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셈법은 균형…부자도 인색하면 적자”
고수를 찾아서 <11> 안병찬 공인회계사
86년 맨몸 이민…회계경력 33년
최근 유튜브 인기 전국구 스타
‘코로나19 정부지원’ 쉽게 설명
20개주 수백여업체 담당 성장
지난해 한미박물관 이사 합류
“올해안으로 착공은 어려울 듯”
‘회계(accounting)’는 ‘컴퓨터(computer)’와 원뜻이 같다. 라틴어 어원(computare)에서 갈라져 나온 형제 단어다. 오차가 없어야 하는 사람의 일이 기계의 이름이 됐다. 말의 속성은 일견 딱딱하게 들리지만 어근(putare)은 ‘사물을 분별하는 슬기’라는 철학적인 뜻도 있다.
셈은 곧 지혜라는 진리는 그만큼 오래됐다. 특히 모든 것이 불확실할 때는 ‘확실한 이익’만 남는다. 유례없는 전염병 시국인 지금이 그렇다.
ABC회계법인의 안병찬(61) 대표는 얼마 전 6분짜리 유튜브 동영상에 확실한 셈법을 담았다. 제목도 쉽다. ‘1만 달러 공짜, 따라만 하세요!’다. 영상은 전국의 한인 30만명이 조회했다. 요즘 그는 회계경력 33년 만에 ‘전국구 회계사’로 불리고 있다.
#가진 자산, 맨몸
초등학교 시절엔 이사다니는 게 일이었다. 6년간 5군데 전학을 다녔다. 살림살이는 그만큼 불안정했다.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면서 미래는 더 불투명해졌다. 당시 대부분의 청춘들이 그렇듯 군대가 답이었다. 78년 해군에 지원해 경남 진해에서 군생활을 시작했다. 시국은 어지러웠다. 입대 이듬해인 79년 10.26 사태(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가 터졌다. “그날 연병장에서 휴식하다 긴급방송이 나왔다. 전시에 준하는 ‘진돗개 발령’이 내려졌다. 대통령이 3번 바뀌고 광주민주화까지 터져 초긴장 상태에서 복무해야했다.”
81년 제대 후 7개월을 공부해 건국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교단은 어수선했다. 공부 안 하는 교수들이 짜깁기 교재로 가르치기 일쑤였고 휴강도 밥 먹듯 계속됐다. 그러다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가 터졌다. 학교에서 학점을 상대평가로 매기겠다고 했다. 경영학과에는 그처럼 장학생들이 많았다. 절대평가가 아니라면 장학금을 못받는 학생들이 많아진다. 머리띠를 매고 시위를 주도했다. “대학시절 처음이자 마지막 시위였다. 300명이 모여 일주일간 본관서 밤샘 농성을 했다. 실력없는 교수들 물러나고 장학금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덕분에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답답한 현실속에서 미국행은 어쩌면 당연한 탈출구였다. 1986년 1월3일 맨몸으로 LA에 도착했다.
#미래 자산, 미국
회계사가 되리라고 꿈조차 꿔본 적 없었다. 국제경영을 배우려 미국에 왔지만 현실은 주유소, 마켓, 리커에서 일하는 학생이었다.
미국을 가장 빨리 배울 수 있는 길을 찾던 중 신문에 회계법인의 구인광고가 정답처럼 와닿았다. 88년 최정길 회계사 사무실에 입사했다. 학생신분인 그에게 흔쾌히 영주권을 내줬다. “그때 최 회계사님께 약속한 게 있다. ‘제가 받은 은혜 돌려드리기 어렵다. 대신 내가 회계사가 되면 다른 후배에게 그대로 베풀겠다’고. 우리회사 취직하면 무조건 영주권 스폰서를 해주는 이유다.”
