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효약은 백신 아니라 정부·국민간 신뢰"
고수를 찾아서 <6> 메리 최 CDC 역학조사관
"훌륭한 의사는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질병예방통제센터(CDC)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9일 오전 현재 6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26명에 달한다.
CDC내에서 일명 ‘질병수사관’으로도 불리는 역학의학자(medical epidemiologist)인 메리 최(한국명 정원·47·사진) 박사도 분주하다. 그녀는 2012년 CDC의 역학조사관(EIS)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래 8년째 근무중이다. 현재 애틀랜타에 있는 CDC 본부 산하 고위험군출혈열바이러스 전담부서(VSPB)에서 역학조사관들을 감독한다.
그녀의 전문 분야는 치사율이 43%로 가장 높은 에볼라 바이러스다. 2014년 발병 근원지인 서아프리카 3개국에 파견됐고 미국내 감염자가 나온 댈러스·뉴욕 현장에서도 에볼라와 싸웠다. 지난해엔 나바호 인디언 거주지역에서 한타바이러스 검진 체계 설립을 지휘했다.
그녀는 지난 8년간 현장에서 목격한 전염병의 가장 무서운 점을 ‘공포의 부작용(byproduct of fear)’이라고 했다.
그녀는 “공포는 항상 분노와 불신으로 뒤틀리고 곧 비난 대상을 찾게 된다”면서 “그래서 감염자뿐만 아니라 가족들, 의료진에게도 폭력을 가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고 했다.
1976년 세 살 때 시카고로 가족과 이민 온 그녀는 조지워싱턴 의대를 나와 중증외상치료센터 응급전문의가 됐고 미 육군 군의관으로 2005년 파키스탄 대지진 등 재난 현장에서도 생명을 살렸다.
우주인 꿈꾸던 ‘C학점 소녀’
병원 자원봉사서 의사 결심
장학금받고 8년 군의관 복무
제대후 외상센터 응급의사로
공중보건의 과정중 CDC 합류
서아프리카 에볼라 창궐시
기니서 접촉추적자 맹활약
댈러스·뉴욕 감염도 대응
‘바이러스(Virus)’는 라틴어로 독이다. 그녀는 독을 쫓는다. 전염병 확산지역 한복판이 일터다. 질병예방통제센터(CDC)의 역학조사관 메리 최(47) 박사는 '질병수사관(disease detevtive)’으로도 불린다.
‘고수를 찾아서’ 6번째 인물인 그녀를 인터뷰하는데 2주를 기다려야 했다. CDC내 한인 역학관을 찾아야했고 어렵게 연락이 닿은 뒤에도 애틀랜타와의 시차, 바쁜 업무로 통화조차 어려웠다. 인터뷰는 이메일로 했다. 3차례에 걸쳐 40개의 질문을 보냈고, 그녀는 A4용지 11장 분량으로 자세히 답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질문에선 답변을 미뤘다. ‘전담팀원이 아니다’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아직까지 코로나에 대해 확실한 데이터가 없어 역학자로서 답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주인 소녀, 의대 가다
1976년 세 살 때 이민왔다. 부모의 고교동창이 있는 시카고 외곽 스코키가 새 터전이었다. 부모는 청소원, 봉제공장 재단사로 일했다. 힘든 이민생활이었지만 그녀와 여동생은 사랑받고 자랐다.
모험심이 강해 우주비행사를 꿈꿨다. 존 글렌 주니어(1962년 우주궤도를 돈 미국 최초의 우주인)가 우상이었다. 하지만 공부는 썩 잘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까지 C학점 학생이었다. 도무지 덧셈, 뺄셈을 암산할 수 없었다. 고교 입학 때 학교에선 그녀를 '보충수업반’에 넣으려 했다. 일반 수업을 받겠다는 고집에 부모는 전적으로 지지해줬다. “그때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평생 열등생이라는 딱지를 뗄 수 없었을 거예요.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겠죠.”
