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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고수를 기다리는 이유

진짜 고수들을 만나고 싶었다. 유명한 재력가나 박사보다 숨어서 노력하는 장인이 주인공이어야 했다. 지난달부터 시작한 주간기획 ‘고수를 찾아서’라는 인터뷰 시리즈의 의도다.

고백하자면 기사는 4년간 ‘깔고 앉았던'글이다. 아이디어 초안은 2016년 5월16일 노트북에 저장한 ‘기획리스트’라는 워드파일에 적었다.

애초 시리즈의 큰 제목은 ‘꾼의 세계’였다. 워드파일에 적혀있는 30개 이상의 꾼들을 옮기면 이렇다. ‘파수꾼(경찰, 소방관), 살림꾼, 낚시꾼, 장사꾼, 소리꾼, 춤꾼, 논쟁꾼, 삼꾼(심마니), 웃음꾼(개그맨), 그림꾼(화가), 요리꾼(셰프)….’

말의 근원을 파고들면 묵직한 기사였지만 글을 풀어갈 자신이 없었다.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꾼의 나쁜 어감을 지울 방법을 찾지 못해서다.

4년 만에 다시 파일을 열었는데 여전히 끙끙거렸다. 결국 풀기 어려운 ‘꾼’을 포기했다. 쓰기 쉬운 ‘고수’를 택한 것은 글꾼이 되지 못한 하수의 변명이다.

지금까지 4명의 한인 ‘꾼’들을 만났다. 검도 5단의 24년차 베테랑 형사, 컴퓨터 공학도를 꿈꾸는 미국 바둑 랭킹 1위 청년과 이야기했다. 마라토너인 LA 1호 커플 매니저와도 마주 앉았다. “빛을 조각한다”는 20년차 할리우드 조명감독 이야기도 썼다.

다른 분야의 이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나했다. ‘인생에서 고수란?’이다. 표현은 달랐지만 말은 같다. ‘주제 파악’이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아직 고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4년 베테랑 형사도 “아직도 매일 출근 때마다 신참처럼 가슴이 뛴다”고 했다. 또 미국 바둑 1등도 “이제 겨우 돌 몇개를 뒀다"고 겸손해 했다. 고수들의 말대로라면 스스로 고수라고 생각하는 이는 착각에 가깝다.

최근 한 한인단체에 자칭 고수라 여기는 이들이 기웃거린다는 말을 들었다. 얼마전 만난 한인 단체장 A씨는 고민이 많아 보였다. 본인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마땅한 후임자가 없어 걱정이란다. 회장하고 싶어하는 ‘자칭 고수’들은 많은데 '깜'이 되는 숨은 고수는 아직 못찾았다고 했다.

B씨는 재력은 있지만 시니어여서 ‘세대교체’라는 방향성에 적합하지 못했다. C씨나 D씨도 참신한 인물과는 거리가 멀다.

A씨는 ‘올해'라서 후임 걱정이 더 된다고 했다. 2년 전 한인들은 대규모 시위를 통해 LA시장, 담당 기관장, 지역구 의원을 크게 꾸짖었다. 협의 한번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노숙자 셸터를 타운에 짓기로 한데 대한 반발이었다. 시위의 규모와 횟수에 놀란 정치인들은 셸터 건설안을 원점부터 재검토했다.

한인사회 공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성공 여부는 올해 선거에 달려있다. 유권자를 무시하고, 개발업자들과 유착해 뒷돈을 받고, 꺼림칙한 추문이 항상 뒤따라 다니는 정치인들을 솎아내야할 때다.

큰 변화를 이끌 한인들의 참여 동력은 각 단체들의 협심에서 나온다. 그러니 올해 후임자는 ‘회장’보다는 ‘공복’이 필요하다는 A씨의 고민은 맞는 이야기다.

이 단체처럼 리더 구인난을 겪고 있는 단체들과, 스스로 리더가 되길 원하는 이들에게 김기표(48) 조명감독의 조언을 들려주고 싶다. 그는 서로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촬영 현장에서 20년째 남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고 있다. 본인이 조명을 받고 싶은 욕심이 있는지 물었다. “아무리 멋진 피사체라도 빛이 없으면 존재해도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을 밝혀줘야 나도 빛날 수 있다.”

지금 한인사회는 스스로 주인공이 되려는 ‘하수’보다 멋진 주인공을 만드는 고수가 절실한 때다.

진짜 고수들을 만나고 싶다.


정구현 선임 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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