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에 잔소리까지 넣어야 좋은 약사”
고수를 찾아서 <16>김충섭 가주 한인약사회장
고교 때 이민…39년차 약사
UCLA·오리건주 약대 졸업
85년 ‘마틴약국’ 등 3곳 열어
약국들 월구매력 3000만불로
힘합쳐 약 공동구매해야 생존
코로나로 약국도 배달전쟁
클로로퀸 예방약 복용 안될말
약사들은 처방의 최종 감시자
약이 독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인간은 이미 기원전부터 알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선 약, 독, 주술이 같은 말이었다. 약국(Pharmacy)의 어원인 ‘파르마콘(Pharmakon)’의 뜻이다.
2500년 전 약의 의미는 제발 독이 되지 말기를 바라는 간절함까지 포함한다.
김충섭(영어명 마틴·65) 가주 한인약사회장은 처방하는 이에게 그 간절함이 없다면 환자에게 약은 독이 된다고 믿는다.
그는 39년차 베테랑 약사다. 70년대 이민온 가정의 1.5세 자녀들이 겪었던 삶을 그도 걸었다. 터전 마련하느라 고생하는 부모를 돕고, 육체노동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고 시티칼리지를 거쳐 대학을 나와 82년 약대를 졸업했다.
LA한인타운 대표 약국 중 하나인 ‘마틴 약국’이 그가 서른 한 살 때 개업한 첫 약국이다. 85년 8가와 버몬트 인근에 문을 연 이래 35년째 타운을 지키고 있다. 현재 마틴 약국은 그의 여동생이 맡고있고 그는 토런스에서 2개 약국을 운영 중이다. 그의 인생 처방전을 되짚었다.
#미래 처방, 미국
1954년 서울서 태어났다. 포스코 전 사장을 역임한 김상억(2009년 작고)씨와 최경옥(2000년 작고)씨의 2남1녀중 장남이다. 최인호(2013년 작고) 소설가, 최영호 라디오코리아 방송위원이 외삼촌이다.
1972년 고3때 LA로 가족이민왔다. 자식들을 위한 부모의 미래 처방전이었다. 아버지는 도착 직후 담석증으로 3주 동안을 앓고 나서도 구직에 나섰다. 포항제철에서 발전소를 설계한 경력으로 200여 군데 이력서를 내밀어 4개월 만에 취직을 하셨다. 어머니는 봉제공장서 바느질을 했다.
“아직도 기억한다. 아버지께서 아프실 때 어머니는 가계부를 보시더니 ‘아들아 이번달에 당장 400달러가 부족한데 어쩌니. 네가 200달러는 마련해볼 테니 니가 200달러를 벌어야겠다’고 하셨다. 시급 1.25달러 잔디깎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땐 다들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진로 처방, 약대
공부는 샌타모니카칼리지에서 시작했다. 학비가 거의 무료였다. 등록비 7.50달러만 내면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공부는 잘했다. UCLA로 편입해 의대 진학을 준비하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계기가 있었다.
78년 어머니가 운영하던 작은 편의점에 새벽에 강도가 들어 직원이 변을 당했다. 직원 대신 가게 일을 해야했다. 마침 카운슬러의 조언이 약사를 선택하게 했다. 큰 돈 드는 의대보다 장학금받고 약대를 가라고 했다. 편의점 일을 도와야 했으니 가장 늦게 개학하는 오리건주립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캠퍼스에서 전자공학도인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배려하는 마음씨가 따뜻했다. 82년 약대 졸업 후 결혼했다. LA에 돌아와 롱비치 베터런스병원에서 새내기 약사로 시작했다. 3년을 일했다. 기계적인 처방은 약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머니 약손 같은 약국을 차리고 싶었다.
#한인 처방, 약국
부모 집을 담보잡아 85년 개업했다. 그해 12월 한인약사회 송년모임에 모인 회원 약국이 12개였다. 그중 미국에서 약대를 나온 1.5세 약사는 그가 유일했다. “LA 최초 한인 약국이었던 ‘포럼 약국’의 장진성 약사님, 리스 약국 이상주 약사님 등이 대선배셨다. 한인 약국끼리 서로 이끌고 밀어주는 길을 논의했다."
그가 협회에서 할 일은 분명했다. 한국서 약대를 나온 약사들에게 미국 약사시험 공부를 가르치는 클래스를 열었다. 덕분에 한인 약국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지금 남가주에만 150개에 달한다.
약사로 사는 동안 건강한 가족도 꾸렸다. 자녀가 넷이다. 큰딸과 막내 아들은 약사의 길을 이었다. 둘째딸은 자폐아동 특수교사, 셋째 아들은 호흡기내과 전문의다.
#38년 처방, 약사
-11년 만에 다시 약사협회장을 맡았다. 협회 내 변화는.
“전체 구매 규모로 보면 한인 약국들은 크게 성장했다. 내가 개인 약국을 열었던 85년엔 한인 약국 수가 12개에 불과했다. 당시 구매력은 많이 잡아도 월 몇십만 달러 정도였는데 지금은 매달 3000만 달러가 넘는다. 하지만 갈수록 한인 약국들의 운영이 어려워지고 있다. 재작년까지 남가주 회원 약국이 148개였는데 지난해 2곳이 문을 닫았다. 특히 규모가 작은 약국들이 더 힘들어하고 있어서 어떻게든 살리려 노력하고 있다.”
-운영이 어려운 이유는.
