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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흘러간 것들을 위하여

강 위에 높이 떠 있는
미라보 다리는 평범했다

그러나 이곳에는
가슴아픈 얘기가 있다

LA한인타운에서 바라본 지난 31일 노을 풍경. 김상진 기자

LA한인타운에서 바라본 지난 31일 노을 풍경. 김상진 기자

로마의 트레비 분수, 하와이의 레이 그리고 파리의 뽀엥 제로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트레비 분수에는 뒤로 돌아서서 어깨너머로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로 돌아온다는 속설이 있고 하와이를 떠날 때는 작별 선물로 받은 꽃목걸이를 뱃전에서 던져 바다로 흘러가게 하면 다음의 하와이 방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얼마 전 화재로 첨탑이 소실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정문 앞엔 인기 있는 포토 스팟이 있다. ‘뽀엥 제로(Point zero Des routes France)'라는 동판인데 그것을 밟고 서서 사진을 찍으면 다시 파리에 돌아온다고 한다.

1990년대 초의 어느 해, 남편의 유럽 출장길에 함께 갔다. 파리 여행이 처음인 나는 꼭 가봐야 할 곳이 적힌 긴 목록을 갖고 있었고 노트르담 성당과 미라보 다리는 목록의 위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주민들이 대거 바캉스를 떠난 7월의 파리는 외국인들로 북적대었다. 노트르담 사원 뽀엥 제로 앞에는 여행 온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길게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줄의 맨 뒤에 가서 서자 남편은 뽀엥 제로 얘기는 다 미신이라고 하며 그냥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자고 했다. 공무로 바쁘다고는 했지만, 그보다는 많은 사람과 함께 긴 줄에 늘어서서 사진을 찍는 것이 그는 멋쩍었으리라. 두 사람 함께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어느 관광객이 호의를 보였지만 남편은 못 들은 척 혼자 성당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기어이 둥그런 동판 위에 혼자 서서 사진을 찍었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이공계 남자에게 노트르담 사원은 특별히 의미 있는 장소가 아니었겠지만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의 자자구구(字字句句)가 기억 속에 선명하고 멀리 첨탑에서 주인공 에스메랄다의 비명을 환청인 듯 듣고 있던 불문학도의 ‘미신’을 남편은 이해해 주었어야 했다.

동판을 밟고 사진을 찍었기 때문인지 훗날 그곳에 그 다음 해, 1998년 그리고 2001년 세 번을 더 갔다. 그 성당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기 위해 나폴레옹 1세가 성당 부근의 민가를 모두 정리하도록 명령한 덕에 주변은 널찍하게 구획되어 있었다. 어느 쪽에서 보아도 아름다웠지만, 성당의 뒷면은 정면보다 더 정교하고 웅장했다. 대관식을 위해 교황 비오 7세를 파리까지 오게 했던 나폴레옹은 황제의 왕관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쓰고 황후의 관도 자신이 씌워 주었다.

13세기 루이7세의 아이디어로 짓기 시작해 두 세기에 걸쳐 완공된 노트르담 사원은 프랑스인들의 성역이자 긍지였다. 그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우리들의 마담(Notre-Dame de Paris)'의 화려한 왕관은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불타는 모습을 TV로 보면서 마치 내 개인사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성당을 나와 길옆 카페에서 남편과 늦은 점심을 먹은 후 택시를 타고 센 강 하류에 있는 미라보 다리로 향했다. 대학 시절, 학교 앞을 흐르는 대학천을 ‘세느 강’이라고 부르고 그 위에 놓인 다리를 ‘미라보 다리’라며 아폴리네르의 시구를 입에 달고 지내던, 그 꿈에 그리던 미라보 다리가 저만치 보였다.

“하필이면 왜 멀리 있는 미라보 다리로 가지? 그 다리 아래에만 센 강이 흐르는 건 아닌데" 남편의 말이었다. 꿈에 부푼 내겐 기가 막힌 억지에 불과했지만 나름대로 일리있는 질문이었다.

“지금 센 강을 보러 가는 게 아니고 아폴리네르의 시에 나오는 유명한 미라보 다리를 찾아가는 거예요.”

“그 문제만 해도 그래. 센 강에 유명한 다리가 미라보 다리만 있는 건 또 아니거든.”

번번이 그는 말다툼에서 이겼다.

센 강 상류의 퐁 뇌프 다리나 강물에 스칠 듯이 나지막하게 걸쳐 있는 알렉산더 3세 다리에 비해 강 위에 높이 떠 있는 미라보 다리는 평범해 보였다. 그러나 이곳에는 ‘이야기’가 있다. 파리 서부 오퇴이유에 살던 작가 기욤 아폴리네르는 이 다리를 건너 몽마르트르의 화실에 출입하던 화가 마리 로랑생을 만나 사랑했다. 사생아라는 공통점이 두 사람을 가깝게 했지만 불우한 처지가 또 이들을 갈라놓았다. 세계 1차 대전 직전 두 사람은 이 다리에서 이별을 겪었다. 사랑의 이야기와 시구는 평범한 다리를 명품으로 만들었다. 다리 한쪽에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가 동판에 새겨져 있었다.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Et nos amours’(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르네)(…) Passent les jours et passent les semaines/ Ni temps passe/ Ni les amours reviennent(날이 지나고 세월이 가도 흘러간 시간과 떠난 사랑은 돌아오지 않네).

마리 로랑생과의 가슴 아픈 추억은 ‘미라보 다리’라는 불후의 명작을 낳았고 아폴리네르는 다음 해 1차 대전에 나가서 부상을 입고 얼마 후 사망했다. 슬픔은 강물 위로 흘러가고 두 사람은 지금 파리 페르라세즈 공동묘지 서로 멀지 않은 곳에 말없이 잠들어 있다.


박유니스 / 수필가·재미수필문학가 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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