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다시 4% 하락…골드만 “향후 6개월 고통”
사우디·러시아 50~100만 배럴 증산 경쟁
“러시아가 미국 셰일산업 겨냥했다” 분석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원자재 리서치 책임자 제프리 커리는 10일 CNBC에 출연해 “향후 6개월은 더욱 고통스러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증산을 준비 중인 만큼 앞으로 몇 달간 배럴당 20달러 선을 향해 유가가 추가 급락하는 현상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11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4%(1.38달러) 내린 32.9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증산에 속도를 내면서 국제유가는 하락세로 방향을 잡았다.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리야드 주식시장(타다울) 공시를 통해 “지속 가능한 최대 산유 능력을 현재 일일 1200만 배럴에서 100만 배럴 더 올려 1300만 배럴로 상향하라는 에너지부의 지시를 받았다”라고 밝혔다. 러시아 정부는 “하루 50만 배럴을 추가로 생산할 수 있다”고 맞불을 놓았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지난 9일 주미 러시아 대사를 만나 에너지 시장의 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의 급락은 미국 셰일 산업에 직격탄으로 작용하고 있다. 퇴적암(셰일)층에 고압의 액체를 분사해 원유와 가스를 뽑아내는 셰일 산업이 채산성을 가지려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40∼50달러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현 유가 수준으로는 셰일 원유를 뽑아낼수록 손해라는 이야기다.
이에 미국 최대 석유회사 중 하나인 옥시덴탈 페트롤륨은 9일 하루에만 주가가 53% 급락했다. 이 회사는 분기 배당금을 86% 삭감하고 지출을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다이아몬드백과 파슬리 등 여타 셰일 석유업체들도 산유량을 줄이는 등 대책을 강구 중이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WP)는 백악관이 셰일 기업 연쇄도산을 막기 위해 연방정부 차원에서 저금리로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유가 불안 사태는 결국 원인 제공자인 사우디와 러시아의 움직임에 달린 만큼 양국 정세 등을 놓고 다양한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담에 관여했던 소식통을 인용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고 국제적 영향력을 높이려는 과정에서 유가 전쟁이 일어났다는 시각이 있다고 전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지난달 초 러시아와의 동맹 강화를 위한 회담에서 대러시아 투자 확대와 러시아의 시리아 군사활동 지지를 받아들이지 않아 러시아와의 관계가 틀어진 것이 이번 사태로 이어졌다는 해석이다. 또 다른 소식통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사우디 석유정책에 대한 영향력을 확고히 하려고 산유국 감산 협상에 영향력을 행사해 러시아가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내세우게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대로 러시아가 유가전쟁을 유도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CNN 방송에 따르면 라보뱅크의 에너지 전략가 라이언 피츠모리스는 “러시아가 부채에 시달리는 미국 석유산업을 겨냥했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라고 말했다. 부채가 많은 미국 석유산업의 취약성을 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적절한 시점을 골라 공격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한편, 골드만삭스는 코로나19 확산과 유가 전쟁의 여파로 폭락한 글로벌 증시가 좀더 하락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증시가 최근 정점 대비 20∼25% 하락한 뒤 강한 반등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현재 글로벌 증시의 벤치마크 지수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AC 월드 지수는 지난달 최고점 대비 18% 하락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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