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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가슴 속에 새 한 마리

나는 내 가슴에 새 한 마리를 키운다. 크기, 색깔 그리고 생김새를 알 수 없는 새다. 어느 날은 답답해서 날아가려고 발버둥 치다가 어느 날은 자는 듯 조용하다.

새가 파드닥 날갯짓할 때마다 나도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고 허둥대며 괴로워한다. 어느 때는 몇 시간 동안 계속되고 어느 때는 몇 날 며칠 간다. 오래가면 나는 밥맛을 잃고 눕는다. 그러다 새가 갑자기 안전한 둥지를 찾은 듯 조용해진다.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기운을 차리기 위해 애쓴다.

나 스스로가 새를 잠재우는 경우도 있고 새 스스로가 조용해지는 때도 있다. 이제는 새를 날려 보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새도 자유롭게 날고 나도 새에 휘둘리지 않고 편안해지고 싶다.

내 몸에서 꺼내 내팽개치듯 날려 보내고 싶지만, 새를 꺼내 날려 보내기란 쉽지 않다. 죽음 만이 새와 내가 헤어지는 길인가? 과연 죽기 전에는 각자의 길을 훨훨 갈 수는 없는 것일까?



죽어야만 해결될 일이라면 내 몸의 일부라고 받아들여 난리를 치든 말든 동요 받지 말고 살아야 한다. 날갯짓에 놀아나지 않는 사람과는 지루해서 살기 싫다고 날아갈지도 모른다. 이것이 나의 과제다.

안압이 높아 수시로 안과를 들락거렸다. 어느 날은 진료가 끝났는데도 대기실에 앉아있으란다. 다시 안압을 재고 내려갈 때까지. 그러다 어느 날 의사가 녹내장이 오기 전에 수술해야 한다고 해서 갑자기 수술했다. 오른쪽 눈을 먼저하고 왼쪽 눈을 일주일 후에 했다. 혹시나 해서 다른 의사에게 한 번 더 진단을 받을까 했지만, 단념하고 서둘러 하자는 대로 했다. 친정아버지가 수시로 안압을 재러 다녔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모가 젊은 시절부터 눈이 서서히 멀기 시작했다. 독일에 사는 딸의 도움으로 그곳에서 눈을 치료했으나 결국 시력을 잃고 말았다.

작업하느라, 글 쓰느라 아니면 끼고 사는 컴퓨터 때문에 눈이 망가지지 않았냐고 의사에게 물었다. 그런 것들과는 아무 상관 없이 집안 내력이란다. 레이저 수술이라 간단했고 수술 경과도 좋다고 의사가 말했다. 그러나 왼쪽 눈에서 회색 점이 눈을 움직일 때마다 따라다닌다. 속이 메슥거리고 신경이 곤두서서 눈 뜨기가 무섭다. ‘이렇게 평생 따라다니면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내 가슴 속의 새는 파드닥파드닥 날갯짓을 쉬지 않고 하며 나를 충동질했다. 집안을 어둡게 하고 선글라스를 쓰면 그나마 괜찮다. 의사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만 할 뿐이다. 두 달도 넘었는데.

새에게 날갯짓할 테면 해라. 고모처럼 장님이 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 내가 너를 날려 보낼 수 없다면 함께 사는 수밖에. 라고 중얼거리며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했다. 명확하게 자주 보이며 흔들리던 회색 점이 흐려지며 덜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 없어진다는 의사 말대로 된 것인가? 아니면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여서인가?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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