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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우편함에서 찾은 보석

우편함을 여니 광고지가 수북했다. 그런 종이들은 받는 즉시 다 재활용쓰레기 통으로 들어간다. 편지를 잘 쓰지 않으니 반가운 답장 같은 걸 받아보거나 기대해 보는 것마저 오래 되었다. 요즘엔 선거철이 가까워 오는지 누구누구를 찍어달라는 유세 전단지가 늘어났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메일로 가주 상원의원에 출마하는 사람의 후원모금 파티에 오라는 초대장이 왔다. 삭제를 하려다 얼핏 보니 후보자 이름이 데이브 민(Dave Min)이었다. “민이라면 혹시 한국 사람인가?” 남편에게 물으니 한국의 민씨 같다고 했다. 딸에게 물어보니 데이브는 한국 사람이며 만나서 얘기해본 적이 있는데 지금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다고 했다. 현재 우리 동네의 주상원의원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며 관심도 없고 뉴스도 제대로 보지 않는 나였지만 한국인을 위한 모금 파티고 장소가 마침 우리 집에서 멀지 않고 해서 참석한다고 답신을 보냈다.

모금 파티 장에 도착하니 키가 후리후리하게 큰 백인 여자가 반갑게 맞아주고 일본 후예로 보이는 남자가 이름표를 건네주었다. 현관에서 데이브가 손님들을 맞고 있었는데 단정한 외모에 눈이 초롱초롱 맑았다. 한국말을 할 줄 아느냐고 물으니 유창하게는 못해도 의사소통은 할 수 있다고 한국말로 대답했다.

전망이 탁 트인 거실로 들어가니 벌써 부엌과 패티오에도 손님으로 웅성거렸다. 동그란 식탁에 백인 여자 셋이서 앉아 얘기를 나누다가 내 이름표를 보고 어서 오라고 의자를 가리켰다. 오십대 정도로 보이는 한 여자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분은 지난 선거 후에 자기같이 평범한 시민이 정치에 무관심할 때 어떤 엄청난 결과가 빚어지는지 통감하고 조그만 일이라도 자기 몫의 권리를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데이브 민의 출마를 도와 화요일마다 모여 엽서쓰기를 한다고 했다.



거실 한 쪽에 데이브 민이 대표할 지역구를 보여주는 지도가 보였다. 살펴보니 애너하임, 어바인, 오렌지, 헌팅턴비치, 코스타메사, 뉴포트비치, 레이크포리스트 등 오랜지 카운티의 많은 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지역에 데이브 민이 주상원의원으로 출마해 당선이 되면 내가 사는 미국의 이 한 곳, 나아가서 더 넓게 한인이 대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왠지 가슴이 뭉클했다.

칵테일 시간이 지나자 데이브가 자기는 LA에서 이민 1세 부모에게 태어났고 공립학교를 거쳐 하버드 법대를 졸업했으며 지금은 UCI 법대 교수로 있다고 간략하게 소개하고 정치 소신을 얘기했다. 똑바른 자세, 탄탄해 보이는 어깨가 믿음직했다. 착하게만 보이는데도 정치현안에 대해서나 주상원의원으로서 해야 될 경제, 교육, 환경, 주거문제 등의 방대한 사안에 대해서 설득력 있었다. 특히나 모인 사람들의 질문을 진지하게 듣고 대답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데이브와 모인 사람들의 질의응답이 끝나자, 파티 장소를 제공한 주인(이란출신 신장내과 의사)이 데이브 민과 손님 모두가 자기 집에 와준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환영사를 했다. 둘러보니 손님의 대부분이 이란인이고 한국인 손님은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았다. 주인은 오늘 자기 아는 사람은 민주당, 공화당 가리지 않고 다 초대했는데 이유는 데이브 민의 말을 들어보고 각자 스스로 어떤 사람을 우리의 대변자로 택할지 결정하도록 하고 싶었다고 했다.

모임이 끝나고 나올 때 보니 그 집 앞마당에 데이브 민의 이름이 써진 피켓이 여러 군데 꽂혀있는 게 눈에 띄었다. 어쩐지 내 뒤통수로 손이 갔다. 정치라면 그저 손사래만 치고 살아온 나를 처음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한 아내와 세 아이의 가장으로서 자기가 좋아하고 인정받는 현재의 안정된 생활에서 정치판이라는 격랑 속으로 뛰어들 결심을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얘기하던 데이브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메일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보석 같은 한국의 후손이 이 미국사회에서 자신의 소신을 마음껏 펼치고 환히 빛나도록 나도 엽서라도 써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박휘원 / 소설가·재외동포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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