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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육화(肉化)의 신비

위대한 인물들에게는 탄생 설화가 있다. 그 설화에는 그들의 핵심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나자렛 예수는 태어나자마자 말구유에 눕혀 졌는데, 그것이 ‘인류를 위한 하늘의 표징’(루카 2,12)이라고 했다. 말구유는 말 밥통이다. 밥통에는 밥이 들어 있다. 밥통에 아기 예수가 눕혀져 있으니, 그가 곧 인류를 위한 밥이란 뜻이다. 살기 위해서 밥을 먹어야 하듯이 인류가 살기 위해서는 그를 먹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일찍이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 명을 먹였고, 최후만찬 때 제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먹으라고 내어줬으며, 속죄제물처럼 끝내 십자가 위에서 처형당했다. 그의 처형당함으로 인해 인류는 죄와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했기 때문이다. 그는 진정 인류를 살리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요한 6,51)이었던 것이다. 예수의 탄생 설화는 이렇듯 인류를 살리기 위한 그의 생애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자렛 예수를 세계의 4대 성인 중 한 명으로 인정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인류를 살리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다. 지금으로부터 3000 년 전, 모세가 호렙 산에서 하느님을 만나 그분의 이름을 물었을 때, 하느님은 자신을 일컬어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라고 밝혔다. “나는 ○○이다”는 형식은 신적인 정체성을 밝힐 때 사용하는 형식인데, 나자렛 예수는 자신의 정체성을 밝힐 때마다 이 형식을 활용했다. 그 중 한 가지가 “나는 생명의 빵이다”(요한 6,35)였다. 생명의 빵은 잘 먹히도록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인류를 찾아왔다.

사람들은 강해야만 살아남는다고 믿는다. 많이 가져야만 살아남는다고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하느님의 대답은 그렇지 않았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실 때, 그분은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고, 가난한 모습으로 찾아오셨다. 이것의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강함도 아니요 부유함도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그것도 하느님의 사랑! 이 진실을 증언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올해도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가난한 모습으로 인류를 찾아오신다. 이것을 기뻐하는 축제가 크리스마스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가난하게, ‘밤’에 태어나신 것은 인류의 어둠을 어루만지기 위해서다. 인류의 슬픔과 고통, 연약함과 모순 등을 함께 겪기 위해서! 왜 굳이 그렇게 인류의 어둠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지 이해할 순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행위는 사랑의 몸짓이라는 사실이다. 그만큼 하느님은 인류를 사랑하신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올해도 변함없이 인류를 찾아오신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강함도 부유함도 아닌 하느님의 돌보심”이라는 진실을 증언하시기 위해서! 이 진실을 받아들인 사람은 누구나 지금-여기에서 하느님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요한 1,14 참조)


박비오 신부 / 천주교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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