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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겨울비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한 겨울 회색빛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춥고 으스스 처량하지만 뜻밖에 무뎌진 오감을 깨워주기도 한다.

갑자기 더 굵어진 빗방울 소리에 두꺼운 외투를 입고 따뜻한 차 한잔을 들고 현관 밖으로 나가 보았다 .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와 닿는 상쾌한 기분, 빗줄기 포말에 젖어든 싱그러운 사철나무 잎사귀, 우중에도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새소리. 평화와 행복은 멀리에 있지 않은 것 같다.

인생의 겨울이 왔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으리라. 느려진 생체 리듬으로 세월은 나를 남겨두고 멀리 멀리 가버린 것만 같다. 하지만 찬찬히 걸으며 사색에 잠기는 여유와 예전엔 몰랐던 야채와 곡식들의 참맛을 알아가고 지인들과 수다를 떨며 제일 높은 단계의 삶은 히히덕거리며 사는 것이라고 굳이 의미를 붙여보기도 한다.

또 바쁜 생활에 매여 멀어졌던 취미생활을 해보는 재미도 있다.

박자도 맞추지 않고 서투르게 피아노를 쳐놓고도 만세를 부르고 책을 읽으며 마음에 와 닿는 곳에 밑줄을 그으며 책은 나의 종교라고 외치며 말이다.

메마른 사막에도 오아시스가 있고 끝일 것 같은 깊은 절벽 아래로 쏟아지는 거대한 폭포, 커다란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 하늘에 번득이는 오로라의 섬광처럼 세상 끝에는 불가사의의 일들과 절경들이 존재한다.

삶의 끝자락에도 그러한 비경들이 숨겨져 있으리라. 나 자신과 더욱 가까워지고 충실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더 나이 들면 아무것도 동경하지 않는 즐거움마저도 누릴 수 있다하지 않는가.

집안으로 들어오니 오븐 속에서 익고 있는 고구마 냄새로 가득하다. 오래되어 정겨운 꽃무늬 커튼, 편한 소파. 라디오에서 옛 노래가 흘러나온다. 나의 가슴 속에서는 추억이 피어오른다. 비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집, 안락함, 아늑함을 일깨워주는 겨울비가 좋다.


손선애 / 수필가 '문학공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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