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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울지 마요, 살아줘서 고마워요







스쳐가는 것이 바람 뿐이랴. 사랑도 눈물도 청춘도 고통마저 스쳐간다. 잠시 머물다 지나간다. 세월이 약이다. 시간도 세월 속에 스쳐가고 비켜간다.



안달하며 소매 붙잡아도 기어코 떠날 사람은 떠나가고 등 떠밀어 보내고 싶어도 달이 찰 때까지, 둥근달이 그대와 내 사이를 비집고 이별의 눈썹이 하얗게 셀 때까지 머물며 곁에 서성인다. 그대를 만난 때도 떠나 보낸 시간도 막막하긴 매한가지였다. 사랑이 머물다 간 곳에는 오색 찬란한 낙엽이 쌓이고 잎새마저 떠난 황량한 벌판에서 사는 게 적막해서 어깨 덜먹이며 아주 오래 혼자 흐느꼈다.



나무들은 울지 않는다. 매일 홀로 서는 연습을 한다. 앙상한 가지에 아무도 눈길 주지 않아도, 기다림은 어차피 혼자 감당해야 할 긴 인고의 사간이 될 것이므로 모질게 견딘다. 겨울나무는 죽은 듯 서 있어도 스쳐가는 바람이 전해주는 그대 목소리 듣는다. 진초록 물감을 뚝뚝 떨어트리던 잎새들 사이로 소낙비 맞으며 사랑 할 때는 세상 모르게 좋았다. 나무들은 땅 속 깊은 곳에서 뿌리 가득 수액을 뿜어올리며 장병처럼 우람한 몸짓으로 불타는 청춘을 그늘로 식혀주었다.



프라타나스 늘어선 강나루터 모래밭을 함께 거닐던 청년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무섭다고 엄살 부리며 등에 업혀 강을 건넜지. 그 남자의 다리는 유난히 희고 길었다. 세월에 묻혀 이름도 아리송한데 그의 등은 따스한 기억으로 남는다.



달력의 마지막 장은 쓸쓸하다. 마지막은 애절하다. 마지막 인사. 마지막 만남. 마지막 선물. 마지막 수업. 마지막 순간. 마지막 노래. 마지막 찬가. 마지막 카드. 마지막 계절. 마지막 손님. 마지막 열차. 마지막 키스, 마지막 말 한마디 등 마지막이란 단어는 가슴에 구멍을 뚫는다. 총알을 안 맞았는데도 쓰리고 아프다.



나는 12월이 좋다. 총알이 뚫고 스쳐간 가슴 만지작거리며 되새김해서 좋다. ‘마지막’은 엄숙하다. 반복도 되돌릴 수도 없기에 생의 마지막 순간은 ‘참회’로 끝을 장식하지 아닐까. 이리 달리고 저리 설치며 뒤죽박죽 오락가락 지친 일상이 빼곡히 적힌 달력 접어 봉해두고 올해 마지막 해야 할 버킷리스트를 만든다.



사고 안 치면 일년 내내 연락두절한 지인들에게 살아있다는 생존알림 카드 발송. 안부 주시는 칼럼 애독자들께 인사말씀 올리기. 쑥스럽고 쪽 팔려도 우서방에게 ‘사랑해’ 다섯번 먼저 하기. 리사와 함께 바쁘다 핑계 대며 못 간 영화관 가기. 애들에게 ‘정말 사랑한다’ ‘잘 살아줘서 고마워’ 편지 쓰기. 손주들에게 직접 그린 카드 보내기. 스승님과 선배들께 ‘절 꾸벅’ 연중행사 인사올리기. 선물 받고 감사 카드 빼 먹은 손님들에게 사과 편지 쓰기. 이사하며 돈 버는데 몰두, 본체만체한 한인회 임원들에게 한 턱 쏘기. 혼자 살며 거동 불편한 어른께 반찬 배달 하기. 치매 할아버지 돌보는 옆집 할머니 불고기정식 해다 드리기. 험담한 친구 집 대문 앞에 좋아하는 음식 갖다 놓기. 직원과 우체부, 쓰레기 수거하시는 분들께 쵸콜렛 선물하기 등등. 가슴에 뚫린 구멍 메꾸는데는 사랑과 나눔이 특약이다.



발 동동 구르며 떠나는 세월에 시비 걸지 말고, 무심한 세월 속에 묻힌 얼굴들 떠 올리며 흘러간 사랑 떠나간 사람 그리워하고, 아프고 쓰라려도 기억의 창에서 지우려고 애쓰지 말고, 정 떼는 연습하려고 고개 돌린 사람들 향해 다시 고개돌려 마주보고, 다정한 말 따스한 언어로 용기 주신 분들께 무한 감사하고, 그냥 마음 가는 사람과 속닥거리면서, 울지는 말고 그냥 이대로 생긴대로 살기로 한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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