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서 20년, 빛을 조각하다
고수를 찾아서 <4> 김기표 조명감독
할리우드 사관학교 AFI 졸업
그레이아나토미·배트맨 등
2000년부터 400여편 참여
“상대를 비추면 본인도 빛나
자기 위치를 아는 이가 고수”
마치 한국축구대표팀의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듯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 수상에 함성을 지르면서 4번째 고수를 정했다.
할리우드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의 사람들이 궁금했다. 김기표(영어명 Kaiser ‘Kai’ Kim·48) 조명감독은 적임자였다. ‘할리우드의 사관학교’로 불리는 ‘미국영화연구소 영화학교(AFI Conservatory)’ 출신인 그는 할리우드 현장 바닥부터 시작해 20년간 400여편의 영화·드라마 제작에 참여했다. 그레이 아나토미, NCIS, CSI, 웨스트월드 등 시청률 최고 드라마를 비롯해 영화 다크 나이트(2008년),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 수퍼 8(2011년), 줄리아 로버츠 주연 홈커밍(2019년) 등이 그가 빛낸 작품들이다. 새벽부터 하루종일 촬영한 날 저녁에 만났다. 지친 그에게 '빛'을 묻자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Scene #1 빛이 켜지다
1989년 시카고로 이민왔다. 모범생이었고 의사를 꿈꿨다. 누나는 소아과, 바로 위 형은 치과의사다. 일리노이 주립대 생물학·화학 복수전공으로 입학했다. ‘영웅본색’ 세대들이 다 그렇듯 느와르 영화를 즐겨봤다. 그래도 영화판에 뛰어들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러던 2학년때 가슴에 뜨거운 불이 켜졌다.
“단편영화를 찍는데 아르바이트생이 필요하다는 우연한 기회였어요. 5일간 잠도 안자고 뛰어다녔죠. 촬영이 끝나고 집에 왔는데 가슴이 뜨겁고 열이 났어요. 눈 감으면 촬영현장만 보였죠. 나중에 할리우드에 와서 들었는데 그런 증세를 ‘쇼비지니스 버그에 물렸다(Show business bug bites)’고 해요. 3개월간 끙끙거리다 ‘영화를 하자’ 결심했죠.”
Scene #2 빛을 배우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건 쉽지 않았다. 누나의 적극적인 지원사격이 힘이 됐다. 콜럼비아 칼리지 필름학과로 편입했다. 공부를 하면할수록 영화감독 일보다는 조명이 매력적이었다. 더 배우고 싶었다. 졸업 후 학창시절을 보낸 시카고를 떠나 할리우드로 왔다. 99년 AFI에 입학했다. AFI는 한해 촬영감독, 영화감독, 미술, 극작가 등 6개 학과에서 140명 소수정예만 뽑는다. 매 학년때마다 작품으로 실력을 입증못하면 퇴학당한다.
“AFI는 할리우드의 축소판이라고 해요. 철저하게 실용적이죠. 예를 들어 졸업반은 각자 촬영팀을 꾸려야하는데 6개 학과생들이 서로 협업을 해야해요. 팀에 소속되지 못하면 작품을 찍을 수 없으니 학교를 그만둬야 해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네트워킹을 못하면 할리우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가르치는 거죠.”
Scene #3 빛과 그림자
좋은 학교를 나왔으니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그런데 현실은 ‘배고픈 조명지망생’이었다. 할리우드 장벽은 높고 단단했다. 식당 웨이터, 바텐더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앞이 깜깜하던 때에요. 99년 당시 로스펠리츠 지역에 스튜디오 아파트 월세가 400달러였는데 매달 그 돈만 벌면 ‘아파트에서 쫓겨나지 않겠구나’ 안심했죠. 그게 한심했어요.”
암흑속에서 한줄기 빛은 구원이다. 배우 윌 스미스가 제작자인 영화 ‘시트 필러(Seat Filler·2002년작)’가 빛이었다. 영화를 찍으면서 할리우드 조명노동조합 ‘IATSE LOCAL 728’에 들어가게 됐다. 노조원 5000명중 1.5세 한인은 그가 최초였다. 지금도 한인 노조원은 10명 정도다. 노조원은 안정적으로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 평균 연봉은 비노조원의 2배다. 밥 걱정 없이 빛을 가지고 놀 수 있게 됐다.
Scene #4 빛을 따라서
-빛이란 무엇인가.
“사물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빛이 없어 우리가 못볼 뿐이다. 백만불짜리 피사체도 빛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또, 싸구려 피사체는 빛 앞에서 본질을 숨길 수 없다. 사물의 실체를 인간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빛이다.”
-조명감독의 일은.
“빛을 조각해 스토리를 만든다. 현장에서 영화감독의 주문은 대부분 추상적이다. 예를 들어 ‘암울한 느낌’을 내달라고만 한다. 밤의 암흑은 낮의 어두움과 다르다. 그 차이를 화면에서 느낄 수 있도록 빛을 조작해 질감을 만들고, 컬러를 입힌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드라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2011년 방영된 시즌1 참여)’는 힘들었지만 평가가 좋았다. 특히 강도높은 살인 장면에 공을 많이 들였다. 50~60년대풍를 재현하면서 느와르(Black) 분위기를 컬러로 입혀야 했다. 조명기 하나하나를 3cm, 5cm 옮겨가며 시신에 빛이 묻는 앵글을 극대화시키려 노력했다. 큰 경험이 됐다.”
-봉준호 감독 수상봤나.
“시상식 때 난 광고를 찍고 있었다. 아카데미의 높은 콧대를 잘 알기에 봉 감독의 수상을 예상못했다. 그런데 광고를 찍던 모든 스텝들이 갑자기 박수를 치더라. 작품상을 받을 때였다. 그 다음날 할리우드 드라마 촬영현장에 갔더니 난리가 났다. 내가 상받은 것도 아닌데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다들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영화 한편의 승리라기 보단 한국의 승리다.”
-할리우드와 한국의 제작현장 차이점은.
“2002년 개봉한 한국의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H(지진희·염정아 주연)’에 촬영기사로 참여했었다. 그때 느꼈던 한국 영화인들의 열정은 무서울 정도였다. 할리우드의 최대 장점은 막대한 투자금이다. 작년 개봉한 영화 ‘홈커밍’에 조명을 맡았다. 한 장면에 쓸 세트장 1개에 조명 설치비만 350만달러를 썼고 3주가 걸렸다. 딱 하루 촬영하고 세트장을 부쉈다.”
-스포트라이트 뒤에만 있다. 조명 앞에 서고 싶지 않나.
“되묻고 싶다. 내 덕분에 상대가 칭찬을 받는데 좋지 않은가. 누군가를 빛나게 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상대를 밝혀주면 나도 빛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꿈은.
“오스카에서 촬영상을 받는 감독이 내 이름을 부르며 ‘고맙다’고 한마디 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거 같다.”
-인생에서 고수란.
“현재 같이 작업하는 로저 세슨이라는 조명감독에게서 새삼 배운게 있다. 조명의 위치다. 어디까지가 내 역할인지 자기 위치를 아는 사람, 상대의 역할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정구현 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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