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바둑영재, 미국 최고수가 되다
고수를 찾아서 <2>이상협 아마 7단
연재 인터뷰를 준비하면서부터 바둑 고수를 두 번째 대상으로 점찍었다.
첫 번째로 소개하면 뻔한 '행마(말을 쓰거나 세력을 펴서 돌을 놓는다는 뜻)’로 보일 것 같아서였다. 두 번째인 만큼 바둑 고수는 의외의 인물이어야 했다. 나이 지긋한 시니어의 인생 바둑을 논하는 인터뷰는 '하수의 패'였다. LA한인타운 기원들에 수소문했다. 서울기원의 이성철 원장이 ‘무서운 고수’를 소개해주겠다 했다.
점심때를 넘겨 서울기원을 찾았다. 고수는 ‘의외성'에 금방 눈에 띄었다. 10여 명의 백발 성성한 어르신들 틈에 아직 여드름도 가시지 않은 앳된 대학생이 앉아있었다.
이상협(23·사진) 아마 7단이다. 동네바둑의 고수쯤으로 생각했더니 악수중의 악수였다.
한국의 바둑 영재였던 그는 2014년 열여덟 살에 유학왔다. 그해 최대 규모 대회인 ‘US 오픈’에서 우승컵을 거머쥐면서 미국 바둑계를 제패했다. 지금까지 미국바둑협회(AGA·American Go Association) 현역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다. 미국 바둑의 최고수를 만났다.
초등 6학년 때 전국 대회 우승
한국기원이 키운 연구생 출신
프로 입단대회서 뼈아픈 패배
LA 유학와 최대규모 대회 우승
5년간 미국바둑협회 ‘랭킹 1위’
컴퓨터 전공…가을 편입 준비
5년 전 열여덟 살에 미국 바둑 최고수가 된 이상협(23) 아마 7단에게 ‘인생 바둑’을 물었다. 바둑 문외한인 기자에게는 용어 배우기도 벅찼다.
#귀(바둑판의 사방 구석, 가장 중요한 지역)에 첫수
일곱 살 때다. 아버지와 장기 두는 것을 좋아했다. 우연히 장기판을 뒤집었더니 바둑판이 나왔다. 가로·세로 19줄, 361개 교차점에 어린 소년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며칠 뒤 아버지를 졸라 바둑학원에 갔다. 첫날부터 수 읽기의 매력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재미로 바둑돌을 놓던 아이는 마포초등학교 6학년 때 덜컥 전국대회서 우승을 했다. “승부욕이 강했어요. 어린 마음에 '내 바둑이 좋구나’ 우쭐해져서 바둑 프로가 되자 결심했죠.”
중학교에 입학한 이듬해 그는 한국기원의 연구생이 됐다. 미생의 시작이다.
#미생(독립된 두 집이 없어 생사가 불분명한 돌)
연구생은 프로를 꿈꾸는 바둑 영재를 양성하는 한국기원의 사관생도 제도다. 연구생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매년 4차례 선발전을 여는데 전국 바둑 꿈나무 중 40명 정도만 새내기 연구생 자격을 얻는다.
연구생 된 후엔 더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 정원 128명인 연구생들은 실력순으로 6개 조에 배정돼 매주 리그전을 치른다. 승패의 결과는 냉정하다. 1등부터 128등까지 벽에 붙는다. 최하위 10명은 탈락해 그만둬야 한다. 그리고 연구생 선발전에서 새로 뽑힌 10명이 대체한다. 살아남았다 해도 19세가 되기 전 프로 입단대회에 통과하지 못하면 짐을 싸야한다.
입단대회는 매년 한번 열린다. 연구생과 일반인 지원자 등 200여 명이 응시해 고작 5명만 뽑힌다. ‘최고 중의 최고’ 2%만 한국에서 ‘바둑 프로’로 불릴 수 있다.
“연구생들은 학교를 그만두고 하루종일 바둑만 둬요.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밥 먹고 화장실가는 시간을 빼고 다 바둑 공부하는 시간이죠. 휴식이라곤 가끔 일요일에 극장 가서 영화 한 편 보는 게 전부였어요.”
고등학교 3학년까지 연구생 생활을 했다. 128명 중 평균 15위 정도였으니 성적은 우수했다. 그런데 ‘곤마’의 형국이 찾아왔다.
#곤마(심하게 공격당하거나 둘러싸여 살기 힘든 딱한 처지)
성적은 좋았지만 입단 시험은 넘지못할 벽이었다. 불완전한 미생에 위기는 올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사춘기를 겪었어요. 집중을 못 하니 공부도 싫고 바둑도 멀어지고…. 승패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죠.”
