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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어머니의 워커

"평생 동고동락하던
자줏빛 워커는
어머니의 외로움"

세상에 부딪혀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워커가 발코니에 서 있다. 온몸이 세월에 시달려 볼품 없어져 버린 워커, 낡은 육신에 크고 작은 멍 자국으로 초라해진 모습이 쓸쓸하다. 그것은 빠르게 달려가는 세상에서 쓸모없이 내쳐진 어머니를 닮았다.

워커는 다리 힘이 약한 사람이 쓰는 보조기구다. 몸의 균형을 잡아주고, 앞에 작은 네 바퀴가 달려있어 걷는 데 도움을 주는 물건이다. 그것은 땅만 보고 걷다가 흙을 닮아갔나 보다. 큰 산의 바위가 자신을 지우고 지워 빚어낸 흙처럼, 워커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온몸을 받쳐 묵묵히 맡겨진 소임에만 충실했기 때문이다.

거칠고 고르지 못한 삶의 길을 걸어야만 하는 워커이기에 온몸의 골격을 단단한 금속으로 무장하고, 살아남기 위하여 모진 세상과 마주해야만 했을 듯싶다. 그것은 크고 작은 삶의 몫을 알게 모르게 감당했어야 할 어머니가 풍파 심한 세상과 마주했던 것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삶이 그렇듯이, 워커는 찌들고 숨 막히는 여름날의 뜨거운 아스팔트를 걸어야 했고, 차갑게 얼어붙어 발을 떼기조차 힘든 험로도 지나야 했다. 어머니가 열여덟 살에 만주로 출가하여 힘들게 육 남매를 생산하고 삶의 갖은 고통을 감내하며 길러낸 것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였듯, 워커 역시 자신의 소임을 운명처럼 받아들였으리라.

어머니는 생을 짙게 물들인 피의 전쟁 6.25와 1.4후퇴 그리고 부산 피란 시절을 겪어내며, 삶이란 지켜내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을 깨달았을 듯싶다. 당신에게 가해졌던 모진 삶은 워커를 지탱하는 질긴 메탈이 비틀어질 만큼의 큰 시련이었으리라. 네 바퀴가 달려있어 앞으로, 뒤로 혹은 옆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워커처럼 어머니 역시 내일을 생각하며 동분서주한 생이었다. 앞으로 뛰어가다 어려움으로 막힐 때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 후퇴했다, 때로는 옆으로 돌아가기도 하는 삶이었을 게다. 어머니의 삶은 도전과 회유, 인내와 끈기로 이어졌다. 그런가 하면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에는 자식들의 영혼이 잠시 쉬다 갈 수 있는 혼의 안장도 간직되어 있었다.

가라앉지만 튀지 않는 어머니의 자줏빛 워커. 자주색은 붉은색의 열정과 푸른색의 지성이 합쳐진 색이라 따뜻하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중성색이다. 하지만 화사한 와인 빛이기도 한 그것은 따뜻함의 상징이었다. 어머니가 자줏빛 워커를 선택한 이유는 좀 더 따스한 사랑을 자신의 삶에 담고 싶어서였지 않을까. 각박하고 거친 세상을 온화한 사랑으로 품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마침내 어머니는 이승의 마침표를 찍고 또 다른 생을 향해 떠나셨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요란한 급행열차를 몰고 가듯 숨을 거칠게 내뿜다 네 번의 긴 호흡을 마지막으로 이승에서의 숨을 멈추었다.

응급실에서 집으로, 다시 양로원으로 옮겨지며 쉬지 않고 물만 찾던 어머니. 죽음의 문턱까지 물을 애걸하며 끊어지려는 이승의 인연과 새로운 세계의 연을, 강물이 바다로 이어지듯 흐르는 물로 연결하려 하셨나 보다.

삶이란 무엇일까? 죽음의 반대 방향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고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욕망의 꽃을 피워가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생명체는 하루하루의 생을 온 힘을 다해 살아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죽음을 향해 매 순간을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가슴의 진한 애증은 모두 내려놓고 자신의 지난 삶을 반추하고 있는 워커. 그것은 어쩌면 삶과 죽음이 한 몸이라는 것을 벌써부터 깨우쳐, 머무름과 움직임, 정(靜)과 동(動) 역시 하나이지만 사람들은 그것들을 극과 극으로 이분화하고 있다며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도 같다. 이제 워커는 제 소임을 끝내고 쓰나미같이 몰려오는 아픈 추억들을 끊어낸 채 발코니에서 긴 휴식에 들었다. 온갖 시름과 번뇌를 끊어내고서 어머니와 함께 지낸 절대적인 한순간의 삶도 결국 세월 어디에도 새겨 놓을 수 없다는 무상함을 터득한 것도 같다.

평생 삶을 동고동락하던 자줏빛 워커는 자식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어머니의 무게와 외로움을 살갑게 보듬어 주었다. 노쇠하고 지친 어머니의 영혼이 주저앉을 때마다 자신의 작은 몸으로 따뜻한 보금자리를 대신했다. 돌아보면 자식들처럼 자신의 속내를 소리 내어 드러내지 않았다. 어머니의 무게 때문에 같이 걷는 것이 부담되어 힘들다고, 시도 때도 없이 불러내 숨이 막힐 것 같다며 불평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어머니의 마비되고 굳어진 삶을 보듬고 품어주며 새로운 수족으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키 작고 볼품없이 늙은 탓에 세상에서 밀려난 어머니를 닮은 보잘것없는 워커. 워커를 보는 순간 갑자기 어머니의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주름진 어머니로 변했다.

“어머니, 모진 고생 끝에 저를 낳아 정성을 다해 길러주신 은혜에 성심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저의 모자람과 이기심으로 평소 제가 당신을 아프게 했던 말과 행동을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어머니,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받아주는 이 없는 안타까운 나의 참회는 허공에서 맴돌고, 바보 같은 가슴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살아생전 어머니의 손발이었던 워커도 오늘따라 어머니와 이어졌던 탯줄이 끊겨서인지 그 허전함과 슬픔에 눈물 흘리는 듯하다. 한쪽 얼굴은 곱고 아름답지만, 다른 한편은 슬프고 애절한 것이 인연 아니던가.

한동안 슬픔에 싸였던 워커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머니와의 연처럼 모든 인연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예찬하는 것 같다. 인연을 어떤 실로 어떻게 수놓느냐에 따라 한순간 청잣빛 꽃도 붉은 꽃도 피어나고, 노란 나비 위에 푸른 바람도 춤추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하다.


김영애 / 수필가 ‘수필 세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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