#현재 자산, 소신
5년 6개월 만에 독립했다. 93년 6월11일이다. 불확실성은 여전했다. 일은 재미가 없었다. 계산기만 두드리는 게 답답하고 월급도 적었다. 따분한 밥벌이는 92년 LA폭동을 계기로 바뀌었다. 폭도들을 막아야 할 경찰이 눈 앞에서 도망가고, 그 와중에 한인 업체들은 속절없이 불에 탔다. 과연 정의가 뭔지 본질적인 의문이 들었다.
“폭동 후 한입업체들이 SBA 융자를 신청해도 거절되는 사례가 많았다. 소득신고 미비, 법지식 부족 등으로 받아야할 혜택을 모르고 있는 한인들이 많았다. 결심한 건 ‘적어도 모르고 당하는 한인은 없게 하자’는 소신이었다.”
‘망하면 망하리라’는 생각에 고객 하나 없이 개업했다. 처음 고용한 직원 한명 월급을 크레딧카드로 낸 것이 첫 빚이다. 그후 10년간 일을 가리지 않고 받았다. 새벽 3시에 출근해 저녁 9시에 퇴근했다.
그러던 중 추가 세금 26만달러 통보를 받은 무역회사가 찾아왔다. 억울한 사례였다. 도와드리겠다고 약속하고 세금을 만약 못줄이면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항소까지 끈질기게 매달렸고 세금을 ‘0’으로 만들었다. 입소문은 금방이었다. 억울한 세금, 벌금에 밤잠 설치는 한인들이 줄이어 찾아왔다.
억울한 한인 없게 하자는 행동은 업무 이후에도 이어졌다. 97년부터 매년 국세청, 노동청, 사회복지국 등 공무원 초청 세미나를 개최해오고 있다. 2000년에는 ‘퀵북’ 강의 비디오를 제작해 배포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유튜브(안병찬 in USA) 방송 역시 돕겠다는 초심에서 시작했다. 아는 지식이나 경험은 한인사회와 같이 나눠야 할 자산이라고 그는 믿는다.
#인생 셈법
-유튜브로 떴다. 전국구 회계사로 불러야 할 것 같다.
“동영상 두편 때문에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올린 ‘실업수당 무조건 신청해라’, 31일 올린 ‘1만 달러 공짜, 따라만 하세요!’의 조회 수가 각각 26만, 31만이다. 알래스카부터 일리노이까지 전국의 한인들에게서 하루 수백 통씩 전화, 이메일이 쏟아졌다. 지난 2주간 주말도 없이 일했다.”
-언제 조회 수가 뛰었나.
“유튜브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매주 1~2편씩 세무상식을 고객들 서비스 차원에서 만들어왔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편당 조회 수가 잘해야 몇백 정도였다. 그런데 ‘실업수당 무조건 신청해라’는 영상을 올린 지 몇 시간 만에 셀폰의 유튜브 앱에 계속 알림이 ‘딩딩딩’ 울렸다. 실시간으로 조회 수가 끝없이 올라갔다. 그때까지도 실감 못했는데 다음날 월요일에 출근해보니 사무실이 말 그대로 마비됐다. 문의전화가 수백 통이 폭주했고 직원들이 답변을 하느라 일을 못했다.”
-유튜브 스타들 부럽지 않겠다.
“기분 좋은 현상은 아니다. 내 영상을 많이 봤다는 것은 그만큼 한인들이 많이 어렵다는 뜻이다. 고마운 건 영상을 본 한인들의 98%가 ‘좋아요’를 눌렀다. 도움이 많이 됐다는 의미다. 그전까진 동영상을 반 재미삼아 만들었는데 이젠 책임감 때문에라도 더 잘 만들어야 한다. 이미 고속열차에 올라탔으니 내릴 수 없지 않나.”
-유튜브 영상에 광고가 없다. 광고 유치하면 제법 돈이 된다던데.
“그러잖아도 광고하자는 제안이 들어오는데 안 붙이려고 한다. 애초 돈벌이용 영상이 아니다. 남 돕겠다면서 중간에 광고로 수익을 챙기면 의미가 있나.”
-회계사를 정의한다면.
