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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갑섭의 해외동포 평양방문기


심갑섭 시인
서북미문인협회 이사장

심갑섭 시인 서북미문인협회 이사장

(지난 호에 이어서)
북조선 노래인 ‘반갑습니다’를 배웠다.
“동포 여러분, 형제 여러분.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 얼싸 안고 좋아 웃음이요, 절싸 안고 좋아 눈물일세 (2절: 정다운 그 손목 잡아봅시다. 조국 위한 마음 뜨거우니 통일 잔칫날도 멀지 않네) 어허허 어허허허허 닐리리야~.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Y 목사님 간증: “작년에 이명집 장로님이 북조선에 방문하셨을 때의 일입니다. 긴 시간 동안의 버스 여행시에는 안내원들이 돌아가면서 노래를 시키곤 합니다. 70세이신 그 장로님은 대중가요는 잘 부르는 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마태복음 5장~7장까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외우셨습니다. 또 어떤 분은 탕자의 비유를 태국의 전설 이야기로 각색해서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2002년, 어느 날 뉴욕에서 저에게 전화가 왔었습니다. 제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니까 북쪽의 안내원이 Y 목사님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고 하면서 하시는 말이, 6.25때 북에 남겨진 아들에게 어머니가 손수 담은 김치를 처음으로 맛보게 해주고 싶은데 전해줄 방도가 없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비극입니다. 저는 15세 때 이민을 왔고 현재 43세입니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선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87년도에 선교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선교사 한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다짜고짜 “너 한국인이지? 너 크리스천이지? 너 해외에 살지?”라고 물었습니다. “어떻게 알았어요? 저는 캐나다 밴쿠버에 살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분이,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형제를 북한으로 부르고 계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도망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제 숙소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분은 오픈 도어 미션에서 총재(브라더 데이빗)로 일하고 계셨기 때문에 복음을 위해서 세계 모든 나라를 다 다녀 봤지만 북한만은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가 저를 만나기 2 주전에 영국의 회사와 함께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황무한 그 땅에 예배자가 없기에 예배를 드릴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라. 해외에 있는 기독교인들, 그 중 특별히 해외에 있는 한인들을 사용할 것이다. 네가 북한을 나가서 처음 만나는 해외 한인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 분은 베이징에서 거하는 3일 동안, 그리고 제가 머물던 홍콩에서 2일 동안 만나는 동양인마다 붙들고, “한국인이냐?”고 묻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저를 만난 것입니다.

저는 그분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남자입니다. 반공교육이 투철하니까 제가 캐나다에 가면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 드릴께요.”그렇게 말하니까 그 분이, “요나도 처음엔 그랬어. 내가 기도해 줄게.”라고 말하면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저를 안고서 기도하는데 내 손위로 떨어지는 그 분의 눈물이 제 팔에 닿자 너무도 따갑고 아팠습니다. 그때 그것이 하나님의 눈물인 것을 알았습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분이 10여 분가량 기도를 마치고 나자 저는, “Sir, I`ll try”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후에 저는 북경에 있는 북조선 대사관을 찾아가서 영사 부장에게, “북한에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영사 부장이, “조국에는 왜 가 보고 싶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얼떨결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인데 평양에도 그리스도인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요.” 영사 부장은 단호하게, “우린 그런 거 안 합네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저는 돌아서 나오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 들으셨죠? 그런 거 안 한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 후로 1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북조선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보낸 1년 후인 어느 날, 캐나다 C.C.C.의 협동간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내년 세계청년축제에 평양을 갈 계획인데, 통역을 맡아줄 사람이 캐나다 전체에서 한국인 간사는 저밖에 없어서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주일 후에 LA에 계시는 홍동근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그 때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축구팀에 속해 있었는데, “내년 세계청년축제를 평양에서 한다는데 미스터 Y가 축구팀을 한 번 만들어서 가라.”는 전화였습니다. 그래서 C.C.C.단체를 위한 통역은 제 친구를 소개해서 맡기고, 저는 3주 예정으로 축구팀을 만들어서 북조선에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곳에 들어가자마자 선교사가 아니라 반공청년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를 질책하셨습니다. 저의 눈에서는 엄청난 눈물이 흐르며 회개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3주 예정이 끝난 후 저는, “모든 인민이 존경하는 김일성 주석께”라는 서두로 편지를 썼습니다. 내용인즉슨 , 그 때 마침 임수경이라는 학생이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의 도보일정을 행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일정에 참여했다가 그녀가 판문점을 통해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본 후에 북조선을 떠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일성 주석의 친필 사인이 적힌 승낙편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북조선으로 들어갑니다. 한마디라도 빈말을 하지 마시고 그들을 격려해주고 축복해 주십시오.”

이어서 <삶으로 가는 북한선교> 라는 비디오를 보았다.
“만약 우리의 정체성이 튼튼하게 구성되어 있다면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도 모험을 하면서 관계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이 약하다면 모든 것이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다.” 제임스 포웰.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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