알고 보니 산수만 어려웠고 미적분 같은 고등수학에는 뛰어났다. 고교생활중 병원 자원봉사를 하다 ‘진짜 의사’들을 만났다. "응급실 침상 시트를 바꾸는 일을 도왔어요. 어느 날 오토바이 사고 환자가 곧 도착한다는 방송에 의료진이 총출동해 대기했죠. 저는 초긴장 상태가 돼서 떨기만 했어요. 그때 결심했죠. 응급실 문 뒤 예상못할 환자를 두려워 않는 의사가 되자고.”
보스턴 대학에 진학해 인체생리학과 그리스·로마 문학을 복수전공했다. 인체를 공부하다 따분해지면 고전책을 읽었다. 조지워싱턴대학 의대에 들어갔다.
▶군의관, 재난 현장으로
조지워싱턴 의대는 학비가 가장 비싼 학교 중 하나였다. 2학년때 학비융자를 얻었는데 4만 달러가 필요했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은 군대밖에 없었다. 베트남 참전군인 아버지의 무용담에 용기를 얻었다. 육군 입대가 받아들여져 남은 3년 학비를 지원받았다. 8년 복무의 대가였다.
미시간대학에서 응급의학의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2003년 독일로 파병됐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육군 이동외과병원(MASH)’ 응급의로 4년간 근무했다. 복무중 그녀는 공중보건의로 또 한번 어려운 삶을 선택했다. 2005년 파키스탄 대지진 참상 현장에서다.
“무너진 건물에 깔린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외상치료전문팀을 꾸려 갔는데 전혀 상상못할 상황에 맞닥뜨렸어요. 현장엔 골절환자보다 디프테리아, 파상풍(tetanus), 홍역 등 전염병 환자가 창궐했죠. 최고 외과의사 팀원들이었지만 누구도 전염병 대처법을 몰랐어요. 허둥지둥하는 우리에게 파키스탄 현지 의사들이 치료법을 가르쳐줬죠. 공중보건의 꿈을 꾸게 된 계기예요.”
▶‘검은 강의 독’을 만나다
제대 후 고향 시카고로 돌아와 중증외상센터에서 근무했다. 재난현장이 그리워졌다. 2009년부터 컬럼비아대학 공중보건 3년 석사 과정을 거쳐 CDC의 역학조사전문(Epidemic Intelligence Service·EIS)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과정을 마치자마자 2014년 5월 평생의 숙적을 만났다. 바이러스 이름은 콩고의 에볼라강에서 따왔다. 현지어로 '검은 강’이라는 뜻이다. 서아프리카 기니로 파견할 현장 요원이 당장 필요하다기에 지원했다. 현장에선 ‘접촉추적자’로, 의사로 1인2역을 했다. 감염은 무섭게 확산했다. “침상 놓기도 좁은 진료실에서 현지 의사는 환자를 만진 손으로 청진기를 만지고 각종 서류를 뒤지고, 펜을 집었다가 놨다가 했죠. 개인보호장비(PPE)와 소독약이 구석에 있는데도 먼지만 쌓여있었어요. 답답한 상황이었어요.”
즉시 유증상자 구별 시스템과 감염 예방 조치를 가르쳤다. 특히 현지 의료진에 장갑을 제대로 벗는 법을 가르치는데 주력했다. 일단 장갑을 끼고나면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어도 병원체가 묻어있다고 가정해야 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다. 고민하다 진료소 마당 흙바닥에 물을 부어 진흙을 만들고 장갑 낀 손을 문질러보라 했다. 그런 뒤에 진흙을 손에 묻히지 않고 장갑을 벗어보라 했다. 그제야 ‘감염’을 이해했다. 그녀가 한 조치는 아직도 CDC 직원의 교육자료로 쓰인다. 그해 10월 에볼라가 미국 내 댈러스와 뉴욕으로도 퍼지자 그녀는 또 현장으로 불려가 확산을 막았다. 이후로도 몬로비아, 라이베리아에서 바이러스를 쫓고 치료했다.
▶질병 추적 수사관
-또 다른 바이러스가 창궐 중이다. 백신이 언제 개발될 지 궁금해 한다.