“직원들에게 틈날 때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을 위해 의사가 필요하다면, 기업·가계를 위해선 회계사가 있어야 한다고. 자산 건전성을 진단하고 병(문제)을 치료해 건강하게 운영하도록 돕는 것이 회계다.”
-회계 철학이 있나.
“법 원칙을 고수하되 고객을 위해 합리적으로 판단해야한다."
-무슨 뜻인가.
“법은 평등을 지향하지만 현실적으로 만인에게 공평하지 않다. 세법을 어겼다해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도외시할 수 할 수 없다는 뜻이다.”
-탈세는 탈세다.
“다운타운 봉제공장을 예를 들어보자. 원청업자들이 주는 하청액수로는 합법신분 인력을 도저히 쓸 수 없다. 애초부터 불균형이 시작된다. 또 봉제공장 구직공고를 내면 영주권, 시민권자들은 오지 않는다. 불법체류자들을 고용할 수밖에 없는 선택만 남는 이유다.”
-어쨌든 불체자에게 낮은 임금을 주니 노동력 착취 아닌가.
“업주가 임금을 더 줄 수 있으면서도 직원들을 이용만 한다면 당연히 착취다. 그런데 먹고 살려는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임금도 후하게 주는 업주들도 있다. 그런 업주들이 직원을 착취한다고 말할 수 있나.”
-33년간 회계 업계 가장 큰 변화는.
“한인 경제가 양적, 질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리커, 세탁소 등 소매업에만 집중됐지만 지금은 업종이 다양해지고 전국 규모의 기업들도 많아졌다. 우리 회사 고객들도 의류, 국방, 첨단기술, 전문직, 인터넷, 프랜차이즈 등등 각 분야에 고르다.”
-가족 이야기를 해달라.
“결혼이 늦었다. 39살에 했다. 유학생이던 5살 연하 아내와 만난 지 일주일만에 청혼했다. 한 달 뒤 결혼식을 올렸다. 내 청혼이 꽤 설득력이 있었나보다.(웃음) 아들만 셋이다. 장남 데이비드(20), 아래로 쌍둥이 벤자민·조나선(18)이다.”
-검도 5단이다.
“결혼 직후부터 시작해 22년 됐다. 동서가 만나면 검도 얘기만 하기에 잘 들어보니 내 취향에 딱맞는 운동이었다. 그날로 죽도, 도복 사서 바로 시작했다. 아들들도 내가 가르쳤다. 모두 유단자다.”
-한미박물관 이사다. 착공은 언제쯤 하나.
“지난해 11월 이사가 됐다.
그동안 이사회에 참석한 게 두 차례라 아직 실무를 파악 못 했다. 기금모금 문제나 현재 모든 경제활동이 중단된 상황을 비춰보면 건설 계획은 늦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올해 안에 착공은 어렵지 않겠나.”
-한미박물관측은 이제껏 한 번도 공청회를 한 적 없다. 폐쇄적 운영 아닌가.
“말했다시피 아직 내부 사정을 잘 모른다. 다만, 이사로서 박물관이 한인들에 의한, 한인들을 위한 역사적 기관이 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
-인생의 고수는.
“균형의 셈법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적자 인생’은 가진 돈의 많고 적음을 뜻하지 않는다. 한쪽이 기울어진 인생이다. 예를 들어 부를 쌓고도 인색한 사람, 아껴야 하는데 낭비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흑자 인생은 내게 없는 것을 아쉬워하기보다 지금 가진 것으로 채울 줄 안다.”
◆안병찬 회계사 약력
▶1959년 충북 청주 출생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USC 세법 석사
▶ABC 회계법인, PayYes Payroll Service 대표
▶남가주 한인공인회계사 협회 33대 회장
▶한미박물관 이사
▶서부검도연맹 회장(검도 5단)
▶청소년봉사단체 YVO(Youth Volunteers Organization) 회장
▶저서: 퀵북 강의(2000년), 부자들이 알고 있는 절세의 비밀(2006년), 세무감사 이제는 자신있다(2013년)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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