2014년 1월 입단대회가 그에겐 프로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이번에 안되면 다른 길을 가자’고 생각했다. 응시생 200명 중 20명이 남을 때까지 살아남아 대국을 벌였다.
“마지막 승부였어요. 진 걸 알았지만 손에서 돌을 놓질 못했어요. ‘지면 어쩌지’ 초조해만 하다 내 바둑에 집중 못 한 게 패착이었죠.”
프로 입단만 바라보고 달려온 6년의 세월은 스스로에게 패하면서 끝났다. 활로를 찾아야 했다.
#활로의 행마(세력을 펴서 돌을 놓는 것)
이제 뭘 하나. 막막해하던 차에 LA에 먼저 와있던 스승 김명완 9단이 손을 내밀었다. 연구생을 그만둔 2014년 유학을 왔다.
미국은 최적의 활로(돌이 살 길)였다. 그해 8월 뉴욕에서 열린 US오픈 바둑대회에 참가했다. 북미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됐고, 최대 규모 대회다. 처음 바둑을 시작할 때처럼, 덜컥 우승을 했다. “뉴욕 구경도 할 겸 재미삼아 참가했어요. 그런데 신기했어요. 승부에 집착하지 않으니까 내 바둑을 두게됐고, 이기더라고요.”
2014년 우승후 ‘강한 돌’의 행진은 계속됐다. 미국바둑협회와 LA한국문화원이 매년 가을 공동 주최하는 남가주 오픈 바둑대회(Cotsen Open)에서 지난해까지 5년 내리 우승을 했다. 또 2015~2018년엔 60여 개 국 200명의 대표가 참가하는 세계대학생 바둑대회서 2~3위에 올랐다.
혜성같이 나타난 신예 고수에게 배우겠다는 학생들이 줄을 이었다. 1:1 바둑 강의를 시작했다. 현재 6~7학년 7명을 가르치고 있다. 한인은 없고 중국계, 백인 학생들이다.
학업도 순조롭다. 패서디나시티칼리지에 다니면서 올 가을 UC계 편입을 준비중이다. 바둑 입상경력은 가산점이어서 유리하다. 전공은 컴퓨터 공학이다.
#완생의 꿈
-미국 1등이다. 여전히 미생인가.
“아직 그렇다. 완생은 바둑에서 ‘두 눈(두 집)을 가진 돌’을 뜻한다. 한쪽 눈은 컴퓨터 엔지니어가 되고 다른 쪽 눈은 미국에서 한국 기풍의 바둑을 누구에게나 편하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완생이 아닐까 싶다.”
-본인에게 바둑이란.
“떼려야 뗄 수 없는, 너무 좋고 재미있지만 때론 지겹고 싫증나고…애증의 관계다.”
-프로를 포기한 것 후회안하나.
“동갑내기 동기들이 한국 바둑 정상에 있다. 여자 바둑 랭킹 1위인 최정(23) 9단, 아마추어 랭킹 1위 허영락이 친구들이다. 처음엔 부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니 무덤덤해졌다. 나도 내 바둑을 두고 있어서다.”
-인생 바둑판에서 행마는 어디쯤 왔나.
“이제 막 ‘귀’의 단계를 끝냈다.(바둑에서 돌은 필연적으로 귀에서 변으로, 변에서 중앙으로 향한다.) 미국에 와서 변으로 가는 착점을 놓았다. 중앙으로 가는 ‘신의 한 수’로 만들고 싶다.”
-지난해 12월 이세돌이 은퇴대국에서 AI와 대결했다.
“관심이 많았다. 이번 대국은 두 번째다. 2016년엔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바둑계에 큰 변화가 왔다. 그전까지 바둑 공부는 인간끼리 복기하고 토론해 최고의 묘수를 찾았다. 그런데 이젠 연구생들이 AI 프로그램을 돌려 수를 찾는다. AI가 인간의 스승이 된 상황이다. 사람만 할 수 있는 묘미가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
-기억에 남는 가르침은.
“연구생 시절 힘들어 바둑을 그만두고 싶었다. 한 선생님께서 잊지못할 가르침을 주셨다. ‘성적이 나쁘다고 그만두지 말아라. 오히려 좋을 때 떠나야 미련이 없다’고. 당장 눈앞의 결과가 나쁘다고 포기한다면 다른 일을 해도 또 그만두게 될 거라는 말씀이셨다.”
-인생의 고수란.
“미생은 두 눈이 없는 깜깜한 암흑 속에서 상대의 집요한 공격을 받아내고 이겨야 한다. 비록 아직 미숙해서 두려워도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잘할 수 있다면 진정한 고수다.”
▶문의: 이메일(wldus870517@gmail.com)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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