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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두 남자 사이에 총을 든 내가 있다.

[중앙포토]

[중앙포토]

실내 사격장에 들어섰다. 고막을 찢을 듯한 소리에 목이 저절로 움츠러든다. 직원이 내민 종이에는 빼곡하게 주의사항이 적혀 있다. 다 읽고 이해했다는 사인을 한 후 운전면허증을 맡기고 지정된 사격대로 갔다. 보호 안경과 귀마개를 했다. 이미 집에서 남편에게 사격의 기본자세와 규칙을 교육받았지만, 막상 총을 쏘려니 떨렸다. 아니 귀마개 틈새로 들리는 총소리에 심장이 바닥을 치고 튀어올라 등 뒤로 숨었다.

우리는 집에 있는 여섯 자루의 총 중에서 베레타(Baretta) 380과 9mm를 가져 왔다. 남편이 표적을 50m 앞으로 밀어 보냈다. 내 손에 총을 쥐어 줬다. 13발의 총알이 장전된 총은 무거웠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차가움이 온몸으로 퍼졌다. 사람의 상체 모양을 본떠 검게 칠해진 표적. 그것을 노려보며 검지를 이용해 방아쇠를 당겼다. ‘띵’ 하는 발사음, 총알이 튕겨 나가는 힘으로 상체가 저절로 뒤로 밀려났다. 떨어져 나온 탄피가 내 발등을 때리며 바닥을 뒹군다. 다시 총을 겨눴다. 표적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잊었던 기억이 그 위로 겹쳐졌다.

리커스토어를 운영했던 이민 초기다. 손님이 뜸한 오전에 야구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가 가게로 들어와 계산대 앞에 섰다.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보더니 순간 시커먼 물체를 내 가슴 한복판에 디밀었다. “Money, Money”하며 명치 부분을 꾹꾹 눌러대는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그 흉측스러운 물건이 가슴에 구멍을 낼 것이다. 공포가 뿌연 연기를 끌고 들어와 머릿속을 하얗게 채워 나갔다.

이렇게 죽는구나. 그의 움직임이 영화의 슬로모션처럼 눈에 머물다 스쳤다. 집에서 나를 기다릴 두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난 살아야 해. 어서 돈이나 챙겨 가라고 속으로 빌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계산기를 열고 옆에 있는 봉투에 돈을 담으려는데 손이 덜덜 떨리며 잡히지를 않았다. 답답했는지 그가 훌쩍 카운터를 넘어 어느새 내 옆에 섰다. 찬바람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나를 삼키려는 듯했다. 추웠다. 나를 옆으로 슬쩍 밀고 그는 지폐를 한 장도 남기지 않고 후다닥 담았다. 뚱뚱해진 봉지를 안고 휙 바람소리와 함께 다시 카운터를 뛰어넘어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의 등이 사라지자 다리에 기운이 빠지며 스르르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제 그는 없다. 총도 사라졌다. 몇 분이 십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든 위압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총이라는 도구를 쥐었기에 강해진 인간 때문인가, 아니면 악한 목적이어서 흉기가 되어버린 총이 무서워서일까. 강도의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온 한기가 나를 옭아맨 것인가. 그래, 그의 눈에 총알보다 더 무서운 살기가 실려 있었다. 겁에 질린 상대를 아무 감정 없이 바라보는 총구는 왜 점점 커지는지. 돌돌 말려 그 시커먼 구멍 안으로 빨려들어 갈까 봐 몸이 더 경직되었는지도 모른다. 악몽에 시달려 거의 한 달을 수면제에 의지해야만 했다. 그 후 권총 강도를 두 번이나 더 겪었다. 총은 몸서리치게 싫은 물건이다.

얼마 전 유치원 아이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한 사건으로 미국이 시끄럽다. 총기를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반대로 총포상은 총과 총알이 불티나게 팔린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하지 말라면 더 자극을 받기 때문일까. 앞으로 더 강력한 제재가 취해지면 총을 사기 힘들 것이라는 예측에 전보다 더 호황을 누린다고 한다.

내 생명을 위협했던 총을 만지는 이유가 있다. 남편과 큰아들 때문이다. 재혼하니 성년인 아들들에게 가끔 눈치가 보인다. 다행히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긴 하지만 내 욕심에 둘이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함께 밥도 먹고 서로 농담도 주고받지만 보이지 않는 벽이 그 둘 사이에 있는 것을 느낀다. 항상 가운데서 조심스레 양쪽 눈치를 살피게 되는데 최근 두 남자가 공통분모를 찾았다. 총이다. 총에 관심을 보인 큰아들과 공군에 재직하며 사격술로 훈장을 받은 남편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아들은 자주 집에 들러 함께 인터넷을 뒤지며 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를 통하지 않고 둘이 약속시간을 정하고 같이 총포상에도 갔다.

아들이 총을 산다고 했을 때 나는 위험하다며 반대했다. 남편은 “총을 사용하는 사람과 그 목적이 문제지, 총은 단지 총일 뿐”이라고 했다. 쏘라고 만들어진, 쏠 때만 본분을 다할 수 있는 물건이란다. 전쟁에 쓰이거나 살상을 위한 것만은 아니고 위급 상황에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방어 수단도 될 수 있단다. 더욱이 탁 트인 야외 사격장에서는 총알과 함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낼 수 있는 스포츠라며 총에 대한 나의 인식을 바꾸려 애를 썼다. 어깨 너머로 그들의 대화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총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뒷걸음쳤다. 결혼생활 5년 동안 내 눈치를 보며 금고에 보관했던 남편의 총을 꺼내 만져보니 소름이 돋지도 않았다. 인터넷에서 총에 대한 정보를 슬쩍 찾아본 후 두 남자에게 질문을 하고 아는 척도 했다. 나쁜 기억은 잊자. 총알과 함께 날려 보내자. 사랑하는 두 남자와 함께 즐기는 취미라고 내 마음을 다독였다.

총알이 없는 빈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내가 총을 쏘았다. 등 떠밀려 하긴 했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남편이 내 표적을 당겼다. 13발을 쏘았는데 10점짜리 중심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겨우 4발만 여기저기 변두리에 구멍을 남겼다. 처음 기록으로는 나쁘지 않다며 전화기로 사진을 찍어 아들에게 보내는 남편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얼른 맞잡는다. 이번에는 연습이고 다음에는 아들과 야외 사격장을 가자며 남편은 나를 꼭 끌어안는다.

총. 그 물건 앞에서 나는 무기력하게 내 목숨에 대한 권리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잦은 총기 사고로 무고한 생명을 잃어 총기 규제가 필요하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흥분하며 찬성에 한 표를 던지던 나다. 이제 가까이 다가가는 내 모습이 낯설다. 여가활동으로 즐기자는 두 남자와 어울리려니 용기가 필요하다. 총은 나를 두 갈래 길 위에 올려놓았다.


이현숙 / 수필가·재미수필문학가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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