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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벨라와 둘이 살기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은
찬 바닥에 쓰러진 나 자신과
비에 젖은 벨라보다는
우리를 보고 있을 낸시였다”

장대비가 쏟아진다. 벨라를 텐트 밖으로 끌어내려다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다. 몸은 완전히 젖었고 벨라는 여전히 텐트 속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다. 뒤뜰 패티오에 있는 벨리의 집은 아치형 텐트다. 네 개의 쇠막대에 둥그렇게 푸른 천을 씌운 것이다. 겨우 그 텐트만큼의 면적을 가려주는 지붕 밑이다. 그만큼 허술해 이런 폭우를 감당할 수가 없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천막은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고 벨라는 찬비를 맞으며 패티오 한 구석에서 온 몸을 떨어댈 것이다. 그래서 안전한 집의 차고 안으로 옮겨주려는 것인데, 저 미련한 것이 저렇게 뻗대고 내 말을 안 듣는다.

내가 기어코 벨라를 차고 안으로 들이려는 까닭은 벨라의 안전 때문만은 아니다. 솔직한 내 심정은 이 기회에 벨라가 폭우 속 어딘가로 차라리 사라져버렸으면 하는 마음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나는 동물학대죄로 고발될 가능성이 더 컸다. 바로 이웃집 낸시 때문이다. 낸시는 아마 지금 이 순간도 자기 집 2층에서 우리 집 뒤뜰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아, 이 나라 미국이라는 데는 왜 그렇게 고발정신이 투철한지,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에 어째서 그리 코를 들이미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얼마 전이었다. 그날도 비가 우박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사방에서 덜컹거리는 유리창 소리에 깊숙이 묻힌 나는 우리 집 초인종이 불이 나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쾅 쾅 쾅, 누가 우리 집 현관문을 도끼로 때려 부수는 듯한 소리에 놀라 공처럼 계단을 굴러내려 갔다.

“누구세요?”

몇 차례 물었으나 아무 대꾸가 없는 대신 또 ‘쾅’하고 현관문을 차는 소리가 났다. 급히 문을 열어보니 우산을 든 중년의 미국 여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 뒤에 검은 우산의 20대 건장한 청년도 함께 서 있다.

“하이, 나는 낸시, 이 아이는 내 아들 파커예요. 우린 당신네와 뒷마당을 마주 보고 있는 이웃이에요.” 나는 그때까지 낸시가 이 빗속에 왜 나를 찾아왔는지 몰랐다.

“다름이 아니라 벨라를 우리가 입양해 갔으면 하는데 가능하겠는지요?”

완곡한 표현이 아니었다. 우리 벨라를 그녀가 잘 알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게다가 입양을 해가겠다는 식으로 아주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기가 막혔다. 아니, 이 일이 빗속에 우리 집 현관문을 발로차고 두드려야할 정도로 다급한 일인가. 평소에 왕래가 있던 이웃사촌도 아닌데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층에서 매일 벨라를 내려다보고 있어요.”

낸시의 우중 방문은 내가 벨라를 학대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잘 보아서 알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 불쌍한 벨라를 구제하겠다는 뜻이 분명했다.

‘아, 그날 차라리 줘버렸으면 이런 수고는 안 하는 건데….’

지난 3년 간 나는 아침저녁 벨라에게 밥을 주고 똥을 치고 오줌과 머리털 청소를 하면서 정말 다른 데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열두 번도 더했다. 그런데 막상 이웃집 낸시가 입양을 해가겠다고 하는데, 나는 왜 "그래, 잘 됐네. 너 가져!”라고 하지 못했는지. 아니 도리어 나는 "이게 어디 와서 참견이야! 내가 그동안 벨라를 시중드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는데. 저리 꺼져!"하는 심보가 억수같이 퍼붓는 비에 휩쓸려 “네버! 네버!" 하고 낸시를 그냥 돌려보내고 만 것이다.

벨라는 작은아들 내외가 우리 집에 살 때 작은며느리가 들여온 개다. 외모 때문인지 처음부터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아 데면데면했는데 작은아들 내외가 헌팅턴비치 하버로 이사를 가면서 이 어미가 외로울까봐 고양이 쥐 생각하듯 벨라를 놔두고 간 것이다. 벨라는 덩치가 산만 하고 구겨진 신문지처럼 쭈굴쭈굴했지만 외모와는 달리 순둥이였다. 내가 저를 싫어하는 것을 아는지 내게 가까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작은아들네가 이사 간 뒤 저와 나 둘이 되고나서부터는 하는 짓이 달라졌다. 내가 뒤뜰에 나가면 몽톡한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 내 다리에 몸을 대며 들러붙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도 좀 짠한 마음이 들어 벨라가 하는 그런 행동을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 보니 벨라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똥을 치고 오줌을 씻어내고 머리털 청소를 하면서도 전처럼 짜증이 나는 것도 덜했다.

그래도 낸시 눈에는 아닌 모양이었다. 낸시는 내가 벨라를 방치하고 있으며 특히 이런 폭우가 쏟아지는 날 허술한 텐트 안에 그대로 둔다는 점을 못마땅하게 여긴 모양이었다. 낸시의 기세를 보면 이런 날 벨라를 집안으로 들이지 않고 그대로 뒀다가는 이번에는 틀림없이 동물보호센터에 고발할 것이다.

“벨라야, 제발. 제발 들어가자.”

나는 우산마저 던져버리고 벨라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서두를수록 벨라는 텐트 속에서 더 강하게 버텼다. 아마 빗속으로 저를 쫓아내려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벨라의 다리를 잡고 쭈~욱 당겼다. 밖으로 끌려나온 벨라가 다시 텐트 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빗속의 뒤뜰에서 텐트로 들어가려는 벨라와 집 차고 쪽으로 가려는 나 사이에 한바탕 씨름판이 벌어졌다.

마침내 벨라의 다리를 잡고 끌고 또 끌어서 집 모퉁이를 돌았다. 한 손으로 차고의 철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그 안으로 벨라를 밀어 넣었다. 그 순간 나는 빗물에 미끄러지면서 시큐리티 도어에 쾅하고 부딪혔고 시멘트바닥에 넘어져버렸다.

눈을 뜨니 벨라가 슬픈 얼굴로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잠깐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얼굴이 붓고 입술에서 피가 나는 걸 깨달은 건 그 뒤였다. 나는 그 순간 정신이 들면서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은 찬 바닥에 넘어져 있는 나 자신과 비에 젖은 벨라보다는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낸시였다. 벨라와 나의 씨름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을 낸시. 나는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벌려 벨라를 깊숙이 품어 안았다.


임지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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