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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억지 춘향 봄맞이 대청소

‘간디가 존경한 수제자이자 동지였던 비노바 바베, 그는 쓰레기 치우기를 영적인 차원으로 해석한다. 주변에 널린 쓰레기를 그냥 두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내면에 있는 쓰레기도 참지 못하므로 치워버리고픈 강렬한 충동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충동이다. 그에 따르면 청소하는 것도 수준이 있다. 처음에는 어지간하고, 조금 지나면 깨끗해지고 다음에는 아름다워지고, 마지막에는 성스러워진다. 치우고 또 치우면 그것은 수행이 된다.’

나는 평상시 위와 같은 누군가의 글귀를 무척 좋아한다. 사다 쟁여 놓고 필요 없다고 버리느라 애쓰기보다 아예 사재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나의 습관이 코로나 사태로 완전히 참패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냉장고에 남은 것 다 먹어 치우고 여행 갔다 와서 신선한 것 사다 먹어야지 했던 내 여행 계획이 불행히도 이번 사태와 맞물렸다. 그래도, 아무리 ‘설마’하다가 화들짝 놀랐을 때는 이미 슈퍼마켓 선반은 약탈당한 듯 널브러져 있었다.

LA에 사는 친구는 배추 4박스를 사다 김치 담그고 쌀 10포대나 쟁여놓았단다. 뒤뜰, 레몬 나무 그늘에서 삼겹살 바비큐를 즐기고 노천 온돌방에 누워 하늘의 별을 센단다. “너 지금 나 약 올리냐?” “그러게 평상시에 좀 쟁여 놓지. 너의 취미생활인 근검절약, 미니멀 라이프 어쩌고저쩌고하다가 웬일이니? 너희 집 주소 줘. 내가 일용할 양식 보내줄게.” “제발 내비도. 물건 보낸다고 우체국에 드나들다 바이러스 걸리면 난 좌불안석, 그 음식이 제대로 삭히겠냐. 밖에 나가지 말고 건강해야 너희 가족을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지.”

아침 일찍 장 보러 갔다. 홀푸드에 도착하기도 전 멀리서도 늘어선 줄이 보였다. 트레이드 조는 말하면 뭘 하랴. 물론 페이퍼 타월도 휴지도 별로 없다. 뭐 세정제야 더 말할 필요 없이 아예 없다. 그래도 난 다 대체하며 살 수 있다고 나 자신을 위로했다.



집안을 정리하며 쓸어내기 시작했다. 오래된 홑이불 껍데기를 걸레로 사용하려고 가로세로 10인치 크기로 잘랐다. 찬장 안을 청소하며 먹을 것을 죄다 꺼냈다. 사 놓고 먹지 않은 깡통, 밀가루, 콩 종류, 스파게티, 감자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놨다. 그렇게 사지 않았는데도 많다. 아쉽게도 쌀이 조금밖에 없다. 냉장고 청소도 했다. 깻잎 장아찌가 꽤 많다. 팔짱을 끼고 식탁 위에 늘어선 먹고 싶지 않은 음식들을 째려본다.

코로나 사태가 올 줄 어찌 알았을까? 아들 친구가 3년 전에 디자인 마스크를 만들어 팔았다. 그 당시에는 팔리지 않던 것이 지금은 불티나게 팔린단다. 바쁜 와중에 우리 부부에게 2개씩이나 줬다. 신통방통한 녀석이다.

비록 깡통 음식으로 연명하는 내 입이지만 마스크만은 명품으로 가렸다. 살다 살다 이런 묘한 세상을 맞이할 줄이야. 어쩌겠는가! 디자인 마스크라도 쓰고 위로받으며 나름대로 즐겨야지.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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