“전염병에는 특효약(silver bullet)이 없다. 2014년 에볼라 창궐 당시엔 없었던 수많은 혁신적 치료법이 등장했지만 에볼라 감염환자는 여전히 나오고 있다. 사람들은 최신 백신에만 집착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열쇠는 정부, 의료진, 주민간의 신뢰다. 사회적 협력 없이 신기술만으로는 확산을 막을 수 없다.”
-2014년 댈러스의 에볼라 감염 사태의 교훈은.
“가장 힘들었던 경험 중 하나다. 텍사스 장로병원의 간호사 2명이 에볼라에 감염됐다. 서아프리카에서 온 에볼라 최초 감염자인 남성 환자를 돌보다가 전염됐다. 현장에 가보니 분위기는 극도로 험악했다. 200여명의 의료진은 모두 겁에 질려있었다. 공포는 곧 분노와 불신(mistrust)으로 뒤틀렸다. 전염병이 확산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항상 이런 식으로 번진다. 어김없이 비난 대상을 찾아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따진다. 그 와중에 언론들 역시 위기 상황을 진정시키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찾아야 하지 않나.
“CDC의 역할은 비난 대상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감염의 뿌리부터 전 과정을 분석해 재발을 막는다. 대개 전염병 확산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라 모든 경로에 있다.”
댈러스의 에볼라 사태 원인도 복합적이었다. 감염자, 공항, 병원, CDC 모두에 과실이 있었다.
-어떻게 대처했나.
“일단 감염 병원 내 의료진들의 진료 행위를 관찰했다. 추가 감염을 예방하고 비슷한 사태 발발시 실수를 막기 위해서다. PPE 장비를 입고 벗는 법부터 다시 교육했다. PPE 착탈의엔 30단계 정도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제대로 하는 이가 없었다. 한 간호사는 착탈의에 문제가 없었지만 손 씻을 때 왼쪽 손등만 씻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응급전문의다. 총상 환자를 많이 접했을 텐데.
“미시간의 플린트라는 도시에서 레지던트를 밟을 때였다. 미국 내 총기 살인율이 가장 높은 곳중 하나였다. 복수가 복수를 부르는 악순환을 겪었다. 주행총격을 당한 남성이 사망했다. 가족중 한 남자가 미친듯이 화를 내더니 ‘가만두지 않겠다’고 뛰쳐나갔다. 두시간 뒤 라이벌 갱단의 남성이 총격을 당해 실려왔다. 기관총을 쏜 것이 분명했다. 시신에 난 총상을 40개까지 세다가 포기했을 정도였다.”
-끔찍한 상황에 적응하기 어렵지 않나.
“ER이나 재난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환자와 거리를 둬야 한다. 감정 개입이 되면 결정을 주저하게 된다. 나도 전염병 환자는 주저없이 치료하지만 우리 아버지 페니실린 처방을 못한다. 과민성쇼크가 오면 어쩌나, 예방책으로 또 다른 약을 처방해야 하나 등등 3시간 동안 고민만 했다.”
-훌륭한 의사란.
“겸손(humility)하고 정직해야 한다. 어느 환자나 신뢰할 수 있는 의사를 원한다. 병에 대해 뭔가 알았을 때, 심지어 모른다는 사실조차 환자에게 솔직히 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좋은 의사는 경청하는 사람이다.”
■메리 최 약력
▶1973년 서울 출생
▶1976년 시카고로 가족 이민
▶보스턴 대학 인체생리학
▶조지워싱턴 의대·미시간 의대 레지던트
▶육군 군의관 복무(독일, 프랑스, 파키스탄 파병)
▶시카고 사우스사이드 병원
중증외상센터 전문의
▶컬럼비아의대 공중보건학 석사
▶질병통제예방센터 역학조사 전문요원(EIS) 수료
▶서아프리카 에볼라 대응 (기니, 라이베리아, 몬로비아 등)
▶국내 바이러스 역학조사(댈러스·뉴욕 에볼라 감염 대응, 미네소타 라사열 대응)
▶CDC 애틀랜타 본부 고위험군출혈열바이러스 전담부서(VSPB) 유행병치료학자, 역학조사관 감독관
정구현 기자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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