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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그녀의 나비 정원

[중앙포토]

[중앙포토]

“봄볕이 따사로운 날
그 정원을 찾아온
나비의 춤사위 속에
들어가 보리라
나비되어 훨훨 나는
그녀를 만날지도 모르니"


집 앞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얼핏 보았다. 어깨가 왜소해 보였고 등이 구부정했다. 몇 주 전에 봤을 때와는 너무나 달라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해 LA공항으로 가느라 마음이 바빴다. 우버를 타고 가면서 남편에게 옆집 여자가 좀 아파 보이는 것 같다고 걱정하면서도 평소에 건강한 그녀였기에 여행길에서 잊고 지냈다.

그녀와 우리는 옆집 울타리 사이를 두고 살면서 하이킹을 좋아하는 이유로 가까워졌다. 환경보호단체 시에라 클럽(Sierra Club) 회원이며 보이스카우트 리더로도 활동하고 있는 산악인이었다. 존 뮤어 트레일(John Muir Trail) 구간을 여러 번 완주했던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던 그녀는 환경 보호가답게 동식물에도 관심이 많았다. 특히 멸종위기에 처한 모나크(Monarch) 나비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녀 집 마당에는 제왕나비라고 불리는 ‘Monarch Waystation’ 정원이 있다. 호랑나비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날개를 펴면 다 큰 성체의 경우 10cm 될 정도로 왕나비의 일종이다. 그녀가 나비의 생존 번식을 위해 조성된 곳이기에 나비떼의 춤사위가 펼쳐지는 무대이기도하다. 그 광경을 보느라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발목을 붙잡는다.



내 손주들이 우리 집에 오면 제일 먼저 달려가는 곳은 나비 정원이다. 세 아이가 쪼르르 달려가면 나도 그 틈 사이에 끼어든다. 아이들은 상기된 얼굴로 꽃나무에서 무언가를 찾아낸다. 손바닥에 꼼지락대는 성충을 올려놓고 그들과 즐거운 놀이에 빠진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비정원에 가득하다.

그녀는 희귀종 모나크 나비가 제초제와 살충제의 사용으로 세상에서 사라져 간다고 아쉬워했다. 화학약품을 금지하는 것이 그들을 살리는 길이라고 한다. 나는 그동안 잡풀과 벌레를 죽이는 데 사용했던 농약이 생각났다. 죄를 지은 듯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 후로는 힘이 들더라도 풀을 뽑고 친환경 천연 살충제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그녀의 자연 사랑은 나에게도 차츰 스며들어 나비를 살리는 일에 책임의식을 느꼈다. 꿀이 많은 부들레아, 라벤더와 유액이 많은 박주가리류의 밀크위드(milkweed)를 심었다. 밀크위드에 알을 낳고 애벌레가 된 후에는 유액과 식물을 먹고 성장한다고 한다. 가지에 붙어서 성충이 될 때까지의 과정을 파노라마로 보았다. 봄, 여름, 가을이 깊어 가기 전까지 나비들은 자신들의 처소를 찾아들며 화려한 몸짓으로 기쁨을 선사했다.

유럽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그녀의 나비정원으로 눈이 갔다. 10월 중순을 넘어서인지 바깥 날씨는 쌀쌀했다. 나비들은 이미 따뜻한 이웃나라 멕시코로 이동을 했나 보다. 정원 주변을 살피던 그녀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튿날 집 앞에서 그녀의 남편과 마주쳤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데 그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무슨 일이지. 자신의 아내가 2주 전에 하늘나라로 갔다고 한다. 나는 얼른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손쓸 겨를도 없이 심장마비로 떠났다며 목소리에 울음이 가득하다. 우리가 여행을 간 사이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울타리 너머로 그녀와 안부를 물었던 것이 불과 한 달 전이었다. 가끔씩 오븐에서 갓 구운 과자를 맛보라며 예쁜 리본에 묶어서 주었는데. 꽃을 좋아하는 나에게 귀한 꽃씨라며 손에 쥐었는데. 따뜻한 마음과 깊은 눈빛을 가진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전에 들려오는 듯하다. 그날, 공항으로 향하며 본 그녀의 구부정한 등이 떠올랐다. 돌아서서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좋은 이웃을, 정답던 친구가 그렇게 허무하게 떠날 줄이야.

봄비가 땅에 촉촉이 스며든 날 Monarch Waystation 정원에 앉아 흙냄새를 맡는다. 몇 달 사이 온갖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이제 모나크 나비가 찾아들 시기인데 어떡하지 걱정이 앞선다. 무심히 잡풀을 뽑는다. 그곳에는 나비가 좋아하는 어린 꽃순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녀를 잃은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곳은 이미 환희의 물결로 일렁인다. 나는 속삭였다. 앞으로 나비 정원을 돌보아 주리라고.

봄볕이 따사로운 어느 날, 그 정원을 찾아온 나비의 춤사위 속으로 들어가 보리라. 나비되어 훨훨 나는 그녀를 만날지도 모르니.


정조앤 / 수필가·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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