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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사월과 오월 사이

땅에 엎드려 잡초를 뽑아주거나, 땅을 고르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떤 일을 할 때보다 집중하게 된다. 일에 몰두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을 잃은 듯 손에 쥔 호미와 일체가 되어 한나절이 그림자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매년 느끼는 일이지만 이 호미란 놈,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정원을 가꿀 때 쓰는 여러 도구 중 단연 으뜸이다. 손 안에 꼭 들어와 제격이기도 하거니와 가볍고 기능도 뛰어나다. 겨우내 흐트러진 땅의 에지를 파서 잔디와 정원의 경계를 만들어 줄 때도, 꽃을 심을 때도, 웬만한 구근들을 옮겨 심을 때도, 깊게 뿌리내린 민들레를 뽑아줄 때도, 어느새 넓게 뿌리내린 토끼풀을 제거할 때도 아주 요긴하게 사용한다.

땀 흘리며 흙을 만지는 사이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눈은 바라보고 손은 움직이면서도 무의식의 상태에 있는 듯했다. 전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순간에서도 느낄 수 없는 행복이 밀려오는 듯했다. 오른쪽에서 시작한 일이 거의 왼편 정원의 끝 부분을 만져갈 때 즈음 그림자가 걷어지고 봄날의 정겨운 햇살이 어깨와 목덜미를 쓰다듬고 있다. 일어나 허리를 편다. 머리를 깎은 듯 단정한 정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풀을 뽑고 꽃을 가꾸고 나무를 다듬어주는 일은 춥고 긴 겨울을 보내며 그토록 봄을 기다렸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어떤 길을 택할 때 그 길이 바른 선택인지 알기 원한다면 그 길 위에서 내가 몰입할 수 있는지, 행복하게 느껴지는지 살펴 보면 된다. 만약 그렇다면 그 길은 바른 선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아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과 필요는 같은 길인 듯 느껴지지만 같은 길이 아니다. 필요는 사랑을 부분으로 가질 수 없다. 사랑은 필요보다 더 크고 더 넓고 더 깊음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를 던져 몰입할 때 사랑하게 되며 사랑은 결국 행복을 가져다 준다.어쩌면 아주 작은 일, 사월과 오월 사이. 잃어버린 내 얼굴을 찾아 강물로 함께 흐르는 일은 매년 행복의 나르시스로 나를 이끈다.(시카고 문인회장)

사월과 오월 사이



서로 마주할 수 없다는 건
서로 견딜 수 없다는 말과 같네
누군가를 알고 싶다면
서로의 안에 있어야 하네
잊고 살았던 네게로 돌아가기 위해
내가 함께 만나 함께 지낸 시간 속으로
이어가며 흐르는 강물로 다시 만나려 하네
서로를 만나고 서로를 다시 잃게 되면서
서로를 잃고 다시 서로를 만나면서
신뢰하는 것들과 함께 거침없이 흘러야 하네
삶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지 않으면
남은 삶의 부분이 생명으로 자라나지 않기에
부딪히며 노래하는 강물로 돌아 가려 하네
달의 명암이 바로 달의 얼굴이듯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를 때엔
몰입과 행복의 흐르는 시간 속에서
땅 위에 엎드려 흙을 고르면서
잃어버린 내 얼굴을 다시 찿아야 하네
풀을 뽑고 꽃을 가꾸고 나무를 다듬으며
우린 다시 같은 길을 걸어야 하네
말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아이처럼
시간이 멈춘 듯 흐르는 강이 되어
사월과 오월 사이 흐르는 노래가 되어
우린 다시 만나야 하네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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