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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그 후]‘노인 아파트 텃밭 살인’

작년 9월 한인 사회는 물론 프린스조지스 카운티 및 인근 지역 사회를 발칵 뒤집었던 시니어 아파트 살인 사건의 가해자 오춘영(74, 사진)씨는 현재 어퍼말보로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사건 직후 신문이나 TV 등 각 언론 매체는 평소 두 사람 사이에 금전 관계로 인한 불화가 있었다는 점을 사건의 배경으로 시사 했다. 한 일간지에 사망한 권씨의 손자 인터뷰가 실리면서 오씨는 ‘손자들 키우느라 고생한 할머니를 살해한 악인’의 이미지를 피할 수 없었다.

사망한 권(박)화자(82)씨와 함께 블레이든스버그의 노인 아파트에 거주하던 오씨는 본인의 어머니가 작고한 후 형제 자매와도 연락이 끊어진 채 혼자 살고 있었고, 본인이 구치소에 수감된 상황에서 사건의 전후 사정조차 알리지 못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을 알고 있던 한 지인이 보다 못해 ‘채무 관계가 거꾸로 알려졌다’라고 새로운 정황을 제보 했지만 한번 굳어진 선입견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지 8개월이나 지난 지금 오씨의 여동생 오계영씨는 조심스럽게 한인 사회의 도움을 구하고 있다. 바라는 것은 다만 ‘국선변호인과 연락이 닿는 것’이다.


구치소에 같이 수감 돼 있던 미국인들의 도움으로 겨우 동생과 연락이 되고 전화 연락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제서야 오씨 본인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오춘영씨와 한 시간여에 걸친 전화 인터뷰 요약은 다음과 같다.

사건
아침에 창가 화분에 물 주다가 권씨가 구루마를 끌로 나가는 것을 보고 텃밭에 갈 시간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나도 밭에 나갔다. 봄 마다 부추를 심는데, ‘잘 되겠냐’ 한 마디에 갑자기 내 어깨를 잡고 팔을 올려서 나도 팔로 막았다.
내가 서 있던 곳이 좀 낮아서 같이 넘어져 엎치락 뒤치락하는 상황이 됐다. 그때부터 몸싸움을 하는데, 밭으로 가는 길에 놓인 벽돌을 들어서 치는 바람에 내가 이마를 맞았다. 그래서 그걸 뺏어서 반격을 한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벽돌은 내 손에 있고 상대방이 누워 있었다.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서 911에 전화를 했는데, 내가 대답을 잘 못 했는지 아무도 안 와서 다시 하고 다시 하고. 세 번을 전화했다.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머리 속이 번쩍하는 것처럼 생각이고 뭐고 경황이 없었다.

변호
처음에 메디칼 시설에 있다가 변호사가 왔다. 법원에 간다고 했다.
법원 가기 전날 밤에 사형 당하는 꿈을 꿨고, 법원에 갔을 때 대기실에서 옆 사람들이 울고 불고 싸워서 아수라장이 됐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변호사한테도 소리를 지른 것 같다. 그 다음에 법원에 갔을 땐 통역하는 사람이랑 변호사가 같이 왔는데 ‘가만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었더니 아무 것도 안 물어보고 그냥 끝났다.
그 후로 구치소로 옮겼다. 법원에 몇 번을 더 갔는데 하루종일 기다리다가 그냥 온 것도 서너번 된다. 변호사도 남자 변호사에서 여자 변호사로 바뀌었다가 처음 변호사가 다시 왔다.
구치소에 같이 있던 수감자들이 변호사를 바꾸고 싶으면 바꿔도 된다고 알려줬는데, 원래 변호사가 못해서 바꾼다는 기록이 남을까봐(변호사한테 피해가 갈 까봐) 안 바꾼다고 했다.
11월에 판사가 결정 한다고 했는데 법원에 가는 날짜가 자꾸 미뤄지더니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또 연기 됐다고 했다. 그 후로 변호사 면회를 여러번 신청했는데 아무 연락이 없다.

구치소
처음에 갔을 때 한국 사람이 있었는데 신문을 보고 나를 상종 못 할 나쁜 사람이라고 난리를 피웠다.
그 사람이 나가고 나서 미국 사람들은 차라리 잘 해 줬다. 동생도 찾을 수 있게 도와주고, 나가면서 도움이 필요하면 꼭 연락하라고 해주기도 했다.
변호사 면담 신청하는 것도 도와줬다. 살던 아파트에 가면 권화자 아들한테 3만 5천 달러 꿔준 편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동생이 매사추세츠에 살기 때문에 지금 올 수가 없다.
한글로 된 책이나 신문도 없고 안경도 없어서 아주 큰 글씨가 아니면 읽지도 못한다. 바이러스 전에는 독방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다 독방에 있고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어서 좀 힘들다.

