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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방랑시인 김삿갓 2] 다시 떠나는 방랑길

(지난 호에 이어서)


산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새소리를 들어가며 산을 넘고 언덕길을 굽이굽이 감돌아 내려가니, 산골짜기에 조그만 주막이 하나 있었다. 문 앞에 세워 놓은 말뚝에 야몽(夜夢)이라는 두 글자가 써 있는 주막이었다. 김삿갓은 주막마루에 걸터앉아, 주모에게 술을 청하며 물었다.
"이 집을 들어오다 보니, 야몽이라 쓴 말뚝이 있던데, 그 야몽이란 어떻게 나온 말인가?"

주모가 술상을 갖다 주며,
"나도 모르지요. 간판도 없이 술장사를 시작하는 첫날, 어떤 점잖은 첫 손님이 마수걸이 외상술을 잡숫고 가시면서, 주막이름을 야몽으로 하라고 일러주더군요."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웃음이 절로 나왔다.
"술장사를 시작하는 첫날 첫 손님부터 외상술을 주었다니, 그래 가지고서야 장사가 되겠는가?"

"장사가 되든 말든, 술을 자시고 싶은데 돈이 없다는데 어떡해요. 그러니 인심을 좀 쓰기로, 설마하니 밥이야 굶겠어요?"
주모는 얼핏 보기에 수안댁과 인상이 비슷했는데 대답 또한 천하태평이었다.
"마수걸이 외상을 주었다고 했는데, 그 사람 이름은 알고 있는가?"
"처음 보는 사람인데, 이름을 어떻게 알겠어요."
"하하하하... 이름도 모르면서 외상을 주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외상값은 언제 받으려나?"
"갖다 주면 받고, 안 갖다 주면 못 받는 거지요. 그렇게 되면 술 한 잔 선심썼다고 여기지요."
가뜩이나 수안댁을 닮아서 호감이 갔었는데, 마음을 쓰는 통이 넉넉한 주모를 만나, 김삿갓의 울적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다. 해서, 짖궂은 소리를 해보는데,
"혹시 내가 외상술을 먹겠다고 해도, 외상을 줄 수 있겠는가?"
"돈이 없다는 말씀만 하세요. 그러면 외상도 드리지요."

주모는 그렇게 말을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허기는 그 양반은 개업하는 첫날 첫 손님이었는데, 마수걸이 외상술을 마시기가 미안했던지, 떠날 때에 저 바람벽에 시 한 수를 써 주고 가셨다우. 저기 보이는 저 시가 그 양반이 써 주신 시라오." 하며 벽에 쓰여진 시를 가리켜 보였다. 김삿갓이 주모가 가리킨 바람벽을 보았더니, 첫 눈에 보아도 기막힌 명필이었고, 제목은 야몽(夜夢)이었다.

鄕路千里長 (향로천리장)
고향길은 천리 밖 멀고 먼데

秋夜長於路 (추야장어로)
가을밤은 그 길보다도 더욱 길구나

家山十往來 (가산십왕래)
꿈속에선 고향에 갔다 왔건만

詹鷄猶未呼 (첨계유미호)
깨어보니 새벽 닭이 울기도 전이네.

낙관(落款)이 산운(山雲)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본, 김삿갓은 깜짝 놀랐다. 산운 이양연(李亮淵)은 당대의 유명한 풍류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여보게! 저 어른이 언제 여기를 다녀가셨는가?"
"어머! 손님은 저분을 알고 계세요?
"알구말구, 직접 만나 뵌 일은 없어도,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시인이신걸. 저 어른이 언제 여기를 다녀가셨는가?"
"내가 술장사를 시작했을 때 다녀 가셨으니까, 벌써 7년 전 일인걸요. 그때도 60이 넘어 보였으니까, 지금쯤은 돌아가셨을 거예요."
"만약 돌아가셨다면, 자네는 외상값을 영원히 못 받게 될 것 아니겠나?"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 돈을 못 받는다고 죽을 형편은 아니니까요."
"가만있자. 그 어른 외상값이 얼마인가? 그 돈은 내가 갚아주기로 하겠네."
그리고 김삿갓은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려고 하였다.

그러자 주모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 어른이 그렇게 훌륭하신 분이라면, 저는 그 외상값을 받지 않겠어요."
"내가 외상값을 대신 갚겠다는데, 어째서 받지 않겠다는 말인가?"
"외상값이래야 몇 푼 아닌걸요. 그 돈을 받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다면, 그처럼 훌륭한 분한테 외상을 지웠다는 사실만 하더라도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 되겠어요! 안그래요? 호호호..."
주모는 호탕하게 웃어 젖힌다.

마음이 유쾌할 때면 호탕하게 웃어 젖히던 버릇도 어딘가 모르게 죽은 수안댁과 비슷해 보였다. 수안댁도 이와 같은 경우였다면 과연 외상 술값을 받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모르면 모르되, 수안댁도 지금, 저 주모처럼 꼭 그랬을 것만 같았다. (다음 호에 계속)

필자 김옥균은 MBC PD 은퇴하고 글 쓰는 일에 전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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