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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울타리

옆집에 두 남자가 이사 왔다. 키 크고 푸른 눈의 남자와 보통 키에 당당한 체구의 남자다. 크고 검은 개 두 마리도 함께 왔다.

이사 오자마자 그들은 전 주인이 아끼던 정원수를 바꾸었다. 먼저 동네 어구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던 아담한 사과나무에 손을 댔다. 이제 막 앙증맞은 열매가 달린 사과나무를 밑동까지 잘라내더니 며칠 후 기어코 나무뿌리까지 직접 파냈다. 그런 다음 집 앞 정원수를 손보기 시작했다. 디즈니랜드같이 꾸미겠다며 석등을 세우고 조그만 분수대도 갖다 놓으면서 분주하더니 주변의 정원수들을 싹 뽑아버렸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어쩌겠는가, 주인 맘이지. 흙에서 뽑혀 말라가는 나무들을 나는 구경할 수밖에 없다.

두 남자는 멀쩡한 목재 창고를 부수더니 플라스틱으로 된 새 창고를 들여놓았다. 햇빛을 가린다며 뒷마당 패티오를 뜯어냈다. 하얀 대문도 검은 녹색으로 다시 칠해 육중한 철문같이 변했다. 그 문 옆에 화사한 깃발을 달았다. 앞발을 들면 어른 키만 한 개 두 마리가 그 집 앞을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 사납게 짖어댔다. 그 앞을 지나는 나도 그 개들을 자극할까 봐 조심하며 다녔다.

앞집 할머니가 두 남자와 갑자기 왕래가 빈번해졌다. 시애틀 터줏대감 같은 할머니는 동네에 새로 이사 온 집이 있으면 발걸음이 잦아지곤 했다. 집안일을 하는 키 큰 남자 이름은 ‘팀’인데 두 사람이 그렇게 사는 것도 그들의 방식이니 다른 사람이 무어라 말할 것이 못 된다고 했다. 누가 뭐라고 했나? 그런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다. 울타리가 문제였다.

옆집과 우리 집 사이는 키 큰 잉글리시 로레알 나무들로 완벽하게 담이 쳐져 있다. 울타리는 옆집 소유이다. 울타리 나무들은 늘 푸르게 잘 자라서 옆집 이층 창문을 다 가리고도 남아, 때마다 가지치기를 해야 했다. 그 울타리 끝 모퉁이에 오래된 동백이 울창했다. 겨울에 얼마나 기막힌 꽃이 피는지 나는 넋 놓고 들여다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그 동백나무를 쳐냈다. 두 집 사이에서 붉게 피던 동백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의 새로운 이웃은 수십 년은 됐을 그 동백나무를 밑동까지 깨끗하게 기계로 갈아 버렸다. 나뭇가루가 재가 되어 우리 집 마당으로 날아왔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한 일은 울타리 나무를 모두 없애는 것이었다.

그날 오후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와 뒷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너무나 놀라, 말이 안 나왔다. 집을 비운 두 시간 동안 그 짧은 시간에 옆집 남자 팀은 울타리 나무를 가볍게 싹둑 잘라서 내 옆구리 크기로 낮추었다. 세상에! 갑자기 옆집과 우리 집이 뻥 뚫려서 옆집 넘어 길 건너편 집까지 훤하게 보였다. 무슨 말을 하랴. 이미 잘라버린 나무 울타리를. 분을 삭이며 바라보지 않으려 해도 그쪽이 직통으로 보였다. 그들과 우리가 이렇게 속을 드러내 놓는 사이는 아니지 않나.

해 좋은 날 반짝이며 윤기 나던 잉글리시 로레알 잎사귀들이, 늠름하게 버티고 있던 나무들이 모조리 허리 아래로 작아졌다. 나중에 이마저 깨끗하게 밑동까지 잘라버렸다. 그들은 밑동을 없애는데 이골이 나 있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옆집과의 화목을 위해 서로 양보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나무를 자르든 말든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답이 나왔다. 그 답이 내게는 명쾌하지 않았다. 우리도 대책을 세워야 했다.

여름이 무르익는 어느 날, 옆집 남자 팀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울타리를 새로 치려고 하는데 아주 키를 높게 하려고 한다면서 그러면 너희도 프라이버시가 있고 어쩌고 하면서. 그들만의 울타리를 치면서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런 통보를 하는 것인지 우리가 신경 쓰이긴 한다는 건가. 그런 말을 하는 그의 눈빛이 조금은 선하게 느껴졌다.

울타리 공사를 시작하는 날 두 남자는 휴가를 가 버렸다. 주인 없이 울타리 공사는 착착 진행되어서 양쪽 집을 확실하게 가르는 성벽처럼 높게, 옆집 남자 키만큼 서게 되었다. 사철 푸른 나뭇잎 울타리가 아니라 나무판을 엮어 만든 본 데 없는 삭막한 울타리가 되었다. 서로 훔쳐볼 수 있는 틈이 조금도 없으니 오히려 안전한 울타리라고 여길 수 있다는 건가.

여기까지면 얼마나 좋았을까. 휴가에서 돌아온 그들은 새로 만든 울타리를 다시 뜯어내고 말았다. 울타리가 그들 생각보다 낮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시 울타리를 더 높게 칠 때 우리 쪽 땅을 조금 침범하고 말았다. 그 말을 남편에게 하니 그런 면에서 둔한 남편은 눈치채지 못하여 나 혼자 씩씩대다 말았다. 옆집 남자들은 나에게 너무나 피곤한 담벼락이었다.

옆집과 우리 집 사이는 울타리가 완벽하게 쳐졌고 이와 함께 마음의 울타리도 굳게 쳐졌다. 그렇게 가깝게 지내던 앞집 할머니와 옆집 남자들이 왕래가 끊긴 지는 꽤 되었다. 요즘 나는 밖에서 옆집 남자 팀을 만나면 어떤 때는 모른 척하고 어떤 때는 손을 흔들어준다. 우리는 미워도 등을 맞댄 이웃이니까.


신순희 / 수필가·월간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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