코비드-19 때문에 현재 법원은 6월 2일까지 폐쇄 중이다. 오씨의 사연을 접한 한 한인 사회 인사는 “아무리 살인 사건이어도 우발적 사고인 점과 정당방위 정황상 처음에 보석금을 책정 받았으면 긴 시간 구치소에서 고생하는 것은 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사건 직후 잡혔던 첫 보석금 심리는 ‘통역인 부재’로 일주일 연기됐었고, 그 다음 심리에선 오씨의 말처럼 심리가 시작되자마자 변호인이 ‘보석 포기’를 피력했다. 그 후로도 ‘통역인 문제’, ‘변호측 통역인 준비 미흡’등의 언급을 법원 기록에서 볼 수 있다.

[기자노트]
사건이 시사하는 한인 사회 단면

작년 9월의 노인 아파트 텃밭 사건은 고령의 두 노인 사이에 일어난 폭행치사라는 점 때문에 순식간에 지역 언론을 넘어 타주의 지역 신문에까지 실릴 정도로 파급력이 컸던 것에 비해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었다.
후속 스토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주변 사람들의 배타적인 시선도 한 몫 했다.

양쪽 할머니들이 평소 성격이 대단했고 다툼이 잦아 언젠가 사달이 날 줄 알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성격은 성격이고 사건은 사건인데, 그 둘을 구분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그 외에도 여러가지 한인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손주 봐주러 이민 온 노인들 설 자리 없다
80-90년대 이민 붐이 일면서 많은 젊은 가족이 어린 자녀를 데리고 이민왔다.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 육아를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고단한 이민자의 행렬에 합류했다. 부모들이 일터에 나가 있는 동안 살림과 손주 돌보기를 맡았던 노인들은 이제 노인 아파트에 살면서 거의 고립된 것과 마찬가지인 생활을 한다.
교회를 가도 70년대 유학으로 미국에 와 왕성하게 활동한 후 은퇴한 사람들과는 섞이기 어렵다. 장성한 손주들은 제 각각 살 길 찾아 흩어졌고 이제 같이 늙어가는 자식들에게 노부모는 또 다른 부담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몇 십년 고생 끝에 남은 건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이다.

-노인 정신 건강 위기
이런 한인 어르신들이 노인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은 한 때 당연하게 여겨졌다.
미국에서 경제 활동을 한 적이 없어 극빈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사회 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같이 살면서 자식들 눈치 보느니 노인 아파트에서 편하게 고만고만한 친구들과 같이 사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회 활동의 기회가 줄어들고 인간관계가 협소해지면서 고만고만했던 친구들 사이에 경쟁 구도가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누구네 아들이 뭘 사줬네, 딸이 어디를 데려갔네가 대화의 중심이 되면서 자기방어기제가 작동해 ‘그까짓 것 뭐 대수라고’의 태도에 서로 상처 받고 마음의 문을 닫게 되는 것이다. 본인 마음이 왜 편치 않은지 돌아볼 새도 없이 타인에게 불평의 화살이 돌아가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한인 노인이 많이 거주하는 노인 아파트마다 사무실 매니저들이 골머리를 앓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미국 속의 작은 한국
한인들이 많이 있어서 미국 사회에 적응하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것은 이럴 때 오히려 악재로 작용한다.
시민권자이면서도 영어로 소통이 안 되는, 몇 십년을 살았어도 여전히 한국적인 사고 방식에 머물러 있는 ‘폐쇄된’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고립이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없어서 신체적으로 아파트에 고립되는 것에 더해 문화적, 정신적 고립이라는 이중고에 갇힌다.

본인이 고립을 뚫고 나오는 것도 힘들고 밖에서 뚫고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다. 한국어를 해야 하고 이민사를 이해해야 하며 한국정 정서의 특성과 노인 생활 건강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이 모든 자질을 가질 수 없고, 한 사람으로 될 일도 아니다. 여러기관의 협력이 필요하므로 지역 정부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하더라도 중간에 흐지부지해지기 쉽상이다.

-영어권 사회 동화의 의미
조금 젊은 층 사이에서는 이러한 이슈들의 해결을 위해 영어권 사회에 동화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영어를 배운다거나 이웃들과의 교류, 지역 사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 등은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대다수의 노인들이 혼자서 그런 활동을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 있다.
또한 ‘영어권 사회 동화’는 내 것을 버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같지 않았는데 점차 비슷해진다는 것이지 한순간에 ‘한국인’을 부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그렇게 해야 할 필요도 없다.

내 것을 버려야 한다면 그건 ‘동화’가 아니라 ‘흡수’다. 다음 세대를 위해 희생한 노인들을 품지 못한다면 자녀들에게 물려 줄 정신유산 같은 것도 없다는 의미다.
이민 역사가 길어지면서 당연히 한인 사회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 어느 사회이건 문제가 없을 수는 없고 관건은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다.
다시는 노인 아파트 텃밭 사건 같은 일은 일어나선 안 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안 그래도 아시안 혐오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는 때에 한인 사회 리더들의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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