“중간거래상격인 PBM(Pharmacy Benefit Manager)회사들의 횡포 때문이다. PBM들은 보험사를 대신해 도매상들과 약값을 협상하고 오가는 서류도 처리한다. 개인 약국들은 이 PBM을 통해 제약, 보험사들과 거래하는데 PBM사들이 약국들의 이윤 마진을 갈수록 줄이고 있다. 10여 년 전까지도 하루에 처방전 60개 정도면 약국 운영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150장을 해도 어렵다.”
-협회 차원의 대응방안은.
“뭉쳐야 산다. 공동구매가 답이다. 협회는 90년대 초반부터 공동구매로 한인 약국들의 이윤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현재 거래 중인 2개 도매상 중 1개사 단독구매 형식으로 바꿔 한인약국들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회원 약국들의 의견은 어떤가.
“코로나 때문에 회원약국들과 미팅을 못해 전달이 안 되고 있다. 다수의 회원이 망설이고 있는 걸로 안다. 도매상을 옮기면 여러 가지 복잡해지니 그냥 하던 대로 하자는 회원도 있다. 물론 번거롭지만 3개월 정도만 지나면 약국들의 이윤이 늘어날 수 있다. 이 기회에 회원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다. PBM사의 횡포와 CVS같은 대형 약국체인과 경쟁에서 동네 약국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힘을 하나로 모으는 수밖에 없다.”
-한인 약국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약국에서 처방전만 세고 있는 때는 지났다. 약국도 임상을 바탕한 전문 운영에 나서야한다. 2개월 전 멸균클리닉을 열었다. 무균상태에서 만들어야 하는 약들을 전문으로 제조한다. 투자하고 공부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코로나19 전후 달라진 약국 풍경이 있나.
“마치 음식 배달하는 것처럼 우리도 약 배달하느라 바쁘다. 약 나갔느냐, 저거 나가야한다 등 식당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들이 일상이 됐다.”
-마스크나 테스트키트 공급 사정은.
“초기엔 마스크를 구할 수 없어 약국들도 애를 먹었다. 협회에서 공동구매해 약국마다 분배하면서 지금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 테스트키트 회사들의 판매 제안도 협회를 통해 많이 들어오고 있다. 몇몇 회사와 의논 중이다. 아직 FDA에 승인받은 키트는 없는 것으로 안다. 함부로 들여오지 않고 철저히 검증해서 구입할 계획이다.”
-말라리아약인 클로로퀸의 코로나 치료 효과에 대해 말들이 많다.
“감염 초기에 효과가 있다고들 하지만 의사 처방에 따라 주의해 복용해야 한다. 특히 지병이 있는 환자들은 부작용이 심각할 수 있다. 또 이 약을 코로나 예방약으로 먹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차라리 자주 손 씻고 입안을 가글링하는 것이 더 확실한 예방법이다.”
-4년 전 인터뷰 때 노인들의 약 오남용이 심각하다고 했다.(2016년 3월22일자 1면 기사에서 그는 “먹어야 할 약은 먹지 않고 먹지 않아도 될 약을 먹는 한인 노인들이 의외로 많다”고 했다)
“그 기사 이후로 훨씬 계몽이 된 듯하다. 요즘은 시니어 환자들이 약국에 오면 최소한 약 이름은 알고 온다. 예를 들어 예전엔 ‘하얗고 동그랗고 긴 약’이라고 했다면 이젠 성분명을 정확하게 아는 분들이 많다. 환자들도 부작용의 심각성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
그와 인터뷰했던 4년 전 기사에선 위험한 약의 조합들을 ‘폭탄약’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당시 일리노이대학의 디마 콰도 박사가 의사협회저널(JAMA)에 게재한 보고서를 인용했다. 대표적인 폭탄 조합의 예가 ‘항혈전제+위산억제제+아스피린’이다. 콰도 박사 연구팀은 “이 약들을 섞어 먹을 경우 심장마비, 내출혈 등 부작용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오메가 3’와 콜레스테롤약인 ‘스태틴(statin)’, 클로피도그렐(clopidogrel·항혈전제), 소염진통제를 함께 복용하면 역효과는 물론, 심장 혈관 질병 위험이 높아진다.
-의사들 처방은 건강한가.
“은퇴할 때가 가까워지니 이젠 좀 쓴소리를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일부 의사들은 처방전을 많이 써줄수록 좋은 의사가 된다고 착각하고 있다. 얼마 전 남편과 아내가 똑같은 처방전을 들고온 경우가 있었다. 증상이 다른데 어떻게 처방이 같을 수 있나. 실수여도 문제고 실수가 아니라면 더 큰 문제 아닌가.”
-훌륭한 약사는.
“약사는 의사의 처방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최종 감시자다. 약사가 의사의 처방을 확실히 견제해야 오남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환자에게 어떤 약인지, 어떻게 복용해야 하는지,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귀찮을 정도로 잔소리를 해야하는 게 약사의 임무다. 또 약을 줄 때 나을 수 있다는 의지도 함께 처방해야 한다.”
-약사 가운 언제쯤 벗으려고 하나.
“은퇴는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한의학을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양약, 한약을 병용해 환자들을 돕고 싶다. 은퇴를 한다면 ‘환단고기’에 우리 민족 역사의 시작점이라고 소개된 바이칼 호수로 여행을 가려한다. 또 수도원에서 노동하면서 어렵고 아픈 이들을 약으로 돕고 싶다.”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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