜덜 떠는 몸짓을 했다. 정말로 추운 겨울이었다고.

왜 그렇지 않았겠는가. 사철 따뜻한 캘리포니아 출신이 그 혹독한 한국의 겨울 추위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사진들 한 장 한 장에 푹 빠져 있는 존에게 이 책을 선물로 주고 싶다고 말을 건네자, 정말이냐며 내가 가져도 되냐고 너무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미국으로 이사 오면서까지 용케도 이삿짐에 넣어 가지고 온 게 드디어 임자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언젠가부터 존이 보이지를 않는다. 기억을 찬찬히 되짚어 보니 아마도 일년도 더 된 것 같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다고 해도 벌써 80대 후반이 되었을 나이다. 특별히 건강이 나빠 보이진 않았으나 연로한 상태였으니 어쩌면 지금은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존과의 만남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참 소중한 인연이었다.

그때 존이 휠체어를 타게 된 이유는 물어 볼 수도 없었지만 묻지 않았다. 지금도 그 이유가, 백척간두에 서 있던 내 조국을 구하기 위해 벽안(碧眼)의 미국 청년이 20대 청춘을 담보로 참가했던 그 한국전쟁 때문은 아니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송 훈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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