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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우린 왜 ‘기생충’에 열광할까

2월10일자 LA중앙일보 1면 배달판

2월10일자 LA중앙일보 1면 배달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한국인의 무한 잠재력을 우리조차 믿지 못했던 것 아닌가. 아카데미상 4관왕이라니. 월드컵 4강 진출 때만큼이나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시상식 날 저녁, 처음 각본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하다고 여겼다. 초판 신문 마감을 앞둔 저녁 7시. 1면 제목은 ‘기생충, 아카데미상 역사 새로 썼다’였다. 101년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6개 부문이나 동시에 후보에 오르고 처음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오스카까지 거머쥐었으니 당연한 제목이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곧바로 국제영화상 수상. 이 역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수상이 결정되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다음은 그야말로 ‘사건’이었다. 감독상 봉준호. 한국인 감독이 마침내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확실히 이름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1969년생 닭띠, 봉준호. 이미 여러 화제작들로 유명해진 이름이다.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옥자, 설국열차에 이어 이번 기생충까지.

봉 감독은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와 정서를 담아내면서도 인류 보편의 문제에까지 천착하면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아카데미 감독상이 전혀 생뚱맞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거기다 ‘기생충’은 요즘 전 지구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양극화 문제를 리얼하게 다룬 작품 아닌가. 극한의 빈부가 공존하는 한국 사회의 양극화 현실을 처절하게 비틀어 풍자했지만 이것은 곧 으리으리한 빌딩 아래 노숙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미국의 현실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이 느낀 공감의 강도 역시 생각보다 크고 예리했을 것이다.

수상 소감은 더 인상적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멋진 스피치라니. 봉 감독은 당당하면서도 겸손했다. 함께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경쟁 감독들을 추켜세웠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겨주었다는 마틴 스코세이지를 비롯해 미국인들에게 그의 영화를 적극적으로 소개해 주었다는 쿠엔틴 타란티노, ‘조커’의 토드 필립스, 그리고 가장 강력한 작품상 경쟁자로 지목됐던 ‘1917’의 샘 멘데스까지.

압권은 “오스카 측에서 허락한다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 5등분해서 그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지막 멘트였다. 어디서 그런 위트와 센스가 나왔을까. 과거 못살던 시대 주눅 든 한국인이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여유와 자신감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도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작품상까지 호명됐을 땐 환호보다 ‘오 마이 갓’이라는 탄성이 먼저 나왔다. 작년 5월 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때부터 ‘한국 최초’라는 타이틀을 줄곧 달고 다닌 것도 대단했지만,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처음으로 4개 부문을 휩쓴 외국어 영화 1호라는 기록까지 남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밤 10시, 마감을 앞두고 다시 고민했다. 내일 아침 배달될 2판 신문은 어떻게 해야 하나. ‘역사를 새로 썼다’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한 걸음 더 들어가 관객도 놀라고 한국도 놀라고 세계가 모두 놀란 전혀 예상 밖의 분위기를 전해야 했다. 실제로 역사를 새로 쓴 주역들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고른 사진이 관계자 모두가 함께한 통단 사진이었다. ‘기생충 4관왕, 세계가 놀랐다’였다는 제목이었다.

이런 날은 야근을 해도 힘이 난다. 역사의 현장을 함께한다는 뿌듯함 때문이다. 현장에 나간 기자들, 편집국을 지킨 기자들, 시상식을 지켜본 많은 한인들 역시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기생충이 상 받았다고 당장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 그렇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 안에 솟구치는 뜨거운 감정은 그 자체로 충분한 보상이다. 우리 모국 한국이 더 이상 변방의 작은 나라가 아니라는 자부심, 미주 한인들은 그런 자랑스러운 나라 출신이라는 당당한 자존감 말이다. 영화 한 편의 수상 소식이 이렇게나 신나고 좋은 걸 보면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가 보다.



이종호 편집국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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