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방역 특수 “오히려 안타깝다”
고수를 찾아서 <7> K타운터마이트 조현규 사장
최근 매일 10곳 코로나 소독
사업 실패 LA서 무일푼 시작
쉰에 방역배워 7년만에 독립
코로나 위기 고통분담 동참
매장 소독비 100달러로 낮춰
벌레 잡던 그가 바이러스를 잡게 될 줄 본인도 몰랐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최근 방역회사들이 바빠졌다. ‘K-타운 터마이트&페스트’의 조현규(70) 사장도 2~3주 전부터 매일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한다고 했다.
감염 확진 판정을 받은 대한항공 승무원이 LA한인타운을 돌아다녔다는 가짜뉴스가 퍼지면서부터 방역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와달라는 곳이 많아 주말도 없이 하루 7~10곳에 ‘약 치러’ 다녔다. 부에나파크의 ‘더 소스’같은 대형쇼핑몰을 비롯해 대형건물, 신학교, 식당 등이 고객들이다.
‘고수를 찾아서’ 일곱 번째 인물로 그를 정한 건 코로나라는 시의성도 있지만 인생 굴곡을 겪고 난 뒤 찾은 일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하동 부농의 아들로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살다가 사업에 실패했다. 마흔 후반에 무일푼으로 LA에 와서 하숙집을 전전하다 예순을 넘어서야 방역회사로 이모작에 성공했다. “체면? 그게 뭐라고. 할 일 없어 집에서 놀 나이에 땀흘린 만큼 벌 수 있으니 행복하지.”
그를 인터뷰한 날도 35파운드 무게의 방역기를 하루종일 메고 밤 늦도록 소독을 마친 뒤였다. 칠십 인생을 물었다. “함 보자, 그기 언제고….” 경상도 사투리가 삶을 더듬었다.
#부농의 ‘농띠’ 여섯째
전쟁둥이로 태어났지만 보릿고개를 몰랐다. 하동 부농의 10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아들이 없는 큰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가 집안의 장손이 되면서 씀씀이는 커졌다. 사업을 모르면서 벌이기만 했다. 부산에서 화장품 사업에 손을 댔지만 신통치않았다.
스물넷에 결혼했다. 당시로선 최신식 기계인 컴퓨터 프린터 대리점을 열었다. 집까지 담보잡고 온 집안 돈을 다 끌어댔지만 망했다. 교회를 다니면서 정신차리나 싶었다. “진주, 마산 두 군데서 교회용품 판매점을 했는데 잘 됐지. 넉넉하니까 또 일을 벌이고 싶더라고. 농띠(농땡이의 경상도 사투리)지 농띠.”
95년 괌에서 리조트 사업을 하자는 제안에 또 돈을 끌어다 부었다. 미국도 자주 왔다갔다했다. 그러다 IMF가 터졌다.
#무일푼 LA 하숙생
98년 LA에서 무일푼이 됐다. 한국에 있던 아내와 이혼의 아픔도 겪었다. 귀국하려는데 다니던 교회 식구들이 붙잡았다. ‘가봤자 뭐할 거냐 여기가 낫다’ 다들 말렸다. LA한인타운 하숙집 친구가 페인트 현장일을 같이 하자했다. 몸 쓰는 일은 처음이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서 하루 일당 60달러를 받았다. 그나마 운전면허가 있어서 남보다 10달러 더 받았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도시락 싸서 현장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자기 바쁜 삶을 1년여 살았다. 그에게 탈출구를 준 건 지금의 아내다. 교인 소개로 만난 아내는 터마이트방제 회사에서 사무직원으로 일했다.
“아내가 나한테 방제일을 하라고 하더라고. 자기 사장이 한달에 2만~3만불을 번다고 하는데 안믿었지. 아니 중소기업도 아니고 직원 꼴랑 2명두고 그만큼 번다는게 말이되나. 일단 일해보라고 해서 가보니 딱 나한테 맞는 일이더라고.”
2000년 나이 오십에 소독방역기를 잡았다.
#벌레 잡는 이모작 인생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데 라이선스를 따야 했다. 석 달 간 밤낮으로 교재를 붙잡고 달달 외웠다. 4개월만에 페스트, 터마이트 2개 자격증을 다 땄다.
삶을 바로 잡는데 신앙이 큰 도움이 됐다. 2004년 LA한인타운 마가교회(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노숙자, 마약중독자들을 돕는 사역으로 잘 알려진 교회다. 지금 그는 이 교회 장로다.
성실히 일하던 그에게 7년만인 2007년 기회가 왔다. 우연히 만난 고향 친구가 방역회사를 동업하자 제안했다. 독립하면서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도널드 스털링 전 LA클리퍼스 구단주가 소유한 100여채 아파트, 포에버21, 플라자멕시코, ‘더 소스’ 몰 등 굵직한 고객들을 확보했다.
“우린 재서비스 요청이 거의 없어, 특히 꼼꼼히 해야 하는 게 빈대, 벼룩 방제인데 다른 업체는 2~3번 해야할 일을 우린 한번에 끝내니 손님들 만족도가 높지.”
#바닥 뒹구는 사장님
-일흔이다. 소독일이 힘들지 않나.
“나도 직원들처럼 보호장구 입고 방역기 메고 평균 3시간 소독한다. 천장이나 지하 좁은 공간에도 들어간다. 일 끝나면 온몸이 땀에 절어 녹초가 된다. 그래도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
-한인 업소들 방역 요청이 많다고 했다.
“워싱턴주에서 한인 여성이 코로나로 사망한 뒤 주문이 폭증했다. 하루 평균 식당만 8군데 작업하고 있다. 대학, 교회, 건물까지 합하면 10곳 넘는다. 요청이 밀려서 제때 못해줘서 죄송하다.”
-특히 식당들 힘들어한다.
“현장에서 직접 보니 더 가슴 아프다. 식당들 피해는 상상못할 만큼 크다. 업주도 직원들도 패닉상태다. 업주들은 ‘코로나에 걸려 죽는 게 아니라 장사 안돼서 죽겠다’고들 한다.”
-소독 비용은 얼마나하나.
“통상 1000스퀘어피트 방역에 주류회사들은 500달러를 청구한다. 우린 가격을 100달러로 낮췄다. 다들 어려운데 어떻게 제값 다 받겠나.”
-사업 어려웠을 때는.
“있었겠지만 기억 안 난다. 남과 비교 안 하고 살아서그런가 보다. 욕심은 세균처럼 사람을 병들게 한다. 하루에 ‘감사’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한다.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산다.”
-은퇴할 나이 아닌가.
“원래 일흔에 그만두려 했는데 일 안 하면 더 빨리 늙을 것 같더라.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최소 5년은 더 일하려고 한다.”
-인생의 고수는.
“내 인생 목표가 ‘남이 안 볼 때 더 잘하자’다. 손 닿지 않는 곳까지 구석구석 소독하려고 바닥에 드러눕고 엎드려 기어가기도 한다. 한번은 업주가 업소에 없었는데도 나보고 일 꼼꼼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라. 알고 보니 업소 내 CCTV로 내가 바닥에 뒹굴면서 일하는 걸 다 지켜봤더라. 뭐든 내 일처럼 최선을 다하면 손님을 붙게 돼있고 돈은 따라오게 돼있다.”
▶문의:(213)820-5999 조현규 사장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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